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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선을 행하며 지나가리다.”
조회수 | 85
작성일 | 22.11.24
“선을 행하며 지나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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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리며 대림 제1주일을 맞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1테살 5,2)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그날을 모른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구체적인 날짜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하십니다. 이런 불확실성은 오히려 우리의 영적 삶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죽는 때가 각 사람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삶에 충실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 선과 사랑을 꾸준히 행할 기회를 되찾을 수 있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이 세상과 우리 믿는 이들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세대가 그리스도께서 지금이라도 돌아오실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디아서 6,14)

우리가 복음의 깊은 뜻에 귀 기울이며 철저히 그에 따라 살아간다면 죽음이든 세상 종말이 갑자기 들이닥치든 서서히 오든 별로 걱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각자의 종말이나 죽음은 그가 알지 못하는 날과 시간에 오기에 이 사실만은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오시어 이 세상의 시간에 끝을 가져오실 때, 그분은 “늘 깨어 있으라”(루카 21,36참조)고 하신 분의 명령을 따른 사람들을 그분의 자리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사도 1,6-7) 복음 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죽음과 세상의 마지막이 언제인지 알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개인적 죽음이 이미 각자의 삶에 속한 것임을 아는 만큼, 모두는 늘 깨어 선을 행하며 악의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그 누구였더라도 최후의 심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선을 행한 이와 그렇지 못한 이로 완전히 나뉠 것입니다.

“내 혀로 죄짓지 않도록 나는 내 길을 지키리라.
입에 재갈을 물리리라”(시편 39,2) 그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선을 행할 수 있고 항상 악의 도둑을 경계해서, 삶의 종말과 그에 뒤이은 심판을 맞을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한 영혼으로 깨어 있으면서, 악의 도둑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부지런히 기쁘고 떳떳하게 온 힘을 다해 선한 일들로 내내 바빠야 합니다.

“내 눈에 잠도, 내 눈가에 졸음도 허락하지 않으리라”(시편 132,4)

우리는 이미 주님과 함께 있으니 이 길은 선하고 이 길을 걷는 이는 갈수록 선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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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최상희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2022년 11월 27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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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회는 화려한 향과 꽃으로 장식하지 않고 소박한 제단과 함께 사제는 자색 제의를 입습니다. 회개와 절제, 간절한 기도, 기다림을 상징하는 자색은 대림시기는 기다림의 시기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희망없는 삶, 절망의 삶을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십니다. 주님만이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이처럼 대림은 간절한 희망과 기쁨을 안고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기다림은 희망입니다. 희망은 푸르름입니다. 그런데 보라색이 어떻게 푸른색으로 변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희망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대림시기에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대림 첫주는 노아처럼 준비해야합니다. 노아는 주님의 말씀을 믿으며 적극적인 태도로 준비하였기에 모두를 삼켜버린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적극적인 태도라는 것은 두가지를 의미합니다. 암울한 일상 속 미래에 대한 희망입니다. 사람들은 희망으로 살아갑니다. 희망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하늘나라 생명에 비하면 지금 이 세상은 빨리 지나가는 삶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세상밖에 알지 못합니다. 아직 가 보지 않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행복한 지 알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지금 이 세상의 고통과 시련이 가장 어렵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만일 희망이 없다면, 살아갈 수도, 일을 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희망이 있기에, 농부는 이른 새벽 눈비를 맞으며 땅을 일구고, 씨 뿌리고 잡초를 뽑으며 풍성한 수확을 기대합니다. 희망이 있기에, 학생들은 밤을 새워 공부하며 좋은 성적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바로 이러한 희망으로, 노아는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용기와 인내로 그토록 큰 방주를 만들었기에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희망은 주님의 약속(말씀)에 의해서만 보살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주님말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에 밝은 미래의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희망은 험난한 고난을 극복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태도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의 희망은 용기를 주지만 그 희망자체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은 환상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희망이 이루어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적극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며 그러한 자세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앉아서 좋은 결과만 기다린다면 밝은 미래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밤을 세워 공부하는 적극적이고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농부들은 풍요로운 수확을 걷어들이기 위해 비를 맞고 뜨거운 햇빛 속에서 땀흘리고 열심히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노아는 앉아서 주님의 구원만을 빌지 않았습니다. 이웃의 비방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만 하였습니다.

‘스스로 돕는 사람을 하늘도 돕는다.’ 노아는 이것을 실천한 사람이며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하였기에 주님께서는 당신이 약속하신 대로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긴 대림시기와 같습니다. 고난과 실패로 불안과 우울, 절망감이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노아처럼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어두운 세상에 희망과 밝은 미래를 주실 것입니다.

앉아서 기도만 하는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지금 나의 처지에 맞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주님 사랑의 마음으로 아무리 작고 하찮은 일이라도 열심히 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오시는 때를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오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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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대교구 키엣 대주교
2022년 11월 27일 조명연 신부 제공
  |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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