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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뒤집어야(?) 산다 - 예수님은 역전의 사나이
조회수 | 2,349
작성일 | 08.09.26
얼마 전 베이징에서 열린 올림픽으로 많은 국민들이 흥분과 감동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에 땀을 쥐며 시청했던 야구대표팀의 경기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해서 얻은 우승이었기에 더욱 값진 금메달이었습니다. 흔히 역전을 통한 승리는 여타의 다른 것보다 더욱 더 큰 감동을 줍니다. 왜냐하면 역전은 기존의 흐름을 뒤집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어 결국 승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스포츠의 역전의 감동,
이 감동은 우리 신앙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역전의 사나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핵심에는 바로 이 역전의 신비가 잘 드러나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세리와 창녀, 죄가 많다고 여겨지는 병자들과 마귀들린 이들이 삶의 역전 드라마를 썼습니다.

당시 사회 통념상 이들은 절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과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자신의 삶을 회개로써 완전히 뒤집어 버렸습니다.

때문에 이들은 복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곧 이들이 첫째 아들입니다. 자신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거부하며 죄 안에서 살다가, 회개의 은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뒤집어 새로운 삶,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된 이들을 의미합니다.

반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소위 그 당시 지도자였으며 야훼신앙을 돈독히 가지고 있었다고 믿었던 원로들과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혜롭다는 이들은 결국 자신의 고집과 자기중심적인 신앙 때문에 역전의 기쁨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곧 둘째 아들과 같은 이 모습으로는 절대로 구원의 기쁨도, 은총의 삶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자 여러분,
우리는 늘 이 두 가지, 즉 하느님의 뜻과 음성을 듣고 이를 따르느냐, 우리의 의지, 우리의 뜻대로 삶의 여러 가지 순간을 판단하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올바른 선택으로 좋은 결과를 맺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신앙에서도 역전이 필요합니다. 우리 신앙도 뒤집혀야 살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우리의 고집과 습관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과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하도록 우리의 삶을 역전시켜야 합니다.

지금 우리 삶 안에서 스스로의 뜻과 의지의 비율이 더 크지 않습니까?
반대로 우리에게 은총과 평화, 구원의 기쁨을 주시려는 하느님께 대한 의지의 비율은 터무니없이 낮지 않습니까? 이를 뒤집어야 합니다.

우리가 중심이 되는 삶에서
하느님이 우리의 삶의 중심으로 바뀌는 역전이 있어야 우리의 신앙도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 열매를 통해 우리는 부활의 삶, 구원의 삶,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삶이라는 값진 신앙의 금메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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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김종민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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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왕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형인 왕의 지위를 이용해서 방탕한 생활을 일삼는 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동생이 국법을 어겼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러한 명령을 내렸지요.

“왕의 동생으로써 이런 죄를 짓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특히 동생이기 때문에 더욱 더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따라서 너를 일주일 뒤에 사형을 시키도록 하겠다. 그러나 너를 특별히 불쌍히 여겨 일주일 동안이라도 왕처럼 즐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

동생은 기왕 죽을 바에야 실컷 즐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험악하게 생긴 장사가 나타나서는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라는 식으로 외치고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생은 점점 불안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왕은 동생에게 잘 즐겼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동생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저기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장사가 눈을 부릅뜨고 시시각각 남은 시간을 말하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누구나 죽을 날짜를 향해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단다. 그러니 어찌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겠느냐?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들은 매 순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이렇게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그것도 매일 아침에 며칠 남았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마지막 시간이 언제인지 가르쳐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마지막 시간이 있다는 이야기만 해주셨지요. 따라서 그 시간을 위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을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다음에 하지 뭐...’, ‘지금은 피곤해.’, ‘조금 기다렸다 하는 것이 더 좋은거야.’라는 식의 안일한 마음을 가지고서 현재라는 시간을 소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똑같은 명령을 내리지요.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먼저 맏아들은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나중에는 뉘우치고서 일을 하러 갑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에 기꺼이 간다고 말을 하지만 가지 않지요.

이 맏아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외면하면서 살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 즉 죄인으로 취급당하던 세리나 창녀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다고 하지만 막상 회개할 것을 촉구하자 예수님을 배척하고 거절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사제들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요.

이 두 아들의 모습을 통해서 말보다 행동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히 지금 당장 행동의 실천을 하라고 주님께서는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떤 식으로 응답하고 있나요? 혹시 둘째 아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매주 성당에 나오면서, 그리고 자주 기도하기도 하지만 실제 우리들 자신의 변화는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변화는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나중에 시간 날 때 하는 것이라고 미루면서, 오히려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보다도 더 복음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지요?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이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큰 아들의 모습입니까? 둘째 아들의 모습입니까?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맙시다.

조명연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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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법'이라는 우스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우선 하늘 나라의 문에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나갔다를 반복합니다. 그러면 먼저 천국에 계시는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많은 선배들이 답답해서 이렇게 말할꺼래요.

“들어오려면 들어가고 나가려면 나가!”

그러면 그때 얼른 들어가면 된다고 합니다. 정말로 이렇게 쉽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사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방법을 복잡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요?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해 동네마다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다고 해요. 그때 마침 미국에서는 ‘페니실린’이라는 약이 개발되어, 선교를 위해 한국에 나온 신부들이 가지고 들어왔답니다. 이 신부에게 좋은 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떤 농부가 찾아와 그 약을 팔라고 했지요.

