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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하느님 나라의 드레스 코드
조회수 | 114
작성일 | 20.10.10
[청주] 하느님 나라의 드레스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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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 코드(Dress Code)라고 표현되는 복장 규정은
사회의 다양한 장소와 기회, 또한 행사나 파티 등의 장면에서 당연히, 마땅하게 입어야 할 복장을 말합니다. 만일 정해진 드레스 코드를 지키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거절의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 파티의 드레스 코드는
정장입니다. 반바지 차림으로는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드레스 코드는 외적인 형식만을 위한 허례허식이라기보다는 그 모임에 초대해준 사람, 또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된 에티켓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각의 모임에 그에 걸맞은 옷을 입고 참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희망하고 우리 삶의 최종 목표인 ‘하느님 나라’라는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하느님 나라의 드레스 코드는 무엇일까요?

오늘 1독서 이사야서에서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잔치, 하늘나라 잔치 초대의 보편성과 그 잔치의 풍요, 기쁨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죽음이 정복된 나라,
모든 이들의 아픔과 고통 그로 인한 눈물이 그쳐진 나라, 그 나라가 바로 하느님이 베푸시는 잔치이자 하느님이 계신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느님이 베푸시는 잔치, 그 초대의 보편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초대받은 이들의 모습, 태도에 대해서 혼인잔치의 비유, 잔치에 걸맞는 예복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느님의 자비로 하늘나라 잔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당신 나라 잔치에 함께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 자비로운 초대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 아름다운 잔치에 마땅한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땅한 예복은 하느님 사랑이라는 상의와 이웃 사랑이라는 하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온전히 입을 때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베풀어 주시는 죽음도 없고 눈물도 없는 영원한 기쁨의 잔치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유혹과 시련 앞에서
하느님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사랑하고 먼저 선택하는 하느님 사
랑. 점점 더 각박해져 가는 이 세상, 코로나19로 인해 이웃을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 세상에서 이웃을 하느님처럼 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이웃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예복을 입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나요?
그 옷이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옷인가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하느님 나라의 드레스 코드는 바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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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최승환 요셉 신부
2020년 10월 11일
460 76%
[청주] 초대 받음을 기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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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착한 사람, 악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를 사랑하시고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십니다. 그리고 모두를 당신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합당한 준비로
초대에 응한 사람이라야 잔치의 기쁨을 나누게 됩니다. 이 시간, 부르심과 응답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움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금 나와라 와라, 뚝딱!’ , ‘은 나와라, 와라 뚝딱!’ 하고 방망이를 두드리면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망이지만 두드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요술감투’도 있었습니다.
그것 역시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끄집어내어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소용이 있게 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장 17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구원에로 초대 되었지만 결코 아무나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초대에 합당히 응하는 사람이라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왕이 종들을 보내
초대 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했습니다.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것이 넉넉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초청 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초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종들을 때려주며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마음을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마태오 복음 22장 5절).

다시 말하면,
자기 살기에 바빠서 남의 집 잔치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불러준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고 자기의 일상에 바빠 잔칫상을 외면했습니다.

이제 처음에 초대된 사람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우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초대 받은 사람 중에도 예복을 입지 않아 꾸중을 듣게 됩니다.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오 복음 22장 12절). 결국은 그도 바깥으로 쫓겨났습니다.

여기서 예복이란 깨끗한 마음의 준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은 잃었던 아들에게 새 옷을 입혀주심으로 방탕을 벗어난 새 삶을 축복해 주십니다(루카 복음 15장 22절).

바오로 사도는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입었습니다”(갈라티아서 3장 27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통해 새 삶을 요구하고 계시는데 옷의 표현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마르코 복음 2장 21절).

묵시록 7장 11절 이하를 보면
옥좌에 앉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 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하고 묻자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묵시록 22장 14절에서도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빠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권한을 받고, 성문을 지나 그 도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복은 거룩한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기 11장 44절).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루카 복음 1장 50절).

결국, 초대에 응한다는 것은,
그만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게 하면 또 그만한 자비를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십시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말고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십시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르코 복음 14장 38절). 하신 예수님의 한탄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합니다.

마음으로는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주님을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위한 수고와 땀은 외면하는 게 현실입니다.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늘 풍성한 잔칫상이 마련되어있습니다. 미사 참례, 성체 조배, 레지오, 성령기도 모임, 빈첸시오, 신심 단체 모임 등 하지만 참석하지 않으면 그만한 은총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총을 입기를 희망하면서도 신앙모임보다는 친목단체 모임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을 챙깁니다. 세상의 바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앞세우면
주님은 그만큼 뒷전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내 것을 먼저 챙기고, 그다음에 주님 것을 챙기려 한다면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드리지 않는, 요술감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쓸 줄 모르는, 재능이 있으면서도 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음은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 있다면 그 장애물을 거두어 주십사 기도해야 합니다. 참으로 신앙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오 복음 22장 14절).

이 말씀은
구원의 문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분명코 모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추수 때에 알곡은 곳간에 쌓여지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지듯 마지막 날에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의 문에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 잔치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에 응하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답하면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필리피서 4장 19절).

또한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이사야 예언서 25장 8절).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일상 안에서의 부르심에 응답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믿음을 위하여 열심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디모테오1서 6장 12절).

성 베르나르도의 고백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내 행복은 오직 주님 곁에 있는 것,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뿐입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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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0년 10월 11일
  |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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