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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완전한 추종
조회수 | 1,555
작성일 | 08.06.26
"너희는 다른 신을 예배해서는 않된다. 나의 이름은 질투하는 야훼, 곧 질투하는 신이다"(출애 34,14). 그렇다 하느님은 갈림 없는 마음의 완전한 추종을 요구하신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 완전한 추종에는 곧 십자가가 따른다.

1.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의 종교이다.

불교 신자인 아주머니가 성당에 다니는 딸을 시집보내면서 신자 사위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성당에 가서 혼배미사를 보게 되었다. 혼배미사를 하고 온 아주머니가 딸에게 성당에 처음 가 본 소감을 틀어놓았다. "애야 내가 오늘 성당에 가서 네가 믿는 예수님을 보니까 섬뜩하기만 하더라. 남자가 발가벗긴 채 십자가에 매달려 온 몸이 피투성이 이고, 자기 몸도 하나 제대로 못 가누고 비참하게 축 - 늘어져 죽었는데 거기다 빌어서 뭘 얻겠다고 성당에 가나? 절에 한번 가봐라. 부처님은 평온한 표정에 번쩍이는 금빛에 얼마나 의젖하고 복스럽게 생겼는가!"

참으로 성당과 법당의 분위기를 느낀 대로 생생하게 대조시켜 보여주는 말이다. 사실이지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받고 죽은 사형수이고, 석가모니는 왕자였다. 십자  고상(苦像)은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사형수를 주님으로 믿는 종교이다.

2. 예수를 따름과 십자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갈림 없는 마음으로 당신만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너희는 다른 신을 예배해서는 않된다. 나의 이름은 질투하는 야훼, 곧 질투하는 신이다"(출애 34,14).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 사람이 될 자격이 없다"(마태 10,37) 고 말씀하신다. 참으로 지독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남김없이 완전히 따르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셨다. 온 생애를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마태 26,39) 하는 자세로 사신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까지 바치셨다.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고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필수적으로 십자가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사랑이신 하느님의 뜻을 완전히 따르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일 뿐 아니라, 어둠은 항상 빛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아버지의 뜻을 따랐고, 아브라함은 당신의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도록 내놓았다. 여러 사도들은 생명을 바쳤고, 순교자들도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야 했던 것이다. 많은 우리의 선조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 때문에 집안과 가문에서 추방당해야만 하지 않았던가? 요즘에도 수도자나 성직자의 길을 택할 때 이를 이해 못하는 가족들과 육정을 끊어야 할 때도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 되는 길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인 것이다.

3. 그리스도인은 죽어서 사는 자들이다.
  
그리스도교가 인류 문화사에 특이하게 기여한 점은 '고통과 죽음의 의미'를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고통과 죽음을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인간에게 고통과 십자가를 구원의 원천으로, 죽음을 부활에 이르는 문으로 보게 한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당하는 모든 고통은 묵은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는 아픔임을 알기에 기쁘게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를 전환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물에 잠기고 다시 올라오는 세례예식은 그 자체로 우가 바로 그리스도처럼 영원히 살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삶을 시작하는 것임을 잘 드러내 준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고 믿습니다"(로마 6,7) 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그분을 닮아 그분이 들어가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그분처럼 끊임없이 죽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마태 10,38). 성당에 다니며 열심히 기도하는 신자는 많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가? 그들 대부분은 아들의 합격을 위해, 남편의 진급과 사업을 위해 또 누구의 병이 낫기를 바라면서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다가 효과가 없으면 무당에게도 예사로 찾아간다.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필요하다면 고통도, 십자가도 기꺼이 지겠다는 성숙한 신앙인은 드물다.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바로 구원임을 깨달아야 한다. "유다인들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따름입니다" (1고린 1,29) 하신 사도 바오로의 이 단언은 곧 우리의 깨달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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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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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가족안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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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주일이다. 취지는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자는 데 있다. 왜 기도해야 하는가. 교회의 으뜸 어른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책임질 일이 많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분을 위해 기도함은 당연하다.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그분인들 어찌하겠는가. 한편 우리들도 주어진 책임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삶의 은총은 누구에게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른에겐 운명적 책임이 있다. 가족이다. 그들을 돌보며 사랑하는 것은 삶의 기본이다. 그 가족에 대한 말씀이 복음에 나온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당신보다 사랑해선 안 된다고 하신다. 아들이나 딸을 당신보다 사랑해서도 안 된다고 하신다. 어려운 말씀이다. 의도하는 참 뜻을 모르면 오해하기 좋은 말씀이다.

