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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감사와 청원
조회수 | 1,613
작성일 | 08.08.02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릴 때, 청원기도와 감사기도의 형식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두가지 기도는 분명 하느님께서 즐겨 받아주시는 기도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기도를 할 때, 잘 해야 될 필요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모범으로 남겨주신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진정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기도의 형식을 보면,
먼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나서, 그다음에야 우리가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을 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어떠한가? 종종 기도 가운데 내게 필요한 것만을 구할 뿐 기도할 수 있는 순간을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는 빠뜨리는 경우가 많지 않았는지... 또 종종 초자연적인 현상을 동반하는 신기한 일,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기적’ 을 바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어주셔야 한다는 식으로 기도드리지는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적’이라는 말로 번역된 히브리말의 본래 의미는
그저 신기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을 때에만 적용되는 단어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오천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신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그들을 배불리 먹이시기 위해 제자들이 준비했던 것은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어떻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 넘는 군중을 먹일 수 있었을까?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라고 한다면
오히려 기적을 마술로 바꿔버리는 것 밖에는 안 됩니다.

기적의 의미는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어떻게’라는 물음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왜 이 놀라운 사건을 마련하셨을까?’하는
‘왜’라는 물음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천명을 먹이는 것 하느님이신 예수님께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것도 수확할 수 없는 척박한 광야에서 살았으면서도 장정의 숫자만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민수 1,46)의 사람들이 40년 동안이나 굶주리지 않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신 것은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하신 말씀에 제자들이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든 것이 아니라, 그래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전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당신 앞에 내어놓는 그 정성을 보셨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막연히 구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질과 능력이 비록 앞에 놓여 있는 일을 하는데 터무니없이 부족함으로 다가오더라도 그 자체로, 그 힘겨운 순간 안에서도 감사드릴 수 있는 자세, 그것이 참된 감사기도이며, 또한 참된 청원기도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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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염태성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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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기적을 일으키는 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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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상담을 요청하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담을 요청하는 상당수의 병사는 이것저것 불평불만인 것들이 많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불만, 집안 형편에 대한 불만, 군 복무 환경에 대한 불만, 전우들에 대한 불만 등 참으로 많습니다. 저는 그러한 병사들에게 가끔 ‘감사일기’를 써볼 것을 권유합니다.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했던 일들을 찾아 일기장에 적어보라 합니다. 처음에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몰라 일기장을 앞에 두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병사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한 일을 적기에 다섯 가지는 너무 적다며, 더 쓰면 안 되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 병사들의 삶이 불평에서 감사로 변화되어가면서 군 생활도 서서히 변화되어감을 느낍니다. 항상 어둡던 얼굴이 밝아지고, 혼자 지내려 하던 모습에서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변하며, 이기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남을 먼저 배려하고 챙기려는 태도로 변화합니다.

그러한 모습들 가운데에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문제들은 사
그라지고 모범적인 병사로 탈바꿈합니다. 그들을 바꾼 것은 ‘감사’였습니다. ‘감사’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바꾸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감사’의 기적을 확인시켜줍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여자들과 아이들 외에 남자만도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했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성인 한 명이 한두 끼 정도 해결할 정도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그것들을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렸다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감사의 찬미가 기적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감사를 표현하며 살아갑니까?
얼마나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갑니까?

더 가지려 하고, 더 올라가야 하고, 더 알려고 하니 늘 부족함만 느껴지고 불평만 늘어갑니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앞날을 내다보며 불안해하며 불평하기보다는, 잠시 멈추어 서서 지금, 현재를 바라보면 달라집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가졌는지,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지, 얼마나 사랑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한다면, 하느님 나라는 여러분이 사는 ‘지금, 여기’ 에 와있을 것입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고 잠자리에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며 오늘 하루 나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맑은 하늘이 감사했고, 간부 식당에서 먹은 맛있는 점심 한 끼가 감사했고, 저의 손발이 되어 성당의 여러 일을 해주는 군종병들의 수고가 감사했고,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나가서 감사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일상적인 것들에서 감사함을 찾으면 우리의 삶은 달라집니다. 분명히 나의 삶이 바뀌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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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경욱 미카엘 신부
2020년 8월 2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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