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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두 아들의 비유
조회수 | 2,259
작성일 | 08.09.26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 농장 일을 시켰습니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일하러 가기 싫다고 했다가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들은 일하러 가겠다고 말만하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였지만 회개하고 마침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였습니다.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도 말만하고는 행하지 않았습니다.

창녀 같은 윤리적인 죄인들이나
세관원들과 목동 같은 직업상 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살았지만,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자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했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대제관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노상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했지만, 막상 예수께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회개를 촉구하자 그분을 배척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과
세례자 요한 그리고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여러 사도들을 보내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지도자들은 이들을 번번이 배척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옛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 곧 교회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에 맞갖은 믿음과 실천을 통해서 열매를 맺고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생각에 그치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말만을 앞세우는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공허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를 이루는 통합적이고도 전인격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의 말씀과 뜻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참되고 성실한 실천이고 순종이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우리가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 안으로는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고 교회 밖으로는 세상의 가치를 복음으로 변화시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 가야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새 천년기의 구체적 실천모델로 평가되고 제시되고 있는 소공동체 운동을 제안했습니다. 이 운동은 기존의 성사를 위주로 신앙생활을 하는 방식과는 달리 말씀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성직자 위주의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삶이 어느 특정 계층에 의해서만 주도되지 않고 모든 계층이 주체성을 가지고 참여할 때 창조적 능력이 살아 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교회를 작은 공동체로 나눈다는 물리적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회의 삶의 방식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지성적 사고 체계 안에서만 발생하지 않고 삶 안에서 발생하고 해석되고 실천되기를 바라는 생활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새삼스럽게 소공동체 운동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생각과 말에만 그쳐서는 안 되고 구체적으로 실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혼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성사도 배령해야 하지만,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고,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하며, 말씀에 근거해서 활동해야 합니다. 스스로 복음화 되면서 복음화 하는 실천이 강조되는 새로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둘이나 셋이 모여 말씀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기도하고 실천을 모색할 때 그곳에 은총이 발생합니다. 그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삶의 현장이 교회가 됩니다. 성사를 배령해야만 은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똑 같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실천도 중요합니다. 참된 회개는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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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정일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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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교형자매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 동안 주님의 평화가 댁에 가득하였기를 기원합니다. 높고 높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우리의 이상과 비전도 가을하늘처럼 청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제26주일의 복음은 ‘복음’이라는 것이 절대로 추상적이거나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살아내는 것이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둘 있는 아버지가 한 아들에게 묻습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그 아들은 싫다고 말하였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에 따라 포도밭에 일을 하러 갔습니다. 또 다른 아들은 간다고 말은 하였지만, 실제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른 사람은, 말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실천을 한 처음에 등장한 아들이었습니다.

말을 적게 하라는 우리의 속담들이 많이 있습니다. ‘침묵은 금이다.’ ‘말 많은 집은 장의 맛도 쓰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이 많으면 실언이 많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말조심 하라는 속담들도 많이 있습니다. ‘말이 당신의 입 안에 들어있는 한 당신의 노예지만, 일단 밖에 나오게 되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은 듯합니다.

복음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빈말보다는 한 가지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도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알리라’는 복음 선포적인 말보다 ‘그리스도를 살라’는 복음 실천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형제적 사랑을 더욱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주십시오’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들음을 필요로 하고, 들음은 실천을 필요로 합니다. 실천되지 않을 때 복음은 자신을 심판하게 되는 잣대가 되기도 하고, 자신을 짓누르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로 전하여진 복음은 우리 안에 실천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이 말씀은 바로 복음이 삶 안에서 실천되어야만 그 본연의 일을 완전히 성취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들어서는 소용없습니다. 실천하여야만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됩니다.

복음이 참다운 복음이 되기 위하여, 복음이 기쁜 소식, 기쁜 삶이라는 모습으로 열매 맺기 위하여 다시 한 주간 열심히 복음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해 봅시다.

이희복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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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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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바로 앞 단락에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되물었지요.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모르겠소’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새겨 볼 기회를 줍니다.

그들은 말은 많이 하되 실천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그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사실 그들에게 생각을 바꿀 기회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그러자 맏아들은 “싫습니다.”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아버지의 뜻을 따릅니다. 그러나 다른 아들은 “가겠습니다, 아버지!"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포도밭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이 두 아들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습니까?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맏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은? 여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을 수 있겠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수없이 드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미사를 통해,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응답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당을 벗어나 생활 속에서,
현장의 삶 속에서 과연 나는 주님께서 뜻하시는 그 일을 얼마나 행하고 있는가? 성찰이 필요합니다. 특히 지금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방법을 익혀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의 시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주님께서 바라시는 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무엇보다 맏아들이
생각을 바꾸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부분을 마음에 담아야겠습니다. 맏아들과 작은아들의 비유이지만, 복음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보다 하느님에 대해 잘 알고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던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되겠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입으로는 “맏아들입니다.” 고백했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인이었던 세리와 창녀들은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삶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그분께 다 드렸습니다. 그분과의 만남이 '생각의 바꿈'이라는 회개의 삶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 백성의 원로들,
세리와 창녀들 중에서 결국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이는 '생각을 바꾸어 행동으로 옮긴 이들이 되겠습니다. 신앙의 삶을 살아가며 결심과 결단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거창한 계획과 수많은 생각보다 바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아버지가 기뻐할 수 있는 작은 실천 하나를 정해서 주님께 봉헌하는 한 주간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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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윤성규 바오로 신부
2020년 9월 27일 <안동교구 주보>에서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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