애정은 사람을 눈 멀게 한다는 말이 있다. 순수한 애정일수록 더 그렇다.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한쪽 면만 보기 때문이다. 부모님 때문에 신앙 생활을 접어야겠다는 사람이 있다.

자식의 앞날을 위해 종교를 바꿔야겠다는 사람도 있다. 연인의 마음을 잡으려 범죄에 뛰어드는 것은 영화 속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에 계산이 따르면 누구라도 눈먼 행동이 가능한 것이다.

복음 말씀은 이것에 대한 경고다. 부모에 대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도 맹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누구나 자신의 방법대로 사랑하려 한다. 자기 고집대로 사랑하려 한다.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랑은 본능이 아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그러니 그분 뜻 안에 있어야 인생의 힘이 되고 아름다움이 된다. 주님의 뜻을 벗어나면 맹목적 사랑의 유혹을 받도록 되어 있다.

자식이 고통의 원인으로 바뀌고 남편과 아내가 인생의 멍에가 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처음부터 그랬던 가족은 없다. 살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원인은 단순하다. 서로가 자기 방법대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공통 분모인 주님 뜻을 몰랐기 때문이다. 자연히 가족은 십자가로 바뀔 수 있다. 아프고 힘든 십자가로 변해갈 수 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당신보다 사랑해선 안 되며 아들이나 딸을 당신보다 사랑해선 안 된다는 말씀의 의미가 여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부모는 부모다울 때 힘이 있다. 남편과 아내 역시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답다. 그렇게 살라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예수님의 권위도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답게 사셨기에 가능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하느님의 아들로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자신의 자리와 위치를 지키는 것도 덕행임을 알 수 있다. 노력과 수련 없이는 쉽게 도달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오늘은 교황주일. 교회 어른들에게 필요한 은총 허락하여 주시길 청하자.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기도하자.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고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기도하자.

가족이 주는 십자가는 아프고 힘들다. 대신 져줄 수도 없는 십자가다.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삶의 일부요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질 수 없는 십자가다.

어느새 유월 삼십일. 금년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돌아보면 많은 사건과 만남이 있었다. 모두가 우연인 듯해도 어느 하나 주님 시선에서 벗어난 것은 없었다. 삶은 모두가 필연인 것이다. 내 몫의 십자가 역시 필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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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신은근 신부
  | 06.26
459 0.4%
[마산] 마음만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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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덕분입니다.
신앙생활이 쉬워졌습니다.
주일미사 빠져도 이제는 그렇게 죄책감이 들지는 않습니다.
성당 활동과 봉사도 거의 연락이 없어서 부담감도 없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신부 노릇도 편해졌습니다.
미사만 드리면 됩니다.
고령화되어서 존폐위기에 내몰린 레지오 걱정은 잠시 접어 둡니다.
주일날 음료 봉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행사 때 어떤 음식을 준비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달 한 번 병자 영성체도 나가지 않아도 되고,
단체 모임과 회식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항상 어려울 때 하는 말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그런데 신앙은 마음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족 간의 사랑이 마음만으로는 안 되고,
십자가 지는 것도 마음만으로는 안 되고,
목숨을 잃는 것도 마음만으로는 안 되고,
받아들임도 마음만으로는 안 되고,
우리가 받을 상이 마음만 받는 상이 아닙니다.

시원한 물 한잔 없는 마음만 마실 수 없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의 신앙이 더 마음만 신경 쓰는 신앙으로 나아갈까 걱정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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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남영철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2020년 6월 28일 마산교구 주보에서
  |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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