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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조회수 | 180
작성일 | 22.11.24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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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환자 영성체를 하다 보면 본당의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게 됩니다. 대부분 고령에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입니다. 어느 분은 찾아가서 뵈면 처음 알아보지 못하시지만 ‘성체’라는 말에 자세를 고쳐 앉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십니다. 이 모습에 평생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오신 모습과 예수님을 많이 기다리고 계셨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은 성탄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대림 시기의 시작입니다. 대림 시기는 희망과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먼저는 종말에 오실 예수님을 희망하며 기다리는 시기이고 다음으로는 성탄으로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기다림은 갈망이 있을 때 의미와 보람이 있습니다. 갈망 없는 기다림은 지루함과 무미건조함을 동반합니다. 그래서 진정 기다리고자 한다면 기다리는 대상을 애타게 그리워해야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크리스마스’라는 단편 소설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성탄 전날 저녁, 세상 모든 사람이 구세주의 탄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아들은 기뻐하며 세상에 내려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세상에 내려와 크리스마스 트리가 장식된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립니다. “내가 바로 당신들이 기다리는 구세주요” 그러나 집주인은 그를 정신병자로 취급하면서 거리로 내쫓았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다른 집을 방문하였지만 거절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아름다운 구유를 만들어 성탄을 준비하는 성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탄 자정 미사를 준비하는 사제를 만났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사제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니 구세주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제는 금새 얼굴빛이 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지금 당신이 오시면 모든 것이 다 바뀌게 되니, 지금 우리가 하는 것도, 기존의 질서도 다 무너지니, 제발 다시 돌아가 주십시오.”

대림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다리는 분을 진정 맞이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노아의 방주와 도둑의 비유를 통해 대림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깨어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은 하느님께 지은 죄로 여러 번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느님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고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대로 방
주를 준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노아를 미쳤다고 놀리고 조롱하며 방탕의 생활을 하다 홍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종말의 시간에 두 사람이 밭에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고(마태오 24,40 참조)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둔다(마태오 24,41 참조)는 말씀으로 선택받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대림 시기는 종말에 다시 오실 주님과 성탄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희망하고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보내는 대림 시기가 희망으로 가득 차 정성껏 준비하는 시간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을 때에 올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늘 준비하고 있어라”(마태오 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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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김선영 마태오 신부
2019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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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를 기다리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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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운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성탄축일 전 4주간을 대림절이라고 합니다. 대림이라는 말은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주님을 기다립니다. 세 가지 의미로 구분해 보면,

첫째로 우리를 구원하실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우리의 구원자로 탄생하셨고 실제로 인류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시고 계시니 그날을 경축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세주를 목마르게, 4천년을 기다렸습니다. 자유와 해방을 주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대림초를 4개로 하는 것은 바로 4천년을 4주간으로 상징화하기 때문입니다. 4개의 초는 예수님께서 동서남북, 온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의미합니다. 초의 색깔은 어두운 자색으로 시작하여 점점 밝은색으로 불이 밝아짐으로써 주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기쁨을 표현하고 동시에 우리의 마음도 맑고 또 밝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로 죄의 허물을 벗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정작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문이 닫혀있었고 자기들만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오시더라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심판자 주님을 기다립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그때 하늘에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세상 모든 민족들이 가슴을 치면서,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을 떨치며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태24,30).하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도신경에서도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하고 고백합니다. 미사 안에서도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그날이 준비된 사람에게는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는 날입니다. 속량의 날이요, 구원의 날입니다(루카21,28).

구세주 빨리오사! 어두움을 없이하실 분으로 빨리 오시면 좋으련만 지금 당장 심판자로서 오셔도 당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1코린1,8). 그리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1코린1,9)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쓰레기통’의 동의어는 ‘성직자’랍니다.
쓰레기통 같은 사람
남들이 인상 찌푸리는 것을 껴안는다. 아무 불평 없이.
가운데 자리 마다하고 구석으로 간다. 아무 불만 없이.
화려한 것, 화려한 곳만 찾는 성직자가 있다면
그는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정철-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은 쓰레기가 됩니다. 이러저러한 환경이나 여건을 탓하거나 핑계 대는 일 없이 근본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주 하느님, 당신 안에 뿌리 내리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해도 좋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진리의 말씀,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주 예수님 안에 머물러, 오시는 주님을 당당히 영접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비자 한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성당을 찾게 된 동기가 이웃에 사는 부부의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성당에 다니는 부부의 기쁘고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성당에 가면 무엇인가 좋은 것이 있는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고 어린 자녀에게 일직 신앙에 눈뜨게 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나오셨다고 했습니다. 사실 하느님 말씀 따라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전교한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때문에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히게 하여라”(마태5,16).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시고 당신의 영,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주신 탈랜트를 잘 활용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자기 그릇대로 빛을 발하는 것이 주님을 잘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빛을 가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셋째 의미는 우리의 일상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희망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 위에서 제자들과 동행하시면서 뜨거운 감동을 주셨던 그 기쁨을 기다립니다. 묵시록 3장20절에서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하셨습니다.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사실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가 봉헌 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시고 영혼의 양식을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이런저런 핑계로 그분을 모시지 못할 뿐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미사 안에서 성경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나를 한 번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가 밖에서 허우적거렸을 뿐입니다. “님은 내안에 계셨지만 나는 님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성 아우구스띠노).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다리기도 전에 먼저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성경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열어주기를 기다리십니다. 감실 안에서 당신을 조배하는 이들을 기다리시고 당신 앞에서 무릎 꿇어 기도하는 이들을 보고 싶어 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다리는 것보다도 더 간절한 마음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기를 희망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주님을 외롭지 않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에 앞서 언제나 기다려 주시는 주님이 계심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날들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세상의 끝 날, 종말이 언제 오든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기다리시는 그분이 계신데…그날을 대비하여 지금 깨어 준비하면 됩니다. 그날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날입니다. “주님, 제가 당신의 구원을 기다립니다”(창세49,18). 마음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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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2022년 11월 27일
  |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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