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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제주] 독선(獨善)
조회수 | 183
작성일 | 23.02.17
독선(獨善)

홀로 자기만 선하고 옳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착하고 선한 것은 좋은 겁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착한 심성과 선함은 여러 사람에게 모범이 되고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줍니다.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은 빛의 자녀에게 열리는 열매와도 같습니다(에페소서 5,9). 착하다는 말을 바보와 같다는 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련하게 착한 것과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고 해치지도 않는 똑똑하게 착한 것은 구별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기만 홀로 착하다고 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옳고 바르며, 전부 선하다고 말하는 것. 말 그대로 독선獨善입니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듯이 지나치게 자신만 맑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니 사람이 모일 리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근처에만 가도 답답합니다.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웃이 되어 따르는 사람이 있기에 외롭지 않습니다德不孤 必有鄰. 덕이 있는 사람은 맑더라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주고 받아줍니다.

오늘 복음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내주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전해줍니다. 정말 이렇게 하라고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똑같이 복수하는 이 유쾌, 상쾌, 통쾌함은 마음을 후련하게 하는데, 다른 뺨마저 내주라고요? 누가 내 오른뺨을 치거든 나도 똑같이 그의 오른뺨을 멋있게 치고 싶은 공격성의 마음이 막 올라오는데, 예수님은 그러면 남보다 더 잘하는 것이 무엇이 있냐며 오히려 반대로 하라고 일러주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나에게 상처를 준 원수가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골몰하며 끼익 끽. 마음의 칼을 가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반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니 아무리 묵상을 해 봐도 독선의 마음을 갖고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기는 영 글렀는가 봅니다. 그러기에 나만 홀로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며 자랑스럽게 입고 있는 허황된 옷을 이제는 그만 버릴 수 있기를 무릎 꿇고 기도로 청해봅니다.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기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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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허찬 베드로 신부
2023년 2월 19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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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 중에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 있나요? 그 사람의 어떤 점이 하느님을 떠올리게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봅시다.

발가락이 닮았다(마태오 복음 5장 38-48절)

우리는 자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우리 자신을 그분의 ‘아들’ ‘딸’로 여깁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무엇일까요? 서로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도 전혀 하느님을 닮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본디 자녀가 부모님을 닮은 이유는 부모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DNA는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애당초 사랑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면 할수록 하느님을 더 닮게 됩니다. 요한 1서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4,7-8) 사실 오늘 우리가 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오른뺨을 때린 이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맙시다.

우리가 사랑의 DNA를 가지고 태어났음을 기억합시다. 무엇보다도 초인적인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몸소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편이시며, 그분께서 성령을 보내주시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읍시다. 그리하여 김동인의 소설 제목처럼 우리와 하느님 사이에 발가락 정도라도 닮기를 희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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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한재호 루카 신부
생활성서 2023년 2월 19일
  |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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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한 유료 동영상 스트리밍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의 소개를 보니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유년시절의 폭력, 그로인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 무엇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의 복수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공감하는 부분은 다름 아닌 복수의 '방법'이 아니라 '왜' 복수를 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복수의 '정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복수하고 싶은 사람, 앙갚음 하고 싶은 사람이 한두 명쯤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피해를 가해자에게 고스란 히 되돌려 주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또는 몇날 며칠을 이를 갈고, 마음 속 칼날을 갈았던 기억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복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끔찍한 고통 속에, 쓰라린 상처 속에, 참혹했던 기억 속으로 되돌아가 그 곳에 머물며 곱씹고 또 곱씹으며 복수의 칼날을 갈곤 합니다.

그런데 제 아무리 정당성이 옳다고 할 수 있는 복수일지라도 그 복수가 결과적인 행위로 이어졌을 때, 과연 그 결과가 통쾌함과 짜릿함 또는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 고 생각합니다. 비극 또는 허망함으로 남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제가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여자 주인공이 온 생애 걸어 준비했을 복수의 시간이 과연 정의롭고, 옳은 시간이었을까?"라고 묻는다면 결단코 정의로운 시간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비참하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 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 또는 심적인 고통을 입었거나, 신체적인 폭력을 당한 피해자 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은 똑같이 아파 야 하고, 나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느껴야 한 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용서 없는 복수'를 이야기하며 공감할 때, 그리스도인은 '조건 없는 용서'를 하느님께 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살 않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기로 다짐하고 결심한 하느님 지 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용서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단 한 번에 원수 같은 사람을, 박해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은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을 몰라서 당 신께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를 통해서 내가 나아가야 할 신앙의 방향, 삶의 방향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 기도의 자리로 나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처음에 기도할 때 '원수 같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합니까?"라고 솔직한 마음으로 기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계속 기도하다보면 분명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변하게 되고, 기도의 주체 역시 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용서가 아닌, 원수 같은 사람을 위한 의도적인 용서도 아닌, 완전하신 하느님을 닮아 우리도 완전한 용서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기도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이 우리의 잘못이라고 여기셨다면 예수님과 나는 철천지원수가 되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은 우리를 원수가 아닌 친구로 부르셨고, 사랑으로 아껴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조건 없는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원수 같은 사람을, 나를 박해하는 이들을 복수의 대상이 아닌 연민과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 과 은총을 간절히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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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최현철 안드레아 신부
2023년 2월 19일 주보
  |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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