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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밭에 숨겨진 보물이란
조회수 | 2,308
작성일 | 08.07.24
소나무 씨앗 두 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위틈에 떨어졌고, 다른 하나는 흙 속에 묻혔습니다. 흙 속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은 싹을 내고 쑥쑥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바위틈에 떨어진 씨앗은 조금씩 밖에 자라지 못하였습니다.

흙속에 떨어진 소나무는 “날 보라니까. 나는 이렇게 크게 자라는데, 너는 왜 그렇게 조금씩 밖에 못 자라니?”라고 바위틈의 소나무를 비웃었습니다. 바위틈의 소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깊이깊이 뿌리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태풍이었습니다. 산 위에 서 있던 나무들이 뽑히고 꺾여지고 있었습니다.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소나무는 꿋꿋이 서 있는데. 흙 속에 서 있는 소나무는 뽑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바위틈의 소나무가 “왜 내가 그토록 모질고 아프게 살았는지 이제는 알겠지? 뿌리가 튼튼하려면 아픔과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거야.”라고 쓰러진 소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는 일은 모두 고통의 순간을 거친 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통의 저 끝 한 자락에는 기쁨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슴 한 켠에 희망의 보금자리를 틀어쥐고 살아갈 수 있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은 하늘나라는 무엇입니까? 저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은 하늘나라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속에, 고통 받고 아파하는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마음 안에 이미 하늘나라의 삶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더 주고 싶어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우리가 알게 되고 그것을 닮아 갈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영광이 우리안에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닮기란 결코 싶지 않을 것입니다. 바위틈에 떨어진 소나무 씨앗처럼 많은 시련과 고통이 우리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맞추고 끊임없이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성사 생활에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그분의 거룩한 마음을 닮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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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문현철 라파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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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교구의 부제님 한 분이 6개월의 봉사활동을 위해서 소록도에 왔습니다.

사제서품 100일을 앞두고 스스로 사제직을 포기하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
자신을 가르치신 신학교 신부님께 상황을 상세하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신학교 신부님은 사제직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 대신에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에 소록도에서 6개월 만 봉사활동을 해 보고
그 이후 결론을 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 부제님은 내키지 않았지만
존경하는 신부님의 충고이기에 받아들였습니다.
6개월의 자원봉사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제님이 일을 시작한 곳은
한센병 후유증이 가장 심한 행복병동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5시까지 병동에 가서 환우들 얼굴도 씻겨드리고 식사를 도와주고
다 끝나면 양치질까지 해드립니다.
이 봉사활동을 통해서 부제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고
결정적으로 이곳 환우들에게 병자 영성체
즉 봉성체를 다니면서 구체적인 체험을 합니다.
부제님은 무엇인가 부족했던 그 2%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6개월 동안 봉사자로 있으면서 부제님은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사제품을 받고
소록도 성당에 첫 미사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신부님의 첫 미사 강론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강론의 주제는 밭에 묻힌 보물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소록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강론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밭에 묻힌 보물은 바로 “고통”입니다.

살면서 당하는 굴욕과 손해, 이해받지 못함,이것이 밭에 묻힌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밭에 묻혔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고통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 때문에 손해 본 적이 있나요?
있다면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굴욕을 당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마음 안에 보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면서 그것으로 이해받지 못하고 외로우십니까?
축하드립니다.
우리의 주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주님을 직접 뵈올 것입니다.
그때 자랑합시다.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보물 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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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연준 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7월 30일
  |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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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자기 생의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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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생의 밭이 있다.
뿌리고 심고 가꾸며 열매를 거두는 밭이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하고 귀한 보물들을 자기 밭에 심는다. 부지런히 거름과 물을 주며 가꾸어 나간다. 희망을 지니고 열매를 기다릴 것이다.

어느 누군가 무언가를 심었겠다.
거듭 관심을 주고 애쓰더니 마침내 열매가 열렸다. 과연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줄 것처럼 탐스러웠다.”(창세기 1장 6절)

탐스러운 열매를 거두었더니,
그러나 삶은 혼란스러워졌다. 성공과 부귀를 안겨줄 것만 같던 열매는 오히려 허무함과 무기력만을 가져다주었다. 쾌락과 경쟁, 시기심과 미움, 불평과 불만의 열매는 삶에 어둔 그림자를 드리웠다. 비옥했던 그이의 밭은 어느새 거친 황무지처럼 메말라갔다.

다른 누군가도 자신의 밭을 정성스레 돌보았겠다.
소중한 무언가를 심고 가꾸었더니 마찬가지로 열매가 열렸다. 결실은 아주 조그마했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그다지 먹음직하지도, 탐스럽게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이는 그 열매를 소중하게 여기며 감사하게 거두었다. 그러자 그이의 삶에 잔잔한 평화가 깃들었다. 기쁨과 감사함,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이라는 열매는 그이의 삶에 빛을 비춰주었다. 이렇게 조그마한 그이의 밭은 작은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지친 새들이 와서 몸을 쉬어가는 보금자리가 되어갔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마태오 13장 14절)

여러분의 밭에는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으신가요?
누구나 자기만의 밭이 있습니다. 삶과 마음이라는 밭이. 그러나 그 밭에 어떤 보물을 심고 가꾸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세속적인보물을 심고
가꾸는 이의 밭에서는 세속적인 열매가 맺어질 겁니다.

반면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심고 보살피는 이는 '하늘나라' 의 열매를 거두게 되겠지요.

한순간에 맺어지는 열매란 없습니다.
매일 매일의 작은 일상에서 관심을 두고 반복되는 지향이 나중에 맺는 법이니까요. 부디 우리가 조그마한 나의 밭에서, 매일의 작은 일상에서 '하늘나라' 의 보물을 심고 마음을 쓰며 키워나가면 좋겠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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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박상우 클라오 신부
2020년 7월 26일 ‘광주대교구 주보’에서
  |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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