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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예수님은 우리의 자랑
조회수 | 1,454
작성일 | 08.06.22
학창시절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며칠 동안 용돈을 모아서 결국 그것을 사고는 뿌듯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부러워하는 친구들의 시선에 은근히 우쭐해했던 기억도 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경험을 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알리고 싶어 합니다. 좋아하는 운동이나 취미 등을 누군가와 함께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것을 좋아하고 함께한다는 생각에 더 열중해서 그 일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 누군가에 강요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좋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내가 위로받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데는 소홀한 우리들을 발견합니다. 이제 우리도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가족과 이웃들에게 자랑해야 할 때입니다. 쑥스럽다고 광신도라고 오해받을 거라고 언제까지 망설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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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김대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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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두려움 속에 용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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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많다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 순간에도 자신이 원했던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근심 걱정이 사라진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지켜야 되는 의무 때문에 더 부담이 든다고 합니다.

교회도
부족한 인간들이 모인 공동체이기에 여러 가지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한편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에 세상의 시선이 그리 곱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운 마음마저 듭니다.

이번 주 제1독서에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절규가 나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유다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지만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한 예언자의 고뇌가 생생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예레미야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 이름을 남긴 많은 성인 성녀들이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고뇌를 안고 있었으며 때로는 하느님께 절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충실히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생겨날지 모릅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0,26)는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오직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영혼과 육신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있는 하느님뿐이시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조그만 어려움에도 제자들이 두려워하며 벌벌 떠는 모습이 복음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늘 믿음이 약하다는 꾸중을 듣던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젖어 있던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 알 정도로 세심한 분이시기에 그분만을 믿고 용기를 가질 것을 촉구하십니다.

교회의 역사 안에
극심한 박해 속에서 신앙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순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을 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삶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많은 번민과 고뇌가 뒤따랐을 것입니다.

극심한 박해로
인한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교회 안팎으로 몰아닥치는 위기, 그리고 본인의 내적인 갈등중 최소한 하나라도 겪지 않은 성인 성녀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그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데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대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교회 안팎으로
위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역사 자체를 보면 위기가 없던 시대는 없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는 지금의 위기가 더 커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는 예수님의 말씀 하나에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위기를 헤쳐 나간 수많은 신앙 선조들의 삶을 묵상하며 지금의 위기에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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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김규성 요셉 신부
2020년 6월 21일 인천교구 주보에서
  |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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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힘이 셉니다. 그래서 과거의 휘둘림에 한 대 맞으면 그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힘듭니다. 과거는 제자리에 있을 뿐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과거는 지금 현재에도 자신의 힘을 과시합니다. 어쩌면 미래에도 그 힘의 위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4월 15일. 제 어머니께서 하늘 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언젠가는 이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솔직히 어머니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어떻게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펑펑 흘리게 됩니다.

분명 과거의 일회성 사건이지만, 지금도 그 위력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어떤 쪽으로 그 힘을 발휘시키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글과 강의를 사랑해주셨습니다. 언제나 제가 쓴 글을 읽으셨고, 이를 위해 컴퓨터도 스스로 독학하셨습니다. 이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을 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이렇게 움직입니다. 또 자라고 변하고 몰라보게 달라집니다. 주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따라 움직이며 자라고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즉,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심판 날에 우리 의지의 숨겨진 양심이 드러날 것이고, 지금은 흐리게 보이는 것들이 모두에게 드러나게 된다고 하시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의 위협이나 모략 또는 그 힘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육신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영혼을 죽일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영혼이 없으면 죽고, 영혼은 하느님이 없으면 죽는다.’라는 성 아오스딩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육신의 죽음을 슬퍼할 것이 아니라 죄를 슬퍼해야 합니다. 죄로 인해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귀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귀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단순히 주님을 안다고 말로만 고백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과거의 주님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움직이는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하느님 나라 초대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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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20년 6월 21일
  |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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