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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가나안 이방인 출신 여인
조회수 | 117
작성일 | 20.08.13
[군종] 가나안 이방인 출신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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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딸의 구마를 청한 여인은 가나안 출신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살던 이들은 <바알>이라는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복음에서
여인이 가나안 출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여인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도 자신을 강아지에 비유함에도 굴하지 않고, 치유를 청하는 가나안 여인에게 원하는 것을 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며,
주님의 식탁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 먹는 양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은
이방인이자 우리와는 다른 신을 섬기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의 간절한 믿음을 보시고,
이방인인 그녀에게도 빵의 부스러기를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도 예수님처럼 유다인과 이방인, 자유인과 종,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구분하고 배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들의 신앙을 바라보고, 믿는 법을 배우며, 자비를 구하는 마음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당신의 빵을 우선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지만,
자신의 양심에 따라, 그리고 주님을 믿지는 않지만,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도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고 칭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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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현우 가브리엘 신부
2017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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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구원행 열차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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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예수님은
평소에 우리가 접하던 모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언제나 온유하고 사랑이 많으셨던 주님께서 왜 제 딸을 위해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자비를 간청하는 여인에게 매정하게 대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도움을 청하는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시며 나무랍니다.

이 말씀은 내용만 놓고 보면 한 사람을 ‘개’로 비유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우리는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이기에 구원을 받았고, 이방인들은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라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당연하게 받아들 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이방인들은
‘개’로 비유 당해도 뭐라 할 수 없는, 구원이라는 것은 당연히 이스라엘 민족들을 위해 마련돼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이방인 여인을 통해 구원은 출신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렇게 무시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한 믿음에 감동한 예수님은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순간 그 여인의 딸이 낫게 됩니다. 이 여인을 통해 구원의 문제는 종족이나 민족에 관계된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관계된 문제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에 속해있다는 것,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님을 믿고 있느냐?’ 또한 ‘세례받은 이로서 얼마나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느냐?’가 구원에 있어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병사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이렇게 설명합니다.

‘세례를 받으면
구원행 KTX 열차 티켓을 받은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도 덧붙입니다. ‘그 구원행 티켓은 세례받은 신자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열차를 타는 탑승구까지 도착하는 길을 알아야만 기차에 탈 수 있다. 그 길을 찾아 좌충우돌 부딪히며 나아가는 여정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다.’라고 말입니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단순히 세례를 받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고, 선행을 실천하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키워나가야 하며, 부를 쫓기보단 가난을 선택해야 하고, 많이 가지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나누려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선물처럼 얻어지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행 열차를 타기 위해
탑승구까지 도착하는 여정을 향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실천하는 한 주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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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경욱 미카엘 신부
2020년 8월 16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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