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4 29.6%
[청주] 세상의 소금과 빛
조회수 | 45
작성일 | 20.02.09
[청주] 세상의 소금과 빛

-------------------------------------------------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죄도 없으신 분이 죄 많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어떤이가 “빛으로 오시는 당신은 제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였듯이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둠을 비추려 빛(“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8,12).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시간 빛과 소금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이미 빛이요, 소금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1테살 5,4-5).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뱣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5,8).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13,12).

이미 소금이요, 빛이거늘 짠 맛을 내지 못하고 밝게 비추지 못한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소금이 짠 맛을 내고, 빛이 빛을 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미 존재의 이유를 잃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면 짠맛을 잃은 소금과 다를 바 없어 결국은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금이 되고, 빛을 비추어 주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오늘 복음을 통해 비추어진 모습은 “착한 행실”입니다. 의도적인 착한 행실이 아니라 삶에 젖어있는 나의 모습이 다른 이의 모범과 표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구체적 실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비추어 생각해 봅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이사5,10).하고 기록한 대로입니다.

“네 가운데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명절에 서로의 만남을 위해 모였지만 얼마나 많은 다툼이 많았는지....상처를 키웠던 사람도 있습니다. 시기, 질투와 미움으로 흉보고, 비난하고 모함하는 말을 내려놔야겠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의 말은 언제나 정답고 또 소금으로 맛을 낸 것 같아야 합니다”(콜로4,6). 말은 말 많은 것을 싫어하고, 말꼬리 잡는 것도 싫어하며 말을 뒤집는 것도 싫어한답니다. 헛된 말을 하지 않고 진실한 말만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소금이 쉴까”라는 속담을 아세요? 어떤 일에도 절대로 굽히거나 변하지 아니하고 틀림없어 매우 미더움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미더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의 빛이 새벽처럼 터져 나오고”,,,“암흑이 대낮처럼 되리라”(이사58,10).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 관심을 두면 사랑의 나눔과 말조심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희생의 봉헌을 하고 위로와 희망이 되는 말을 한다면 그 자체가 소금이요, 빛입니다.

소금의 역할이 뭡니까? 자신을 녹여 맛갈지게 하고 부패를 막는 것입니다.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부패하지도 않고 세상의 부패를 막습니다. 또한 소금은 절이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향력을 말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사람도 절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불평, 불만이 많고 교만한 사람을 감사의 사람, 온유한 사람, 겸손한 사람으로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소금의 절정은 맛을 내는데 있습니다. 소금은 일단 사용이 되면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지만 그 기능은 여전히 발휘합니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음식의 맛을 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제 맛은, 드러나지 않게 이웃 안에서 사랑으로 녹아나야 합니다. 희생과 봉사를 통해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생명의 가치를 알게 해 주며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소금의 삶입니다. 인생의 맛을 잃었던 이들이 우리들의 희생으로 맛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 촛불을 보십시오.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녹이지 않고서는 결코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희생이 없이는 세상을 비출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회가 밝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둡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이렇게 어둡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빛이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의 세상을 어둡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이 부족하고, 식량이 부족해서입니까? 과학이 미발달해서입니까? 학문이 부족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오늘의 삶의 현실은 과거에 비해 소비는 늘어났지만 더 가난해 졌고, 기쁨도 줄어들었고, 집은 커졌지만 가족 수는 줄었습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는지 모르지만 소중한 가치는 줄어들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고민은 줄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나 개신교, 불교등 제도 종교의 의례와 가르침 그리고 계율은 따르지 않으면서 개인적 신앙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늬만 신자인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두운 것은 의롭고 밝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알면서도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됨이 적어서입니다. 진리가 부족해서입니다. 정의가 바로 서 있지 않고 사랑이 결핍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빛이 빛을 비추지 않고,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빛이 더 필요합니다. 소금의 역할이 간절합니다.

어떤 분을 만났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열흘을 입원했대요. 특별히 아프지도 않은데 일행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제로 다른 사람들도 아프지 않았답니다. 이쪽, 저쪽 보험금을 받게 되었는데 치료비를 제외하고 1백 여 만원씩 받았다고 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 신자가 이정도인데.....사도 바오로는 선언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는 사람,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 하십시오”(필리2,15).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진실을 가리는 어두움, 정신의 어두움, 마음의 어두움을 비춰야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이 나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은 어두운 밤에 더 빛나게 보입니다. 사회가 어둡다고 생각될수록 우리의 빛이 비추어져야 하겠습니다. 세상이 부패했다고 생각될수록 우리에게 소금의 역할에 대한 소명을 일깨웠으면 좋겠습니다. 까만 밤에 우리의 삶이 더욱 빛나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2월 9일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청주] 광야,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는 자리 
!   [인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섬김의 삶을  [7]
!   [마산] 기도 없이 죄를 알 수도, 이길 수도 없다.  [5]
!   [군종]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2]
!   [수도회] 악마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3]
740   [안동]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2] 1801
739   [대전] 악마는 주님을 3가지에 넘어지도록 환심을 삽니다.  [4] 2435
738   [수원] 예수님이 유혹을 받으셨다  [7] 2546
737   [의정부] 차차 마귀의 유혹  [2] 511
736   [대구] 예수님의 유혹 퇴치법  [4] 2450
735   [부산] 하느님 말씀으로 사는 사순 시기  [7] 2329
734   [서울] 빵, 재물 그리고 명예(군림)  [5] 2237
733   [전주] 유혹을 끊는 연습을 하라  [1] 2201
732   [광주] 사순절, 그 광야와 유혹  10
731   [춘천] 삼겹 - 빵, 꼭대기, 경배  11
730   [원주] 사탄의 유혹  [4] 2384
729   (자) 사순 제1주일 독서와 복음 (에수님께서 40일 단식 후 유혹 받으심)  [4] 1965
728   [수도회]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4] 1797
727   [마산] 원수가 내 이웃?  [2] 1912
726   [군종] 누가 원수인가?  [2] 1771
725   [인천]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  [5] 1812
724   [의정부] “용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닫는 선물!”  [2] 1497
723   [수원] 원수를 사랑하여라  [4] 2124
722   [대구] 원수 사랑  [2] 1128
721   [서울] 마음의 진화  [9] 2020
720   [부산] 사랑의 심화와 확장  [5] 1718
719   [안동]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1] 400
718   [대전] 원수는 멀리 있지 않다.  [2] 1843
717   [춘천] 사랑합시다  [1] 1811
716   [원주] 원수 사랑, 예수님 따라 하기  81
715   [전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1944
714   [청주] 원수를 사랑하여라 – 하느님 나라의 풍경  [1] 83
713   (녹) 연중 제7주일 독서와 복음 (원수를 사랑하여라.)  [6] 1545
712   [수도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6] 1681
711   [인천] 계명의 완성은 사랑  [5] 1957
710   [서울] 편견과 독선의 그물망에 갇히지 않는 믿음  [4] 2005
709   [수원] 마음 떠난 율법 준수는 형식주의  [5] 2196
708   [군종]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  [3] 1886
707   [춘천] 십계명  [3] 2048
706   [마산] 사랑을 함에 있어  [3] 2051
1 [2][3][4][5][6][7][8][9][10]..[19]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