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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하느님의 때를 준비하자
조회수 | 129
작성일 | 19.11.29
[광주] 하느님의 때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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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계산은 인간의 계산과는 다릅니다. 정말 다릅니다. 신앙인은 진정 하느님의 계산을 늘 염두에 두고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기쁨과 은혜는 바로 그것을 아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이 은혜를 모르면서 사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신앙을 자꾸 인간의 계산으로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외롭고 팍팍하며 또 믿는 것만큼 고달픕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 또 기다림의 자세로 성탄을 준비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가슴 조이며 기다리고 있고 또 그 준비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인생은 그 자체가 기다림이고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기다리셨습니다.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너무도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성서가 전하고 있는 중요한 단어는 시간입니다. 즉 때를 말합니다. 그것도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보통 때가 아닙니다.

세상 만사는 다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3장)의 말처럼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메뚜기도 철이 있다고 사업이나 장사도 때를 놓치면 큰 손해를 봅니다. 공부도 그렇고 사는 삶의 여러 부문이 그렇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구원의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또 그분이 원하시는 때를 말합니다.

성서가 말하는 중요한 때를 카이로스(Kairos)라고 합니다. 여기서 카이로스라는 말은 충분히 찬 시간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곡식이 익은 것은 익을 만한 시간과 노력이 충분히 차 있었기에 익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다 때가 되어 오신 것입니다. 이게 카이로스며 또 때가 차면 재림하십니다. 이것이 카이로스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때는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섭리요 계획입니다.

이처럼 대림절은 두 가지 형태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 분을 영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닦고 생활을 준비하는 경건한 때입니다. 그리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것이 우리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대림절은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때이지만 더 분명하게 말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기를 뜻 없이 헛되게 지내서는 안됩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희망의 메시지가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북쪽의 이스라엘은 이미 망해 있었고 남쪽의 유다 왕국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 격이었습니다.

백성들도 공포와 불안에 떨었으며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에 이사야가 나타나서 하느님께서 다시 찾아오신다는 기쁨과 희망의 소식을 전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절망이라는 막다른 골목에서 새 길이 열립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2독서의 말씀에서도 깨어나야 할 때가 왔다고 바오로 사도가 외치고 있는데, 성 아우구스띠노가 바로 이 성서 구절을 읽고는 완전히 변화되며 새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는 본래 행복은 쾌락에 있다 하여 온갖 탐욕적인 생활을 다 했지만 그러나 그럴수록 더 허전하고 삶은 메마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번민과 몸부림 끝에 우연히 "집어서 읽어라."라는 말을 듣고는 얼른 방으로 달려가 바오로 서간경을 펼쳐 보니 바로 로마서 13장 13절이 나왔습니다.

"진탕 먹고 마시고 취하거나 음행과 방종에 빠지거나 분쟁과 시기를 일삼거나 하지말고 언제나 대낮으로 생각하고 단정하게 살아갑시다."

그때까지 눈물 속에서 몹시 괴로워하던 아우구스띠노는 바로 이 대목에서 너무도 큰 하느님의 은총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드디어 찾던 것을 찾았고 만나고자 하던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실로 구원의 때를 만났던 것입니다.

대림절은 우리가 지난 1년을 반성하면서 보다 더 성숙하고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로운 시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림절은 성장의 시기이고 또한 회개의 시기입니다.

하느님의 계산은 우리의 계산하고는 다릅니다. 정말 다릅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에 그분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원하시는 때에 불쑥 오십니다. 따라서 늘 단정한 몸과 마음으로 깨어 준비하도록 합시다. 그것이 축복의 길이요 또한 아름답고 멋지게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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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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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구원이 이루어지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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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신앙을 살지 않는 이들보다 시간을 앞서감은 믿는 이들에게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삶의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믿는 이들을 믿지 않는 이들과 구별 짓는 것은 삶의 자리가 다름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보면 구원받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각자 자신의 삶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정과 사회의 존속을 위해 혼인하는 것,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것을 지키는 일은 올바른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재림이, 우리가 들에 나가서 일하고, 맷돌질을 하며, 자기 집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중에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4, 40-43참조). 이처럼 구원은 각자가 가정과 사회, 공동체에서 맡은 일들을 행하는 가운데 맞이하게 됩니다.

믿지 않은 이들과는 달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창조 때부터 계획된 구원경륜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몫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의 부르심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습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에 속해서 살도록 주어진 다양한 소명은 창조주 하느님께로부터 오며, 그 소명을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살 수 있도록 성령께서는 그에 맞갖은 은총과 선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 때문에 사회와 교회 안에서 행하는 일들은 소중하고,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일상의 삶”과 “맡은 일”은 거룩합니다.

신앙인이 비신앙인과 구별되는 것은 결국 “삶의 자리가 다름”에 있지 않습니다. 믿는 우리는, 믿지 않은 이들과 함께 사는 똑같은 일상의 삶을 “구원이 이루어지는 자리”로 깨어 의식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매년 대림 첫 주일에 선포되는, “깨어 있어라”(마태 24, 42)(가해), (마르 13, 35)(나해)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까 21, 36)(다해) 라는 말씀은,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며, 이 믿음과 희망을 사랑으로 살도록 부름받은 이들이 살아야 할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말해 줍니다.

세상의 시간보다 더 일찍 한해를 준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래서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로마 13, 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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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안세환 대건 안드레아 신부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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