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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듣기 좋은 소리보다 사랑이 먼저다.
조회수 | 85
작성일 | 20.09.06
[청주] 듣기 좋은 소리보다 사랑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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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넓고 높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으로 바른 충고를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저는 강론 시작에 앞서 항상 ‘사랑합니다’ 하고 말문을 엽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가끔은 ‘하늘만큼, 땅만큼’‘사랑합니다’를 합니다.
한 번 해볼까요?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땅만큼. 하늘만큼. 예, 좋습니다. 우리 서로 서로가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2독서 로마서에서
사도바오로는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의 의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13,8) 라고 ‘사랑’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참으로 연약함을 지녔습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너무너무 기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흐르면 똑같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에게! 이것밖에 안 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은 것에 젖어있으니까 좋은 줄을 몰라요. 그래서 인사를 바꿔야 하겠습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땅도 알고, 하늘도 알고!’ 즉 하늘도 알고 있을 만큼, 땅도 알고 있을 만큼 사랑해!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려거든 하늘 앞에, 땅 앞에 부끄럼 없이 해야 하겠습니다.


복음은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 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18,1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충고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습니다. 칭찬은 달디 달지만 충고는 한없이 쓰니 섣불리 쓴 약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도 알만큼 큰 사랑을 갖지 않은 이상 섣불리 충고를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땅도 알 만큼 큰 사랑이 없는 한
칭찬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이 없는 칭찬은 그로 하여금 칭찬의 노예가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달지만 독이 되기 쉽고, 충고는 쓰지만 약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칭찬과 충고를 하기에 앞서 주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충만케 해야 하겠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충고를 한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충고해서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부터 하자!”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좋은 충고를 받아들여 현명하게 판단하고 수행하십시오. 충고는 하느님의 소리요, 하느님의 뜻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미련한 자는 제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이는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어리석은 사람은 제 잘난 멋에 살고 슬기로운 사람은 충고를 받아들인다.)(잠언12,15)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충고를 할 수 있는 큰 사랑과 온유함을 간직해야 하며 동시에 충고를 하느님의 소리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함을 지녀야 합니다.

성경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묵시3,19).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 하신다.”(히브12,5)하십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소리로,
하느님의 뜻으로 다가올 충고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소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큰 은총입니다. 한 주간 바른 충고를 통해 우리를 성장시켜 주시도록 기도하고 듣기 좋은 소리보다 바른 말에 귀 기울이시길 희망합니다. 사실, 충고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충고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더욱 경시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효과 있고, 살아 있는 충고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가지고 대하면 사람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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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을 기억해 봅니다.
주인공 장발장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빵 한 조각을 훔쳐 먹습니다. 이 빵 한 조각 때문에 19년간 중 노동을 선고받은 장발장은 출소한 후 길을 헤매다가 한 신부님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성당에서 묵게 됩니다. 신부님은 장발장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먹을 것을 주며 위로 합니다. 장발장은 처음 받는 인간적인 대접에 감격합니다. 그러나 신부가 잠든 사이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은촛대를 집어 들고 도망칩니다. 잠시 후 경찰에 붙잡힌 장발장은 성당으로 끌려옵니다. “신부님, 혹시 은촛대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이 사람이 성당에서 훔친 것 같아 잡아왔습니다.” 말없이 장발장을 바라보던 신부님이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그 촛대는 제가 이 사람에게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날 이후 장발장은 변했습니다. 불쌍한 이웃을 돌보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훗날 이웃의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 시장까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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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형벌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자녀, 친구,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도 정곡을 찌르는 논리 정연한 설득과 충고가 아니라 진심어린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타일러라’는 말씀은
남의 잘못을 지적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이웃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배려하여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남에게 충고는 잘하면서
남의 충고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연약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한계를 잘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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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하권 12장을 보면 나탄이 다윗을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탄은 다윗을 찾아와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부자에게는 양도 소도 매우 많았지만 가난한 이에게는 품삯으로 얻어 기르는 암컷 새끼 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 새끼 양을 제 자식과 함께 키우며 한 밥그릇에서 같이 먹이고 같은 잔으로 마시고 잘 때는 친 딸이나 다를 바 없이 품에 안고 잤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부잣집에 손님이 하나 찾아왔습니다. 주인은 손님을 대접하는 데 자기의 소나 양은 잡기가 아까워서 그 가난한 집 새끼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다윗은 몹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나탄에게 소리쳤습니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 없다. 그 양 한 마리를 네 배로 갚게 하리라.”

그 때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습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다윗은“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하고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청하고 주님께서 내리시는 시련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합니다. 결국 죄의 씨인 다윗의 아들이 죽고 밧 세바가 아들을 낳게 되는 데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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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을 범하여 하느님 눈 밖에 날 수 있으나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죄를 고백하면 그분의 크신 자비가 새 삶을 살도록 안배하십니다. 예언자 나탄의 소리를 귀여겨들었던 다윗처럼 우리도 쓴 소리를 귀여겨들을 줄 알고 하느님의 자비에 나를 온전히 맡겨야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더 큰 은총이 우리를 감싸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많이 사랑하고 나 혼자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말며 모두가 더불어 잘사는 공동체를 이루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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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9월 6일
461 45.2%
[청주] 용서 - 새롭게 살게 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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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타일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게 안되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안되면 “교회에 알려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말씀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형제를 얻으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잃었던 형제를 반드시 찾으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형제를 얻고, 되찾기 위한 중요한 방법인 ‘용서’ 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용서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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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시민 전쟁이 전국으로 급격히 퍼지고 있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정부군이 한 마을을 탈환했습니다. 그때 어느 건물의 한 모퉁이에 심한 총상을 입은 적군 한 명이 죽어가며 소리쳤습니다.

“제발 죽기 전의 마지막 소원이니 나에게 신부님을 모셔다 주십시오.”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그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적군 병사의 간절한 호소에 안타까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탁대로, 급히 신부님을 찾아 모셔 왔습니다.

신부님은 죽어가는 병사에게 몸을 기울이며
“고해할 것이 있습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병사는 간신히 입을 열어 되물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이 마을 성당의 주임 신부님이십니까?”
신부님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적군 병사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해 성사를 끝마친 신부님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온몸에서 땀이 쉬지 않고 흘렀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침착하게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이 부상병을 집 안으로 옮겨 치료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죽어가던 병사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신부님께서 나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신부님이니까, 당연하지 않나.”
그러자 적군 병사는 숨을 들이마시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내 손으로 32명의 신부를 살해했습니다.
마을을 점령할 때마다 사제관을 뒤져서 총, 칼, 몽둥이로 모두 다 죽였습니다. 이 마을에서도 사제관을 뒤졌으나 신부를 찾지 못해 그의 부모와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신부님께서 이토록 죄 많은 나를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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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단순히 잃었던 형제를 얻거나, 되찾는 것만이 아닙니다. 앞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용서는 잘못한 형제를 새롭게 살게 하는 것입니다. 곧 용서는 형제를 위해서, 그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자기에게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용서하지 못한 사람도 용서받지 못한 사람도, 고통을 겪기 때문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용서받지 못하는 사람이나, 사는게 사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용서는
서로를 위해, 서로에게 생명을 줌으로써, 서로가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가 살기를 바라시는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지어도 그 형제를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합니다. 어떤 마음과 모습으로 ‘용서’하며 살고 있는지, 한 주간 동안 각자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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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이길왕 바오로 신부
2020년 9월 6일 ‘청주교구 주보’에서
  |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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