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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조회수 | 2,690
작성일 | 08.04.17
1.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성만찬 때 다함께 모여 부활하신 그리스도 현존의 기쁨이 충만할 때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1코린 12,3; 2코린 4,5; 필리 2,11)하고 외쳤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시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철저히 사신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생명의 원천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은 참 진리임을 증명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분을 따르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임을 굳은 믿음으로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 질문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국정교과서에 소개되는 역사상의 성현들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 14,8)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요한 14,9-10)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과 본질적으로 하나이심을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 안에 참 생명의 원천인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믿고, 그분의 구원의 말씀을 삶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주님이시기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하신 말씀이 우리 믿음의 대상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참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로 당신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심을 보여 주셨기에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진리임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사는 것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인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바로 교회”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교회인 것이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살아야 하며,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인 우리들은 예수님만이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온 세상에 선언해야 하며 믿는 바를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4.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까?

바로 우리가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요한 14,10) 하신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로 오시는 예수님과 하나 되어 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이 되어 사는 삶이야말로 그분이 생명에 참여할 수 있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세상에 보여 주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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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이정행 사도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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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바로 당신 곁에 계십니다

뵙게 해 주십시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자이쿠마르’ 교수는 하버드 대학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인생 체험담을 들려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40년 전 나는 히말라야 산을 등반한 뒤 하산하는 길에 발을 헛디뎌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울퉁불퉁한 경사면을 따라 약 2.4Km 정도의 거리를 미끄지며 온몸은 찢어졌고 엉덩이뼈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히말라야의 산간마을 한 여인의 도움으로 나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응급처치를 마친 여인은 나를 업고 걷기를 3일 간 계속해 병원이 있는 마을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여인의 지극히 관대한 사랑은 나를 완전히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행운 속에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소유하고 누린 크고 작은 것 모두가 행운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산을 오르는 열정은 나를 어느 특별한 봉우리로 오르도록 이끌어 주었지만, 추락은 내가 보다 높은 곳에 닿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학생 여러분, 부디 여러분은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한 위치에 있는지, 헌신적인 스승이나 나를 사랑하시는 부모님을 만남으로써 내게 얼마나 커다란 행운이 찾아 왔는지 깨닫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나온 자신의 생을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는 자이쿠마르 교수보다도 더 큰 은총의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은총의 체험을 체험으로 머물게 할 때에 그곳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은총의 체험이 말할 수 없는 감사로 이어질 때, 그 체험의 내면 깊은 곳에 사랑의 미소로 나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을 만나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우연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우연 뒤에는 사건 하나하나에 하느님의 개입이 있었습니다. 그분 섭리의 손길이 아닌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인생에서 행운이라고 불렀던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은총이었던 것입니다.

그 같은 은총을 체험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저 오르려고만 하였던 세상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겨 주님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지, 주님께선 늘 내 곁에 나와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요한 14,8) 하는 청을 드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와 함께 지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는 필립보에게 아주 단호히 당신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요한 14,9)

물고기가 물 속에 살면서도 물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헤엄을 치면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오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사도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일은 제쳐 놓고 식량 배급에만 마음을 쏟았습니다.

육신을 배불리 먹일 음식에만 마음을 쏟았지 영혼을 살찌울 말씀을 소홀히 하였던 것입니다. 그 같은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산란해’졌다고 일깨워 주시고 계십니다.

사도들이 식량 배급에서 손을 떼고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마음의 안정과 주님의 평온 속에 그분의 현존을 느끼게 됩니다. 신도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커다란 권력이자, 힘이 될 수 있는 식량배급의 유혹에서 벗어나자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 우리는 곁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주님께서 내 인생 여정에 함께 하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의 불안은 사라지고 든든한 동반자이신 주님 때문에 인생이 기쁨과 환희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 같은 기쁨을 체험한 이들이 자신의 영적 제물을 주님께 바치며, 신령한 하느님의 집을 짓는데 쓰일 산 제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추기경 시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본 요소는 기쁨입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삶과 함께 하며 그러한 삶조차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그런 기쁨입니다.”

고통의 인생 여정에서도 주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그분의 동행은 고통을 이길 힘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배광하 신부
  |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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