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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신앙의 보물을 사셨습니까?
조회수 | 1,963
작성일 | 08.07.26
밭에 숨겨진 보물과 진주의 비유입니다. 밭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바라보세요. 그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삽니다. 밭에 숨겨져 있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숨겨진 보물과 진주는 바로 주님의 말씀과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업적 안에 숨겨진 하늘 나라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큰 기쁨과 풍요로움이 됩니다.

큰 기쁨과 가치를 주는 그 보물 자체를 얻기 위해 자기가 소유한 모든 것을 봉헌하는 것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숨겨진 보물처럼 값진 진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신앙의 보물과 진주를 찾습니까? 아니면 가격이 많이 나가는 보물과 진주를 원합니까?

하늘 나라는 모든 종류의 고기들이 가득 채워진 그물과도 같습니다. 그물이 가득 차 건져 올리면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밖에 내던집니다.

역시 이 모든 것은 바로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세상 종말 때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자비와 사랑과 인내의 하느님이십니다. 종말의 심판을 걱정하지 말고 지금 종말을 살아가는 것을 걱정합시다.

비유의 결론은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끝을 냅니다. 듣는 것으로만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에 대한 새 가르침과 옛 보석에 의해 인도되는 집 주인의 지혜로 실천할 수 있으며, 하느님 나라와 함께 행동하도록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비유 말씀을 마치고 나서 거기를 떠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보물과 진주임을 아직 모르는 듯 합니다. 우리도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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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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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희망’은 살아가는 이유가 됩니다. 그래서 희망을 잃은 이는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은 어떤 희망을 가진 이들일까요? 어쩌면 신앙인은 ‘세상의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은 ‘히늘 나라’에 대한 말씀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과 값진 진주를 발견한 사람의 상황은 좀 다릅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보물을 찾기 위해 밭에 갔다기보다는 우연히 보물을 발견한 듯합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생 각지도 않은 횡재를 맞기도 합니다. 반면에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은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처럼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우리는 ‘더듬거리다가 그 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사도 17,27)

이렇게 하느님을 만나는 과정은 다를 수 있겠지만 주님을 만난 이후의 삶은 같은 길을 걸어갑니다. 보물과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삽니다.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릅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만난 모든 이가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쳐주셨지만 사마리아 사람만이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흡은 어디에 있느냐?"(루카 17,17)심지어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떠납니다.(요한 6장) 예수님과 마주친 마귀들은 이 세상 누구보다 그분이 누구신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분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만난 바오로 사도는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3,7-9)라고 말합니다.

‘블루오션’이라는 경제용어가 있는데 이는 남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시장을 말합니다. 신앙인은 굳이 세상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것을 우리는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값진 보물을 팔아 쓰레기를 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일 것입니다.

▥ 대전교구 김경식 미카엘 신부 : 2017년 7월 30일
  |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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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보물이 숨겨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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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숨겨진 보물의 비유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보물이라는 매개체를 가지고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칫 우리가 이
세상에서 생각하는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은 일확천금의 이야기로 오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나오지 않고, 이야기가 중간에 끝나버리고, 그 다음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세상의 보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풍요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었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나에게만 있는 보물이고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누구한테나 기쁜 소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왜 기쁜 소식은 알아듣기도 어렵고 알아보기조차 어려울까요?

밭에 묻힌 보물이나 희귀한 진주는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농부와 상인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의 가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가치를 발견했을 때 주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도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선택과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 이야기는 하늘나라의 가치와 그 가치를 발견했을 때의 무한한 기쁨, 그리고 그에 따르는 노력과 대가를 잘 보여줍니다. 보물이 어느 날 갑자기 거저 굴러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끊임없이 하늘나라의 가치를 갈망해야 복음 말씀이 주는 기쁨을 알수 있고,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이 누리던 거짓 평화와 소유를 포기하고 수고와 노력을 다하여 기쁘게 하느님 나라에 온전히 들어갑니다.

물론 하느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곧 성경은 하느님 나라를 보여 주는 곳간과 같습니다.

현명한 신앙인이라면 그때그때 살면서 필요한 해답을 말씀에서 찾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말씀의 곳간에서 오랫동안 숨겨진보물을 발굴해 낼지도 모르고, 그토록 애타게 찾던 진주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에서 기쁨을 찾기 시작한 이들은 이제 자기가 가진 모든 것과 말씀을 맞바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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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신백철 베드로 신부
2020년 7월 26일 ‘대전교구 주보’에서
  |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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