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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42.4%
[춘천] 나눔,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길
조회수 | 1,784
작성일 | 08.08.02
어서 와서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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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대 교회의 신앙은 그야말로 공동체 정신으로 뭉쳐진 신앙이었습니다. 특히 교우촌의 삶은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굶어죽는 보릿고개 때에도 산중의 교우촌 신자들은 콩 반 쪽이라도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농사와 옹기 만드는 일과 숯을 굽고 장작을 패는 일은 평생 해보지 않았던 양반 교우들도 사랑하는 가족과 출세의 영욕을 모두 버리고 스스로 그 고단한 길을 택했습니다. 세속에서 멋들어진 풍류와 산해진미를 맛보았을 그들이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가시밭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순교의 때가 오면 이제야 천국을 간다는 기쁨에 기꺼이 목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그 기쁨과 영광의 날에 사랑했던 주님께서 천국 잔치를 열어주시어 ‘술 한 잔 주시겠지’라는 작은 소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들 역시 오늘 이사야 예언자의 축복의 예언을 기억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 1).

성경은 자주 하느님 나라를 잔치와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하느님 나라를 잔칫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그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루카 14, 21 참조).

한국 초대 교회의 교우들 역시 예수님의 이 같은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들 공동체에 굶는 사람이 오면 받아들여 함께 먹었고, 온갖 장애와 서러움을 안고 찾아오는 이들을 형제로 여기고 극진히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코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부족함 없이 채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선배 신앙인들의 믿음은 물론, 애덕의 실천에도 턱없이 부족한 모습을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신 분임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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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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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의 예수님 기적 뒤에는 분명 기적을 보았던 이들의 깜짝 놀람이 뒤 따르는 법인데,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 뒤에는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군중도 그저 덤덤할 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빵을 남산만큼, 물고기를 고래만큼 크게 하셨고,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셨다면, 분명 제자들과 군중은 깜짝 놀랐을 것이고, 그 기적은 복음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이 기적의 이야기엔 모든 목격자들이 놀라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예수님께서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평범한 인간도 할 수 있는 일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래야 훗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도 그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이고,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보다는 그것이 더욱 효과적인 가르침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복음사가가 기억하고 있는
이 기적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많은 군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의 공통된 반응은 불가능이었고, 이구동성 군중을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적은 양이라도 그것을 나누라고 가르치십니다. 나누면 모두가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모아 모두가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기적이었고, 사도행전 초대 교회의 모습(사도 4, 32~35)이었으며, 한국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기적은 당대의 일회성 기적으로 그쳐버린 것이 아니라,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이어질 기적이 된 것입니다. 그 같은 나눔의 기적을 우리는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세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눔의 기적을 살아야 훗날 영원한 천국 잔치에 초대 받을 수 있음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성자라 일컬어졌던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는 삶의 목적을 묻는 이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삶의 목적은 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고,
그리고 말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인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인인 당신이 불행하고 괴로우면 나도 아픈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돌려보냄이 아니라,
배고픈 군중과 함께 나눔이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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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배광하 신부
463 42.4%
[춘천] 행복에 이르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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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2014년 8월 2일) 모 중앙 일간지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관한 기사가 실렸는데, 교황 프란치스코의 행복 십계명이라는 제목으로, 행복에 이르는 비밀 열 가지를 소개하였습니다.

그중에 세 가지 계명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 “다른 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개종시키려 들지 말자. 교회의 성장은 개종 시도가 아니라 매혹 시킴을 통해 가능한 것” 이라며 나는 당신을 설복시키기 위해 말한다는 태도야말로 최악의 종교적 태도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2) “마음을 타인에게 열자. 마음을 닫는 순간 자기중심적으로 되며, 고인 물은 썩는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교황님은
3) “삶에 여유를 두자” 소비주의가 불안과 스트레스를 초래하고 건강한 여가 문화를 앗아갔습니다. 일하느라 아이들과 놀 시간을 갖기 어려워졌지만, 그래도 반드시 시간을 내야 한다고 했으며,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보내자, 식사 때에는 꼭 TV를 끄고 대화를 나누자고 하셨습니다.

오래전 개신교의 한 선교회에서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떠들썩했던 “휴거” (1992년 10월 28일 휴거)가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 있었습니다.

또한 간혹 시내 번화가를 걷다 보면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것이 목격됩니다.

이렇듯이 종말이 온다거나, 예수 천당이니 하는 이런 주장에는 자기네들 종교만 옳고, 타 종교는 다 악마의 소산이고, 그래서 우리 교회로 개종해야 한다는, 개종 중심의 선교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오는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천당, 예수를 모르면 지옥 간다느니 이런 신성 모독이 또 어디 있겠는가 말입니다.

“왜 사랑의 하느님을 돌팔이 잡신으로 만들며, 예수 그리스도를 사이비 무당으로 만드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어느 개신교 목사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했는데, 그 체험이 얼마나 강했는지 오늘 2독서에서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환란,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또 세속의 그 어떠한 영광도 미래에 올 영광도 하느님의 사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빵을 먹었다는 기적을 듣습니다. 이는 빵으로 배불리 먹은 것도 먹은 것이지만, 단지 빵 만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으로 배를 가득 채웠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TV 광고에
“음식이 맛있어, 뭘 넣었길래”라고 했더니, “정성”이라고 하였는데,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배를 가득 채우는 양식은 다름 아닌 당신의 사랑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먹고 사는 신앙인입니다. 즉, 그 사랑의 은총으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입니다.

신문지상을 통해 교황님께서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 바로 그것이 행복이라고 하셨습니다.

행복의 비밀은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임을 피력하셨습니다. 막연하게 사랑, 사랑 운운하지 말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구체적으로 교황님께서 제시하신 것들을 실천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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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최일호 라우렌시오 신부
2020년 8월 2일 ‘춘천교구 주보’에서
  |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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