신부님께서는 이 페니실린을 주면서 “이 약은 최근에 발명된 것으로 아주 좋은 약이니까 이 약을 먹으면 전염병이 나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농부는 아주 비쌀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 값을 물었지요. 그러나 신부님께서는 그냥 무료로 주는 것이니 돈을 내지 말고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그 말을 믿지 못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처럼 좋은 약이라면 무척 비싸야 할 것인데 무료인 것을 보면 아무 효력 없는 약일 것이야.’

신부님께서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니까 농부가 가면서 약을 땅에 던지고 약을 발로 밟고 지나가더랍니다. 분명히 좋은 약이고 전염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약이었지만, 믿지 못한 이 농부는 자기를 낫게 할 약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쉽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가장 쉬운 방법을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시지요. 바로 회개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맏아들처럼 처음에는 싫다고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생각을 바꾸어 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 이러한 회개의 마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그러한 회개의 마음보다는 다른 것이 더 중요한 양 생각합니다. 앞서 좋은 약을 공짜라는 이유만으로 형편없는 약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회개 하나로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나의 욕심을 챙기는데 급급한 우리들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믿음 없는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세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죄인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이지만 회개했기 때문에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선언인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들 모두 예외 없이 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을 모두 내려놓고 이제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모든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는 회개의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겠다고 하면서도 아무것도 행하지 않은 작은 아들의 모습이 아닌, 곧바로 뉘우치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동하는 맏아들의 모습이 될 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 곁에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조명연 신부
  |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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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 감동 먹였어요.

먼저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 “당신은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았을 때 Yes 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No 하는 편입니까?” 두 번째 질문, “당신은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자주 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말을 아끼고 아껴서 정말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는 편입니까?”

제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드린 이유는 오늘 복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맏아들은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싫다고 대답했지만, 나중에는 생각을 고쳐먹고 일을 했습니다. 반면에 둘째 아들은 포도밭에 가서 일을 하겠다고 대답만 하고,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 이 두 아들 중에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사람은 바로 맏아들입니다.

고해소에 있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 말씀을 잘 듣지 않았다는 죄를 고백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다 큰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만약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고 살아간다면 이것은 죄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간다면 모범적인 참 신앙인이 됩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음먹은 것처럼 잘 되지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기가 어려울까요? 그 이유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의 이득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말로 다짐한 신앙이 행동으로 옮겨지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 봅시다. 내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인해 괴로워하신 적은 없으셨는지요? 또한 주일미사에 참례한 후, 한 주간 동안 주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했는데, 세상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고 내 자신의 뜻만을 채운 적은 없으셨는지요? 부끄럽지만 만약에 여러분이 이렇게 사셨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들에게 늘 반전의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공인된 죄인들이었던 세리와 창녀들이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세리와 창녀들이 과거 자신들이 범했던 불의한 삶을 청산하고 의로운 길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잘못된 삶을 버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으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말로 사람을 웃기고, 말로 사람을 울리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들의 말재주가 아니라, 묵묵히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말보다는 사랑을 실천하여 주님께 이렇게 자랑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저 사람들에게 감동 먹였어요!”

이용옥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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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흙수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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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마태오 복음 21장 31절)

어찌하여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실까요?

복음의 예수님 말씀은
흙수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비난의 흙탕물을 먹고 피를 토하며, 온갖 오해와 모진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살아온 이들이 결국 하느님의 나라를 먼저 발견하고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밝은 대낮에는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뜨거운 태양만이 보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어두운 밤이 되면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이 보입니다.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이 보입니다.

자기 혼자 잘났다고 떠들며,
남들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난 사람에게는 굽신거리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얕보며 살아가는 이들! 대낮처럼 밝은 곳에만 사는 이들에게는 결코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창녀와 세리들처럼 밤하늘의 어두운 곳에서 별을 바라볼 수 있는 자는, 밝은 대낮에서도 저 하늘 뒤에 감추어진 별을 보기 마련입니다.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불의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를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에제키엘 예언서 18장 26절-27절)

금수저들이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흙수저들!
모든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의로움을 항상 추구하는 사람들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의인이라고 자신 스스로 말하더라도,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은 결코 의인이 아닙니다. 반대로 스스로 악인이라고 이야기 하더라도,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의로움을 추구한다면 의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복음에서 이야기하는 맏아들의 경우,
아버지의 요청에 “싫어요”라고 대답하지만 결국에는 생각을 바꾸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이 바로 세리와 창녀들의 경우입니다. 마치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의 요청에 ‘싫어요.’ 하고 이야기 했지만 결국은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작은아들처럼 “예” 하고 대답은 하였지만,
결국 아버지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작은 아들은 금수저들! 율법학자, 바리사이파, 그리고 고관들의 경우입니다.

과연 흙수저의 입장을 겪어보지 않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과 고관들! 오늘날의 위정자들이 과연 흙수저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금수저 흙수저를 떠나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핵심을 2독서에서 알려주고 있는데,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필리피서 2장 3절-4절)

한마디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피서 2장 5절)입니다.

코로나라는 어두운 밤을 겪을 때,
주변 사람들이라는 별이 보입니다. 나 자신이 금수저라면 흙수저의 입장과 마음을 간직한 황금 수저로 거듭나시고, 나 자신이 흙수저라면, 지금 이 순간 사서 고생을 하며 흙수저의 고생한 마음을 거름 삼아 훗날이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의 모델이 되어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릇으로 거듭나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필리피서 2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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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강성욱 스테파노 신부
2020년 9월 27일 <인천교구 주보>에서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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