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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끝까지 가봐야
조회수 | 2,183
작성일 | 08.09.26
오늘은 제가 퀴즈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우리말에“길고 짧은 것은 끝까지 대어 봐야 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끝까지’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순간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지만,
사실 인생은 전체를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부분 부분들에 집착 하다보면 오히려 전체적인 방향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제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십니까?”그렇다면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생은 끝까지가봐야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말씀을 빌어서 표현하자면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에제 18,26-27참조).

이 말씀은 결국 의인이라도 불의를 저지르면 죽을 수밖에 없고,
악인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언제나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끝에서 어떤 결말이 나느냐에 따라 인생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의인이라도 끝까지 의인으로 남아 있어야 가치가 있고, 지금은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서면 언제나 용서받을 수 있고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입니다.

복음에 나오는‘두 아들의 비유’도 결국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맏아들은처음에는 일하러 가기 싫다고 했으나“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습니다”(마태 21,29 ). 그러나 작은아들은 일하러 가겠다고 말만 하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이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

그들이 대답합니다. “맏아들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과정이 좋았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과정이 반감되고,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다 좋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도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우리는 언제든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특히 회개라는 영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회개할 수 있고, 회개하는 바로 그 순간 새 사람이 되고 새 삶을 살 수 있으며, 결국에는 구원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은“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잘 돌보아 주십시오”(필립 2,3-4). 결국 그는“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간직하며”(필립 2,5)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 새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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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김광근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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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라

가거라

<집으로 가는 길>이란 책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 뉴욕에 거주하면서 국제 인권감시기구 ‘휴먼 라이프 워치’의 어린이 인권분과 자문위원과 ‘유니세프 소년병 캠페인’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스마엘 베아’라는 분의 어린 시절 전쟁 체험기입니다.

그는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고, 겨우 열두 살이었던 때에 피비린내 나는 광기의 전장에서 소년병으로 어린 영혼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소년 병사들은 마약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어른들의 손에 미쳐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스마엘 베아는 그 같은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는 30만 명이 넘는 소년병들이 총을 들고 살육의 현장, 그 지옥에서 신음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탐욕으로 인한 어린이 강제매춘, 마약판매, 강제노동, 장기매매, 인신매매, 에이즈 전염 등 끔찍한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가 사는 현대에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수치입니다.

때문에 오늘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신음하는 당신의 백성들이 있는 현장으로 우리더러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가라’하시는 말씀을 우리는 수없이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겠습니다’하고는 가지 않은 복음의 그릇된 아들처럼 살았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또다시 우리에게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 31~32)

실로 얼굴을 붉힐 부끄러운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나 이제나 우리가 쉽게 경멸해 버릴, 단죄했던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생각을 바꾸지 않음에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미래는 하느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 영광된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우리만으로 만족했던 안일과 태만과 방관자였던 무관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진정 우리가 바꾸어야 할 생각이 무엇인지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 할 가르침입니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 4~5)

‘암브로시오(340~397)’ 성인은 이렇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제 몫의 유산을 남에게 빼앗긴다면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반드시 차지해야 할 유산이란 재물의 유산이 아니라 불멸하는 영혼의 유산이다.”

짧은 인생의 시간 안에 결국 후회될 선택만 하다가 두렵고 떨리는 본고향으로의 길이 아닌 기쁨과 환희의 아버지 집으로의 길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승에서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은,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이어야 합니다. 모두가 아픔의 현장으로 직접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만은 북한에, 아프리카에, 남미에, 동남아시아의 여러 통곡의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만은 영등포 쪽방에,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에게,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KTX 승무원과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아픔 속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생각과 마음이 바뀌지 않아 그들을 외면하는데 어찌 도울 수 있으며, 어찌 세상에 하느님 나라니, 기쁜 소식이니 운운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과 마음이 있는 곳에 도움과 해결의 실마리와, 함께 한다는 사회적, 교회적 연대성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것이며, 그 때에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이 세상에서부터 꿈꿀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예수님 질책은 당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신 말씀이셨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성직자와 고위 공무원, 지도자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은 이들의 편협된 이기주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본당, 내 교구, 내 고장, 내 나라의 좁은 안목에 사로잡혀 있는 아집의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분명 보편 구원을 위한 무한한 희생이셨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상의 구원이셨습니다. 그분의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여 또다시 편협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배광하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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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마태 21,29)

