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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조회수 | 106
작성일 | 19.12.17
[광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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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느님보다는 세상을 더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정 말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할 줄 아는 지혜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느님의 눈으로 볼 때 그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계산이 아니라면 인간의 큰 업적도 가치가 없게 됩니다.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유다의 아하즈 왕이 인간의 계산만 했습니다. 그는 하느님보다는 우상을 더 섬겼고 하느님께 의탁하기보다는 자기의 외교적 수완이나 또는 세상의 지혜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라가 어려울 때 자기 아들을 죽여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기도 했으며 성전의 집기들을 갈취하여 이방인 나라에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이에 예언자 이사야가 찾아와서 그런 식으로 나라를 구하려 하 지 말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매달려 보라고 충고하면서 하느님께 어떤 징조를 구해 보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아하즈는, 자기는 차마 하느님을 시험할 수 없다고 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외면했습니다. 이사야는 여기서 다윗 가문의 왕들에게서는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다윗은 그야말로 훌륭한 왕이었지만 그러나 그 후대의 왕들은 하나같이 썩은 왕들이었습니다. 이에 이사야는 말하기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먼 장래에 한 사람의 탄생을 마련 할 것인데 그는 임마누엘로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의 뜻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 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느님의 속성을 가진 인간의 존재가 누구입니까.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기다려 온 임마누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걷는 인생이 아닙니다. 아무리 실패했어도 버려진 인생이 아니며 아무리 큰 죄를 지어 교도소에 들어갔다 해도 포기된 인생이 아닙니다. 어떤 절망의 처지에서도 그분만 붙들고 뉘우치면 언제고 용서받을 수 있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으시며 또 앞으로도 늘 우리와 함께 걸어가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옛날에 한 열심한 신자가 살고 있었는데 착하게 살다가 천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떤 날 지상에서의 과거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 옆에는 또 하나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더랍니다. 그는 비로소 자기 생애의 여정에서는 언제나 하느님이 함께 계셨음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떤 때는 간혹 하느님의 발자국이 나타나 있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그 시기와 장소를 알아보니, 그때는 어김없이 그가 큰 곤란과 어려움 중에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 착한 영혼이 하느님께 여쭈어 봅니다. “주님은 제 생애에 언제나 함께 계셨는데 왜 제가 곤란 중에는 하느님이 함께 걸어주지 않으셨는지요?"

그러자 하느님은 대답하시길, “그때는 내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네가 나를 짊어지고 갔기 때문에 내 발자국은 없고 네 발자국만 있었던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가 어려웠을 때 그때가 바로 하느님을 모시고 걸었던 은혜로운 때였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라도 하느님은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내가 기쁠 때는 나보다 더 기뻐하시고, 내가 슬플 때는 나보다 더 염려를 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역경을 만나서 어려울 때는 감격스럽게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믿고 의지하시는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을 은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의지할 때보다 더 흐뭇한 일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의지할 때는 하느님께 큰 기쁨이 되어 드리는 것이며, 하느님이 또 우리에게 의지하실 때는 우리에게도 큰 기쁨과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그 기쁨과 영광이 때로는 지독한 아픔과 슬픔으로 드러날 때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이 당신의 전 존재를 맡기고 의지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때문에 더 큰 고난과 역경의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임마누엘의 탄생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어 줍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신 인생하고 안 계신 인생하고는 삶의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이 다르고 은혜가 다릅니다. 따라서 오실 주님을 경건하게 기다리면서 새해를 축복으로 활짝 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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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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