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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찾아지고 누려지고
조회수 | 89
작성일 | 20.07.24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의 마지막 말씀으로, 그것을 차지하는 기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전쟁이 잦았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피난을 떠날 때 보물을 밭에다 묻어서 숨겨두었는데요, 나중에 누군가가 그것을 우연히 발견해 그 밭을 사게 되면 합법적으로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값어치 나가는 귀한 진주를 찾은 상인 역시도, 발견한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에 그의 기쁨이 컸음은 당연했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그리워하기만 할 뿐 아직은 무언지 잘 모르는 우리에게 주님은 그 신비를 쉽게 알도록 비유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의 이 비유를 듣다 보면 자칫 그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모두 처분해서 그걸 사야만 한다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하면 당연히 살 수 있다는 오해까지 불러일으키게도 합니다.

지금의 우리 눈엔 마냥 신비롭게 비추어지는 하느님 나라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무엇보다 귀중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를 얻는 것은 댓가를 지불 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선물로써 우리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주어진다는 것이 비유 말씀에서는 발견한다는 것으로 빗대어 표현되었는데요,

성경의 희랍어 원문으로는 ‘에우리스코(εύρίσκω)’ 라는 단어로, 그 뜻은 ‘신비로운 것을 발견하다’입니다. 이 단어가 성경 외에 당시 문학 양식에서는 ‘갑자기 이해되다, 숙고를 통한 영적인 발견, 깨닫고 보니 어디 어디에 있다, 얻다’ 등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러한 뜻들을 아울러 고려해서 의미를 살펴보면, 하느님 나라란 그것을 사려고 애를 썼는데 문득 이해되어 깨닫고 보니 이미 그 한 가운데에서 거저 얻어져 있던 것이 아닐는지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계속 뭔가를 해야만 그 나라를 얻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땀 흘림의 결과처럼 보상받는 차원이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만 발견한 하늘나라의 신비와 기쁨을 그저 맘껏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는 것이 훨씬더 중요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사지 않아도 되며,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발견은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요?
두 가지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밭의 보물처럼 우연히 발견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바라지만 방법도 모르고 아는 것도 없었는데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보물이 우연처럼 다가옵니다. 초기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인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연히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고, 온통 그분께 사로잡힌 이들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진주 상인처럼 그 가치를 알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참된 진리는 그분과 그 나라에 있음을 알고 찾으니,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행복을 누립니다. 유다교에서 개종하여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이들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들은 구약의 율법과 계명이라는 진주가 이미 있었지만 그리스도라는 최고로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는, 언제까지나 그 분과 함께 하기로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발견도 같을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어려워 못했다고 해서 크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여태껏 그 안에서 많은 은총을 받으며 살아오고 있었음을 어느 날 알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왔다면 굳은 믿음을 지녀왔다는 확실한 증거이니, 그보다 더 든든하고 신나는 일도 없습니다. 그 모습이 진실하게 하늘나라를 발견하고 만끽하는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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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권상우 베드로 신부
2020년 7월 26일 ‘청주교구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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