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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서로 사랑하여라.
조회수 | 192
작성일 | 17.10.28
[군종]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 사두가이 사람들의 말문을막아버렸다는소문이들리자바리사이들은 위기감을느끼고 너나 할 것 없이 예수님께몰려왔습니다.뭔가 자기들은 ‘당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듯 한바리사이가 예수님께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이 질문은 어떻게든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위한 그들의 회심의 일격이었습니다. 율법을그 무엇보다 중요시했던 그들은 모세의 율법중 248개의 행령(行令)과 365개의 금령(禁令),모두를 똑같은 비중으로 중요시 여겼습니다.248의 행령과 365개의 금령, 무려 613개나되는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 하나를 꼽으라고 하니 우리가 보기에도 대답하기 곤란한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주저하지 않으시고, 당황하지 않고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는 이 계명에 버금가는 두 번째 계명도 이어서 말씀해 주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 두 계명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랑의 이중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613개의 율법 계명들은 각자 고유한 역할을 지닌 서로 다른 계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시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과 이에 버금가는 둘째계명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 ‘기준’은 간단합니다. 바로 ‘사랑’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없이는 어느 계명도 완벽하게 준수될 수 없고, 사랑 없이는 아무리 훌륭한 계명이라도 의미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사랑’이 모든 계명을 하나로 성취했고 또 충만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은 이 사랑의 이중계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순서(first and second)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동시(synchronize)에 일어나는 일이다.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중에 이웃사랑에 대한 의지가 굳건해지며, 내가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하느님께 대한 순명이 확증된다.” 이렇듯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사랑’ 안에서 동시에 일어납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통해 우리 주변 이웃들을 나 자신과 같이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 군종교구 이승남 스테파노 신부 - 2017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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