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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최고의 계명 ‘사랑’
조회수 | 134
작성일 | 17.10.25
[원주] 최고의 계명 ‘사랑’

『사랑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게 하는 것
그 사람이 「장미」라면 「장미」가 되게 하고
그 사람이 「호박」이라면 「호박」이 되게 하는 것
「장미」에게 「호박의 열매」를 요구하지 않고
「호박」에게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찾지 않는 것
「장미의 가시」를 받아들이고
「호박의 추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라네
왜냐하면 사랑은 「결심하는 의지의 행위」이기 때문이라네』

제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 신부님의 사랑에 대한 말씀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본시입니다. 이 내용은 사랑의 이중 계명에도 똑같이 적용해 볼 수 있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느님과 맘몬(돈)의 대립 속에서 하나를 선택함으로 얻게 되는 기쁨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할 희생과 아픔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때, 그리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가지는 장점과 더불어 그의 한계와 부족함까지 받아들이는 용기, 다시 말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사랑의 삶은 성숙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은 너무나 유명한 사랑의 이중계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율법서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하는 어느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고 「이웃 사랑」이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유다교의 잡다한 613가지 계명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가 하는 문제는 예수님 시대를 전후해서 유다교 식자들이 자주 논했던 주제였습니다.

물론 통일된 의견은 없었지만 대개 으뜸 계명으로는 「황금율」이나 (율사 힐렐) 「하느님 사랑」을 으뜸계명으로 여겼고(보통의 유다인들), 때로는 「하느님 공경과 이웃사랑」을 기본 계명으로 보는가 하면(필로) 135년경에 순교한 율사 아키바는 「이웃 사랑」을 율법의 통일 원리로 간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보면 이들이 주장한 으뜸 계명과 예수님의 이중계명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여기에는 근본적이고 중요한 두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사랑의 이중 계명에는 율법의 비판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으뜸 계명을 다른 계명보다 중요시했을 뿐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계명을 비판하거나 무효화할 의도가 없었던 반면 예수님은 모든 계명을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환원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것에 저촉되는 율법은 과감히 상대화하거나 폐기시켰다는 점이 독특한 점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이웃 사랑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라고 이 두 계명을 연결시킴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쓰이는 「이웃」이란 개념도 유다인들이 동족을 「이웃」으로 본 반면 복음서는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사마리아 사람들과 이방인들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이 유다인들의 관점과 차이가 나는 점입니다.

우리가 흔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랑」으로, 그리스도교를 「사랑의 종교」로 정의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의 민족주의를 넘어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랑의 이중 계명을 이야기하면서 한번쯤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왜 우리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최고의 계명」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의 현장에서는 자주 실패를 경험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사랑이라는 문제에 접할 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자신의 책임에 대해 눈감고 그 실패의 원인을 다른 무엇에 전가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이 실패했을 때 그 이유를 저 사람이 나를 화나게 하기에, 또 생활이 바쁘고 힘들기에 등등 다른 사람이나 생활 환경에 책임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환경들은 분명 나의 사랑의 삶을 방해해 왔고 방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져야하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환경이 사랑의 삶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위로를 얻기 위해 실패의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생활환경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을 중단하고, 힘들고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나의 선택에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실패의 원인을 내 안에서 찾으려 노력할 때, 우리 신앙인의 최고의 삶인 사랑은 좀 더 성숙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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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오늘은 예수님께서 사랑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첫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이고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상대를 배려해 주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열매를 맺습니다.

소와 사자가 서로 사랑을 했답니다. 소와 사자는 서로를 위해서 최선을 다 하기로 했습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제일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을 했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제일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을 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와 사자는 서로에게 불평을 터트리고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소와 사자는 헤어지면서 서로에게 "나는 최선을 다 했어!"라는 말을 했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사자를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소를 보면 서로의 사랑은 서로의 상처가 될 뿐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사랑,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사랑은 그 사랑이 최선일수록 최악의 상처가 될 뿐입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드리고 있나요?
당신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고 그가 원하는 것을 주고 있나요?
당신은 사랑하는 자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배려해 주고 있나요? 당신은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나요?

▦ 원주교구 위종우 신부
  |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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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하느님 [天主]와 이웃[隣]이 둘이 아니 네 [주린불이 : 主隣不二]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바리사이들과 논쟁에 직면하신다. 율법에 일가견이 있는 그들에게 으뜸 계명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 랑 해 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마태오 22,37-38) 계속해서 주님께서는 똑같이 강조하며,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39) “둘째도 이와 같다”라는 말씀에서 “같다”라는 단어는 희랍어 성서 “호모이오스 (homoios)" 라는 단어로 “유사한, 비슷한, 닮은, 같은” 이라는 뜻 을 지니며 “동일한 것” 이라는 뜻을 지닌 “호모스(homos)" 라는 단어의 어원에서 왔다. 1977년 공동번역에서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라고 의역했고,1991년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에서는 “둘째도 비슷합니다” 라고 번역했으며,2005 년 한국천주교회 성경에서는 “둘째도 이와 같다” 라고 희랍어 원어에 의거하여 번역했다. 여기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느님 자녀들의 으뜸 덕목으로 둘 다 중요하고, 비슷하면서도, 나아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신앙 여정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하고 둘을 비교하는 마음에서 더 이상 의식의 확장을 이루지 못해 자가 당착에 빠지는 영적 나태에 빠진다. 그러나 성모님의 전구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강한 의지를 발휘하여 점차 열매 맺는 신앙인으로 성장해 나간다.

첫째 부류는 ‘하느님 사랑이 이웃 사랑보다 더 크다!’ 면서 내 가족 내 이웃보다 하느님 사랑이라는 말로 과도하게 성당 활동이나 지역사회 행사 때 집 착 하여 잘못된 신심, 외적인 업 적추구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둘째 부류는 .이웃 사랑이 하느님 사랑보다 더 크다!’ 면서 과도 하게 이웃 눈치를 보고 주일 미사 참례보다 변화무쌍한 세상사에 온 마음을 빼앗겨 허둥댄다.

셋째 부류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같다!’ 라는 경지를 사는 훌륭한 이들이다. 하느님을 이웃 사랑 안에서 생각하고, 이웃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느끼며 행한다.

더 나아가 참으로 성숙한 넷째 부류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하여 비교하는 마음도 넘어선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동일하여 하나의 경지에 이르렀기에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말에 매이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산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주린불이(主隣不二) 곧 하느님(天主)과 이웃(隣)이 둘이 아년 하나임을 참으로 이해하고 그저 사랑하며 기쁘게 산다.

▦ 원주교구 서동신 대건 안드레아 신부 - 2017년 10월 29일
  |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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