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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義와 慈悲의 기쁨을 노래하라.
조회수 | 78
작성일 | 19.12.14
[제주] 義와 慈悲의 기쁨을 노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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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자 위치에서 정의를 실천할 때 참된 기쁨을 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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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3주일인 오늘 전 세계 교회는 한마디로 용솟음치는 기쁨을 노래합니다. 첫째 독서인 예언자 스바니야는 이렇게 외칩니다. "수도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며 축제를 베풀어라," 이 말씀을 받는 응송에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너희 가운데 위대하시니 기뻐하며 찬미하여라"하고 화답합니다.

둘째 독서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형제 여러분,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성서에서 이렇게 반복해 외치는 이 기쁨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성서 말씀은 우선 일차적으로는 기원전 6세기경 바빌로니아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온갖 서러움을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제 적국이 멸망하고 해방의 때가 을 것이라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사실은 아주 더 훗날 이뤄질, 더 큰 해방과 희망의 내용을 담고 있는 예언의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말씀은 단순히 이스라엘이 남의 나라 지배를 벗어나서 독립하는 정치적인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주님이 몸소 이스라엘을 찾아오시어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악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괴롭힐 수 있는 어떠한 고통도 영원히 씻어 없애버리시는 인간 역사의 완성의 때가 결정적으로 온다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쁨에 가득차 있는 스바니야와 바오로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쁨이 있는가? 우리들의 삶에 기쁨이 넘쳐흘러 다른 이웃에게 '기뻐하십시오'라고 나눠줄 우리 자신의 기쁨이 있는가?

그동안 우리나라 사회는 모든 사람이 잠 안자고, 놀 것 안 놀고 정말 정신 없이 일해왔습니다. 세계 다른 나라들이 1백년 걸릴 것을 30년에 달성하는 속도로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도 치르고 엑스포도 치르며 다른 나라 사람의 칭찬도 듣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국민 모두가 기쁨을 느꼈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배가뒤 집어지고, 비행기가 떨어지며,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주저앉는 대형사고를 겪으면서, 우리는 기쁨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라 일을 책임진 이들이 개인적인 명성에만 매달리고, 공무원이 문책을 두려워해서 책임져야 할 일은 기피하고, 세금 걷는 이들은 국민에게서 거둔 세금을 자기 주머니에 바꿔 넣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느꼈던 기쁨은, 진실한 기쁨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우쭐한 기분에서 나온 공허한 기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실된 기쁨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쉽게 식어버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여름 아침 이슬처럼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기쁨이 아니라, 사도 바오로처럼, 스바니야 예언자처럼 참된 기쁨을 차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성서 안에는 또 한 분 깊은 기쁨을 간직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분은 세자 요한입니다.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그는 자신의 명성, 인기 같은 것은 염두에 없었습니다. 요한의 기쁨의 원천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이뤄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가 실현되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기쁨을 보면서 오늘 우리가 진정한 기쁨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에, 제도를 논하고 법률의 미비함을 탓하기 전에, 우리 모두가 각자의 처지에서 해야 할 정의를 실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교 선생님은 봉투를 거절하고 봉급에 만족하며, 공무원은 과외의 보수를 요구하지 말고 국민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고위층은 특권을 행사하지 말고 서민들의 고충에 동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용주는 고용인을 가족처럼 대우할 줄 알고, 기업인은 기업의 이득을 사회의 혜택 받지 못한 이들에게 환원해야 합니다.

남의 집을 짓는 노동자는 자기 집을 짓는 마음으로 안 보이는 구석구석까지 정성껏 손질하고, 식품을 가공하는 사람은 자기 자녀에게 먹이려는 마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북한 동포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이들을 기억하여 낭비하지 말며, 값비싼 새 옷을 사기전에는 헐벗은 가난한 나라, 이웃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이를 낭비하기 전에 하느님이 오랜 세월 걸려 씨뿌리고 가꾸신 나무를 생각하고, 구정물을 하수구에 흘려 보내기 전에 하느님이 솟게 하신 맑은 시냇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자그마한 행동들이, 당장엔 우리 생활에 불편을 주고 불이익을 준다 하여도 그 불이익을 감수하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의와 자비를 우리 각자가 사는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실현해 나갈 때, 우리 개인과 사회 전체가 참된 기쁨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느님이 원하시는 의와 자비를 실현하며 기쁨에 가득 찰 때, 하느님께서도 그런 우리를 보시고 기쁨에 넘치실 것입니다. 우리의 참된 기쁨은 하느님의 기쁨과 통하게 됩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예루살렘 시민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온아 두려워 말라, 기운을 내어라. 너를 구해내신 용사, 네 주 하느님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여름 이슬같이 공허한 기쁨이 아니라 참된 기쁨을 찾아 나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우리를 오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며 더덩실 춤을 추시게 해드리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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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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