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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같은 처지에서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기
조회수 | 1,790
작성일 | 08.06.26
올바른 사람살이엔 정말 필요한 것 그래서 반드시 실천해야만 할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런 것들 중에는 열매 맺기가 어려워 자주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것들이 상당수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용서(容恕)하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이미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듯이 사람살이는 용서를 필요로 한다. 자기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용서라는 해방과 자유를 간절히 원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토록 원하는 것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채, 옹졸한 가슴 속에 온갖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쌓고 또 쌓아서 싸늘한 돌덩이를 하나씩 안고 살아간다.

한학자(漢學者)들이 웃을 일이지만, 용서란 단어가 참 재미있다. 특히 '恕'라는 낱말을 풀어보면, 如 밑에 心이 붙어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같은 마음' 혹은 '마음이 같다'는 의미로서, 결국 용서한다는 것은 마음이 같아지는 행위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겠고, 또는 같은 마음을 지니기만 한다면 용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인간 삶의 한 부분이라고 표현해 볼 수도 있겠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말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마음과 마음이 여타의 매개체 없이 직접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꾸미지 않은 인간의 본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이란 바로 우리가 너무 잘 알아버린,
그래서 도무지 인정하고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던 우리들의 비참함이다. 비참하다는 표현이 다소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이 비참함이야말로 우리를 겸손과 관용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전환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비참함을 외면한 채 모두 제 잘난 맛에 취해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쓸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다. 화려함이나 강인함 또는 단호함 뒤에 숨겨진 우리들의 말 못할 아픔과 상처 그리고 그로 인한 자기연민.

이것이 우리가 서로 용서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살이의 신비이다. 사람살이는 부족한 사람들끼리 같은 처지에서 같은 마음으로 서로 위로하며 부족함을 채워주고 함께 울고 웃을 때에 진한 맛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서운한 것만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내가 서운하고 아파할 때, 다른 이도 결국 같은 처지에서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소극적인 자기연민이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배려 곧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용서를 청할 사람도 많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도 많다. 얼마 살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연이 나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그때그때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살이의 참 맛을 느끼며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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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신동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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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에게 건네는 시원한 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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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조금은 어렵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박해가 없는 지금,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목숨을 잃을 수 있을까요?

지난 5월 기도학교의 피정 중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배론 성지 안에 있는 성인들의 유해를 조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배론성지 안에는 여러 군데 성당이 있고, 또 많은 제대가 있습니다. 이 제대들 가운데 유해가 모셔진 제대는 대성당에 3개, 소성당에 1개, 성 요셉 성당에 1개로 총 다섯 개의 제대에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님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 최양업 신부님의 아버지인 최경환 프란치스코의 유해, 자신의 집을 성 요셉 신학교로 내어 놓으신 장주기 요셉의 유해,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성인들 가운데 가장 높은 벼슬에 올랐던 남종삼 요한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배론 성지 가장 높은 곳에서 영면하며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최양업 신부님의 유해까지 하면 총 다섯 분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배론성지 입니다.

이분들의 삶을 알아갈수록
열정적으로 살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과연 저 시대에 살았으면 저분들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당당히 하느님을 증거하며 순교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저만의 고민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며 순교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과연 수많은 고문과 회유 속에 내가 끝까지 하느님을 증언하며 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좌절하고 주저앉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있는 시대 상황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박해시대 하느님을 믿었다면 성인들처럼 용감히 순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을 수 있고, 그 당시 열렬히 순교했던 분들도 이 시대로 온다면 순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더라도 이것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가 신앙 때문에 죽을 위험은 없더라도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이익이나쾌락을 희생할 각오는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희생의 각오 없이 순교를 향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제자들에게 건네는 시원한 물 한잔', 이주 작고 사소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도 상을 약속하십니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해도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 큰일에도 충실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큰 일을 해내는 사람은
이미 작은 일에도 충실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순교자들은 순교하기 전부터 이미 작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그 사랑의 크기를 키워 목숨까지도 바치는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건넬 '시원한 물 한잔'은 무엇입니까?
또 그 물을 건넬 '작은 이'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그 사랑을, 믿음을 키워 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 작은 사랑을 실천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내고, 그 사랑을 키워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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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성원경 대건안드레아 신부
2020년 6월 28일 원주교구 주보에서
  |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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