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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두 아들의 비유 - 회개와 위선
조회수 | 106
작성일 | 20.09.26
[전주] 두 아들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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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말로만’, 또 ‘겉으로만’ 하는 ‘위선적인 신앙생활’로는 하느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고 자주 경고하셨습니다(마태오 복음 7장 21절 / 23장 3절).

‘위선’은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자신도 속이고,하느님도 속이려고 하는 ‘큰 죄’입니다.

(자기 자신도 속인다는 것은, 자신이 위선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는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위선자들은 모두 그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사제들의 위선을 꾸짖으실 때마다 그들이 심하게 반발한 것은, “나는 위선자가 아니다.”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온 마음’과 ‘온 삶’으로 해야 하는 생활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과는 ‘삶’ 전체가 달라야 합니다.

‘회개’의 경우에도 “회개합니다.”라고 말은 하는데,
보속도 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회개도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에 있는 ‘두 아들의 비유’는,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고, 말로만 회개하는 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고, 동시에 진실하게 회개하고,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을 격려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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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오 복음 21장 28절-3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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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두 아들’은 ‘두 부류의 죄인’이고,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아버지의 지시는 ‘회개’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싫다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간 아들은,
‘죄 속에서’ 살면서 회개하기를 거부했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서 회개와 보속을 한 사람들, 즉 “죄인이었지만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했지만 가지는 않은 아들은, ‘죄 속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회개한다는 말만 잘하고 실제로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싫다고 대답하고, 끝까지 일하러 가지 않은 세 번째 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겠다고 대답하고, 즉시 일하러 간 네 번째 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부류의 죄인들에 대해서만 말씀하신 것은 진실한 회개와 위선적인 회개를 비교하고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들을 언급하신 것은
그 당시에 죄인이라고 낙인찍혔던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들을 하나의 예로 들어서 말씀하신 것이고, 그들 전체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라는 말씀의 뜻은, “먼저 회개한 사람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입니다.

(그러나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라는 말씀이
“먼저 죽는다.” 라는 뜻일 수는 없고, 또 연옥은 회개하는 곳이 아니라 보속하는 곳이기 때문에, 연옥에서 천국으로 먼저 들어간다는 뜻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언제’ 죽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지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어떻게’ 얻게 되는지에 관한 말씀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 자격을 얻는 방법은 ‘회개’와 ‘충실한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을
“끝이 좋으면 그만이다.”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회개와 보속은 아주 길고 힘든 과정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렇고, 죽은 다음에도 그렇습니다.)

긴 세월 동안 죄를 짓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1초 동안 회개한다고 해서모든 보속을 면제받고 천국으로 직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연옥이 필요합니다.

만일에 “인생 전체를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막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그때 회개하면 되겠지.”라고 지금 생각하고 있다면, 또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면, 마음대로 막 살고 있는 그 생활도 죄가 되지만, 그런 회개 자체가 위선이고 죄입니다.

더 중요한 점은 ‘죽을 때’와 ‘회개할 때’를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하는 그 생각이 대단히 오만하고 신성모독적인 생각이라는 점입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회개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릴 것입니다. (실제로 회개와 신앙생활을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요한이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쳤다는 말씀은, 그의 ‘회개 선포’를 가리킵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요한을 믿었다는 말씀은,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를 받아들여서 회개했음을 뜻합니다.

(그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고, 사회적으로 죄인이라고 낙인찍힌 사람들이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회개를 했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라는 말씀은, 대부분의 사제들과 원로들과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신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았고, 자신들의 삶을 바꾸지 않았음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들 전체가 위선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나타나엘처럼 예수님의 칭찬을 받은 율법학자도 있었는데, 그 수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회심 전에는 바리사이파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다른 바리사이들 같은 위선자는 아니었습니다(필리피서 3장 5절-6절).>

<다른 사람이 위선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고, 또 그 판단 자체가 죄를 짓는 일이기도 합니다(마태오 복음 7장 1절-5절). 지금 나에게 중요한 일은, “나는 위선자인가, 아닌가?”를 반성하는 일입니다.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지 않는 것, 그것도 위선이고,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일에 대해서‘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하는 것, 그것도 위선입니다. “내가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렇게 심한 위선자는 아니다.”라고 스스로 자기 위안을 하는 것, 그것도 위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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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0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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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누가 이 사람들을 위해 울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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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착좌 후 첫 방문지로 이탈리아 최남단의 작은 섬 ‘람페두사’를 찾아가셨습니다. 람페두사 섬은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주민들이 자유와 일자리를 찾아 유럽에 가기 위해 거치는 곳으로 지난 25년간 약 2만 명의 난민들이 조난이나 난파로 사망한 곳입니다.

교황님은 그곳에 도착해
‘배들의 공동묘지’라 불리는 해안에서 보트 위에 제대를 마련하고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강론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언급하신 사제와 레위의 위선에 빠져버렸습니다. … 누가 이 사람들을 위해 울고 있습니까?”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2018년 7월 6일,
람페두사 방문 5주년 기념미사를 봉헌하시며 “난민과 이주민을 환대하지 않는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바리사이와 같습니다.”라고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저는 노숙자, 중독자,
난민, 토착민, 점점 더 소외되고 버림받는 노인들과 그 밖의 많은 이를 생각합니다. 이민은 제게 특별한 과제를 줍니다. 탁월한 복음 선포자이시며 복음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특별히 가장 작은 이들과 동일시하십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우리가 이 땅에서 상처받기 쉬운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부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복음의 기쁨」, 210.209항).

사람의 고귀함은 그의 출신이나 언어,
피부색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많은 이주민을 그들의 출신, 언어, 피부색으로 판단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편견’인 것이지요.

교회는 올해로 106번째 ‘세계 이민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하느님 앞에 우리는 똑같은 인간이며,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민족과 언어, 문화와 얼굴색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이주민은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넘어온 어려움 중에 있는 형제, 자매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기에 그들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내가 사랑받고 있기에 그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여러분의 ‘편견’을 지워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 자신의 인생이라는 시간 속에서 수없이 부서졌을 그들의 아픔을 연민으로 감싸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그 마음이 ‘환대’가 되어 그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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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황규진 세례자 요한 신부
2020년 9월 27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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