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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분명한 선택
조회수 | 112
작성일 | 20.02.14
[안동] 분명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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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매 순간 찾아오는 하나의 시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에 무엇을 포기해야함을 동반하기에 우리는 어떠한 선택 앞에서 망설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삶의 매 순간에 어떠한 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들은 모이고 모여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선택 없이 우리의 삶은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 또한 하나의 선택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민족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해야할 것과 선택하지 말아야할 것을 나열한 하나의 보기 같은 것이었지요.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포기라는 것이 뒤따르듯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곧 세상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쾌락을 포기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선택 앞에서 주저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율법을 선택하고, 하느님을 선택해야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현실적인 유혹 앞에서 망설였고, 때로는 하느님이 아닌 인간적인 복락을 빌어준다고 믿었던 이방신들과 우상들을 숭배했고, 각종 향락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 그들은 하느님의 징벌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나약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율법이 제시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 율법을 관통하는 정신을 이야기하심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를 이야기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선택 앞에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상의 것, 곧 “예”와 “아니요”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이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우리는 세상 속에서 정말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요? 혹시 우리는 세속의 가치와 하느님의 가치 사이에서 오가며,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는가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선택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함’을 이야기하듯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하느님을 선택함은 ‘세속의 가치를 포기해야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보장받은 이들이라면 우리의 선택은 명확해야합니다. 세상의 유혹과 쾌락이 아닌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의 율법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이제 우리 앞에 생명과 죽음이 놓여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것을 선택한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이 세상이 주는 온갖 쾌락을 선택한다면 우리에게 영원한 죽음이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무엇을 선택하겠느냐? 너는 이 중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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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박지훈 디모테오 신부
2017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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