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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라자로의 소생
조회수 | 28
작성일 | 20.03.27
Isle of Purbeck.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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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라자로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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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수난과 고통을 묵상하기 시작한지 5주째 들어갑니다. 요즈음 따사로운 햇살이 이러한 묵상의 깊이를 더해주는 듯 합니다.

저는 여러 화분을 방안에 놓아두는 것을 좋아합니다. 화분이 있으면 방안이 포근해 지기도 하고 밝아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너무 건조하지도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화분을 놓고 꽃을 보기 좋아하지만 전 화분의 화초들을 잘 키우지 못합니다. 물도 제때에 잘 주지 못하고 방이 건조하기도 하고 온도도 잘 맞추어 주지 못하나 봅니다. 그래서 방에서 키우는 화초들은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죽어가는 화초들이 불쌍해 보여서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여 보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듯 합니다. 더 이상 살려 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살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 중에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기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도 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고 이 기적 후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굳건히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라자로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 중에 가장 핵심은 ‘부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라자로의 소생으로 우리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분께서는 우리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라자로의 소생 안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담겨져 있고, 또한 우리의 죽음과 부활도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차디찬 무덤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라자로를 소생시키심으로 우리 모두를 당신의 구원 계획안에 넣으십니다. 또한 많은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죽음까지도 구원해 주시려고 노력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당신 곁에 언제가 함께 하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은 우리의 삶에서 죽음을 통해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죽음과 부활의 반복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어진 임무를 다하지 못함을 통해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동료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고통을 준 일들을 통하여, 나만의 행복을 생각하고 행동한 많은 일들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끊고 나를 하느님의 나라에서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삶 안에서의 죽음을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살아나고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키우다가 죽어버린 화초는 다시금 살려 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아무리 많은 영양분을 주어도 살려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주시는 전능하신 분께서는 우리의 삶의 순간순간들의 죽음을 다시 살려내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관심을 언제나 생각하며 부활을 준비할 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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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최장민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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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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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사순 제5주일을 맞아 우리가 듣게 되는 말씀들은 부활의 희망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에제 키엘 예언자를 통하여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선포하시면서 무덤과도 같은 유배 에서 해방시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제2독서에서는 바오로 사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 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통하여 부활이 이루어질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무덤에서 일으키시어 당신께서 부활이요, 참 생명의 주인이심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약속과 희망은 지금의 우리 에게도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때론 유배의 노예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느님 자녀로서의 참으로 소중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세속의 가치들의 노예로 살아갈 때도 있고,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하고 눈물을 흘리던 마르타와 마리아처럼 세상의 시련과 슬픔 속에서 나약해지고 무력해질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신앙인이 아니라 무덤 속에 부패한 시신처럼 악취를 풍기는 이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과 사회의 한계 속에서 힘겨워 하는 우리 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더는 어둠과 고통의 무덤 속에서 머물지 말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에 따라 자신을 가두고 있던 자괴감과 수침 심의 커다란 돌을 치우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욕심과 유혹의 천을 풀어 버리며, 예수님의 빛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세속적 가치의 수건을 걷어버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보내고 있는 사순 시기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삶에 대한 결단의 시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길이요 진리요 생명 이신 주님을 향하여 힘차게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무덤에 갇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이 여정에 함께하고 계실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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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민호 바오로 신부
2017년 4월 2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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