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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형제적 충고
조회수 | 2,404
작성일 | 08.09.05
주님은 조금 전
복음에서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보잘 것 없는 사람, 인간적 가치가 없는 것에 큰 가치를 두라는 말씀입니다.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찾은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도 같은 맥락입니다.
형제가 잘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그 잘못을 떠벌이지 말고 조용히 찾아가 형제적 충고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교회의 명예를 손상하는 죄일 경우에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 두세 사람 증언을 들어 형제적 충고를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단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말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사고 방식에는 사람이 미우면 그 사람이 하는 말, 행동 모두 미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하는 일이 잘못되면 그 잘못한 일을 더 확대하여 잘못한 사람까지 미워하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도 용서하는 수양이 필요합니다.
노력해 보고 실천해봅시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거 말입니다. 사람과 일을 구별해 봅시다. 늘 사람을 귀하게 바라봅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일을 잘못하고 실수 했다면 그 일에 대해서만 충고하고 도와봅시다. 잘못한 사람도 역시 같습니다. 형제가 실수한 에 대해서 형제적 충고를 할 때, 그 뜻을 잘 헤아려, 받아들이는 수양을 쌓아 봅시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든 다 들어 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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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곽승룡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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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형제를 얻는 것이다.

오늘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한다.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라는 말은 예언자안 에제키엘이 파수꾼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예언자가 자신의 판단이나 강정에 사로잡혀 의부를 소흘히 한다면 그 책임을 져야할 것입니다. 흔히 나만 잘 살면 되지 남의 삶에 참견하지 않는 경우도 볼 수가 있는데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에제 33,11)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면 당연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부모도 자녀가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자녀들 중 누구라도 조금 나은 사람이 아직 부족한 형제나 자매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하도록 부모는 바라고 있고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형제나 자매들은 자신의 나은 위치를 더 야상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을 부모만큼 기다려 주지도 배려하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마음처럼은 아니더라도 이 의무에 관해서 파수꾼처럼 당신의 말씀을 전달해 주기를 바라는 구약에서의 하느님의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복음에서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십니다. 구약에서는 예언자의 의무에 관해서 이야기했다면 복음에서는 그로 인한 결과까지도 하느님과 나누기를 바리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을 교육할 때 ‘이것을 안하면 혼난다.’와 ‘이것을 하면 이렇게 좋은 것 이 생긴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제1독서의 느낌과 복음의 느낌이 다르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의 버려짐도 죽음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빨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라서 가끔씩은 손 놓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일 때문에 주변에 관하여 무관심해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경고를 혹은 관심을 받지 못한 형제들이 쓸쓸히 혹은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내가 그에게 악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 들으신 복음 말씀처럼 우리가 해야 할일은 악한 이들이 그들의 길을 버리게 하거나 말씀을 듣고 다시 돌라와 형제로 남게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대전교구 한영승 세례자 요한 신부 - 2017년 9월 10일
  |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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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형제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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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타이르고, 마음을 돌리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그가 죄를 반성할 수 있도록 힘쓰라 하십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형제적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내 주위의 형제가 죄를 짓게 되거든 그를 지나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가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여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중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되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에게 죄를 지은 형제에게 다가가 그가 회개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누군가 죄를 짓게 되면 그가 죄의 길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그를 비난하고 그의 죄를 부풀려 말하는 경우가 팽배해졌습니다. 혹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를 피하거나 무관심으로 대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교회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서는
우리 신앙인의 신원과 역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너 사람의 아들아, 나는 너를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를 받았으며 동시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았습니다. 나 혼자만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형제들과 함께 나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내 주위의 형제들을 외면하고 나 혼자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선한 마음을 갖고 이야기를 꺼냈어도 그 이야기를 곡해하고 오히려 악인으로 매도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 공동체 안에 예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나약함을 함께 보듬으며 하느님 나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적인 나약함, 주위의 시선, 노력의 결과 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곁에는 항상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몫은 그저 내 주위의 형제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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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현 마태오 신부
2020년 9월 6일 ‘대전교구 주보’에서
  |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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