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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조회수 | 62
작성일 | 20.09.27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마태오 복음 21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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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시간은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예수님께서 남긴 것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을 통해온 세상이 환해진다.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이 사랑을 맛보게 된다. 예수님은 맑은 실천이다. 맑은 실천은 믿음을 동반한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는 것이 하느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이다. 하느님 나라는 믿음으로 가득 차기에 너무나도 뜨겁다. 다시 일어난 이들의 뜨거운 이야기로 가득찬 나라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오히려 세리와 창녀들이다. 그들을 먼저 알아보시는 주님이시다. 가장 먼저 예수님께로 달려 온 세리와 창녀들이였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죄인들의 마음을 읽어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먼저 알고 계셨다.

맑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의 길을 사랑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먼저 마음이 가는 것에 맑은 기도가 있다. 예수님께 자리를 내어주는 가난함이 있다. 예수님과 먼저 만나는 세리와 창녀들이다. 끝내 그들을 되찾으시는 주님의 따뜻한 구원이다. 믿음을 먹고 사랑을 만나는 생명의 기쁜 소식이다.

올바른 믿음이 있고 실천이 있는 곳에 하느님 나라가 아름답게 있다. 복음은 그래서 하느님 사랑을 찾으려고 다시 일어서는 이들의 가장 큰 기쁨이다. 그 복음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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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2020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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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결정적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는 개방성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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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의 무대 위에는 전혀 다른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츤데레’ 맏아들과 ‘따로 국밥’둘째 아들입니다. 때는 농번기였던가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침 식탁에 앉은 두 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 좀 하자고 초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먼저 맏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니,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흔들며 “싫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아침부터 날씨는 푹푹 찌는데, 오늘 하루는 집에서 푹 좀 쉬고 싶었는데, 아버지로부터 ‘일하러 가자!’는 말을 들은 맏아들은 갑자기 짜증이 확 났던 것입니다.

울그락불그락한 얼굴로 밥 숟가락을 식탁 위에 탁 놓은 다음, 자기 방으로 들어온 맏아들의 모습이 참으로 솔직하고 인간적입니다. 마치 오늘 우리들의 얼굴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몇초 지나지 않아 즉시 후회합니다. ‘동생 저거는 분명히 밭에 안갈거고, 혹시 아버지 혼자 퇴약볕 아래 일하시다가 쓰러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밀려왔습니다. 맏아들은 즉시 마음을 고쳐먹고, 궁시렁궁시렁, 투덜투덜거리면서 포도밭으로 일하러 갔습니다.

분명 싫다고 말해놓고, 어느새 포도밭에 먼저 도착해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맏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고 기쁘겠습니까?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 역시 눈녹듯이 풀렸을 것입니다. 참으로 훈훈한 광경입니다.

그런데 ‘말 따로 행동 따로’‘따로 국밥’ 둘째 아들은 어떠했습니까? 대답 하나는 시원시원합니다. 말로는 순식간에 만리장성을 쌓습니다. 입으로는 뭐든 못할게 없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요청 앞에 둘째 아들은 지체없이 대답했습니다. “가겠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솔직히 가야겠다고 마음도 먹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침 밥 먹고 나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가야지!’했는데, 마침 티비를 트니 절찬리에 방영중인 아침 드라마가 한창입니다. ‘요것만 보고 일어나야지!’했었는데,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요란스레 전화기 벨이 울려 받아보니 친구들이 다 모여있고, 선수 한명이 부족하답니다. 이미 포도밭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신나게 축구 한 게임 뛰고 난후, 뒷풀이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해는 벌써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그런 사람 많습니다. 세례나 성사(聖事), 서원이나 서품을 통해 엄숙하면서도 단호하게 ‘예!’라고 대답은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믿습니다!’ ‘끊어버립니다!’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절대 순명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저 말 뿐입니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계획서는 거창하나 결실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전형적인 둘째 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크게 슬퍼하시고 실망하실 모습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바는 둘째 아들에서 맏아들로 건너가려는 노력입니다. 결국 참된 마음의 변화, 진정성 있는 회개입니다.

예수님 시대 세리와 창녀들은 사실 바르지 못한 길을 걷고 있었고,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 전체가 죄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회개와 개심(改心)의 요청이 당도하자 즉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느님 나라가 선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걱정할 수 있겠지만, 교회 안에 속해 있다고 안심해서도 안됩니다.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것, 결심하고 서원한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마음을 크게 고쳐먹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금 즉시 생활을 개선을 마음의 태세가 중요합니다. 언제든 기회가 왔을 때 결정적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두는 개방성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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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2020년 9월 27일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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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익어갑니다. 우리의 믿음도 익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전례>
‘회개의 행동’와 ‘믿음의 행동’에로의 초대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음의 뉘우침만 있는 회개가 아니라 행실로 돌아오는 회개와 말로만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행하는 믿음에 대한 촉구입니다.

<제1독서>는
그릇된 견해로부터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 배경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를 당하게 되자, 조상들의 죄 때문에 자신들을 벌하시는 하느님은 공정하지 않고 복수심이 많아 자신들을 멸하신다고 여기고 불신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에제케엘 예언자를 보내시어 그들을 그러한 그릇된 견해로부터 회개를 촉구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이야?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에제키엘 예언서 18장 27절 32졸)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공동체의 불화에 대한 위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예수님의 낮춤과 순명의 삶을 모범으로 제시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대한 순종으로 누리시는 영광을 필리피 신자들이 깨닫기를 촉구하며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피서 2장 5절)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이지 그 상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는 수석사제들과 원로 백성들의 재정수입과 권위에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무슨 권한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 추궁하였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권위에 대해 반문하시고 이를 대답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이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이는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싫습니다.”라고 대답하였지만 일하러 간 아들과,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서도 일하러 가지 않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석사제들과 원로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오 복음 21장 31절)

예수님께서는 ‘누가 “예”라고 응답한 사람이냐?’고 묻지 않으시고,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산상설교”의 마지막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 복음 7장 21절)

“아버지의 뜻”은 “예”라는 응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응답에 따르는 순명의 삶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 당신의 양식’(요한 복음 4장 34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야고보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보서 2장 17절, 26절)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계명을 매일 행동으로 채워라.”(4,63) 하시고,
창설자 베르나르도 똘로메이 성인은
‘실행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았으며, 말한 바는 모두 실행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실행’에 대한 주제를 대할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사람이 있으니,
히틀러 암살에 연루되어 처형된 예언자적 신학자인 본회퍼입니다.
그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은 행위 속에서만 믿음일 수 있다.”

비유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오 복음 21장 31절)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너무도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존경받는 이들이었고, 직업적, 형식적으로 이미 부르심에 응답한 의인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의 잘못보다 남들의 허물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와 창녀들은 그 당시 천시를 받던 이들이었고, 드러난 자신의 죄를 항상 부끄럽게 여기며 사는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남들의 허물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
곧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는 의인들과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는 죄인들이 있습니다.”

그레고리오 교종은 이런 풍자를 들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천국에 가면, 놀랄 일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기 같은 죄인이 천국에 오다니 하고 놀라고,
둘째는 교황, 주교, 신부들, 독실하기로 유명했던 신도회장들이 천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놀라고,
셋째는 평소에는 소위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천국에 많이 와 있는데 놀란다.”

이러한 말씀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마태오 복음 21장 32절) 끝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지 않겠느냐?”

-오늘 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오 복음 21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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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뜻을 제 양식으로 삼고,
당신의 일을 완수하게 하소서.
응답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실행으로 믿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당신 말씀에 따라 생각을 바꾸고,
당신 의로움을 실행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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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2020년 9월 27일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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