정말이지 강론글을 멋지게 썼는데 컴맹의 원죄로 인해 다 날려 버렸습니다. 부아가 치밀어서 ‘콱!’ 하려다가 ‘생각을 바꾸어’ 다시 씁니다. 덕(德)은 “좋은 습관”이라고 합니다. 제 덕은 ‘생각 자주 바꾸기’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니 이 사람 믿어 주세요. 전에 있던 본당에서의 직원회의는 그야말로 전장입니다. 주로 수녀님과 제가 싸우곤 했는데 그러나 신기하게도 회의가 끝나면 서로 언제 싸웠냐는 듯이 능청스럽게 “힘 썼으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합의를 합니다. 싸움(?)이 격렬할 수록 점심은 그 품위를 더해 갑니다. 수녀님들은 처음엔 너무 어이없어 제가 정신병잔줄 알았답니다. 하긴 뭐 그런 면도 없지않아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자꾸 만나다 보니 제가 아주 씩씩하고 남자답다는 것입니다. 강감찬 장군을 알아보는 그 수녀님들은 정말 영안을 갖추신 분들입니다. 바로 생각을 바꾼 덕입니다.

신자들은 제 흉을 봅니다. “우리 신부님은 정말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분이야.” 전 자랑스러워 합니다. 이렇게 유연하고 뛰어난 영혼의 순발력을 갖춘 사람은 정말이지 몇 안된다고 세뇌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신자들도 나중엔 제가 다 좋다고들 착각하십니다. 훌륭한 영성의 소유자시다, 어려운 신자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신다, 잘하면 성인 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잘 모르겠다. 등 칭송의 말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아침에 잘못 하다가도 밤이 오기 전엔 그 생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싫어요” 하다가도 얼른 “좋아요” 하면 좋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꾼 말은 빨리 해야지 신자들 재밌게 놀러 떠난 뒤에 하면 지나간 버스에 손흘들기입 니다. 그리고 사실 제가 보통 싫다고 하는 것은 다 튕기는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압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간 큰아들을 칭찬하십니다. 큰아들의 마음은 기쁩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들어서 좋고 마음도 뿌듯합니다. 싫다고 했지만 얼른 마음을 바꾸었던 자신의 태도에 만족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매번 “예”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때론 너무 야속하고 억울하고 속상해서 “싫어요”라고 합니다. 돌아서면 아니다 싶고 되돌리고 싶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착한 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면 너무 좋습니다.

완벽한 사람으로 존경받기 보다는 부족한 사람으로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부족한 사람은 모름지기 생각을 자주 ‘바꾸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자랑스런 일입니다. 행복한 느낌이 밀려듭니다. 자신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존감도 커져 갑니다. 미워하다가도 다시 사랑하기, 못 한다고 하다가도 얼른 한다고 하는 것, 섭섭한 마음이 들다가도 상대를 이해하기, 외롭고 고통스럽다는 생각에 묻히더라도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 실망하다가도 용기를 내는 것 등. 살면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경우는 너무나 많고, 깨어 그를 실천한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오세호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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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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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을 보면 우리는 생활 안에서 각자 자기의 뜻에 따라 하느님을 만들어 모시고, 자기의 뜻에 하느님이 맞으면 열심한 척하지만 자기의 뜻에 맞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도망가고 쉽게 냉담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하느님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시간이 아니라 영원 안에 계십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입니다.
하느님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영원한 현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 사람의 신앙심은 지금 그가 얼마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진실하고 의롭게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진실하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자기의 뜻에 따라 받들어 섬겨왔던 거짓 하느님을 떠나 진실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잘못된 신앙 자세를 버리고
겸손하게 자신을 비우고 다시금 하느님의 뜻으로 돌아서는 일입니다. 이것은 회개입니다. 우리는 거짓된 자신을 버리고 순수한 자신으로 돌아설 때 자기 안에 있는 세리와 창녀, 곧 죄와 어둠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의 죄와 어둠을 깨닫고 하느님 앞에서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죄인임을 뉘우칠 때,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하게 됩니다.

회개는 정직하고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서는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가식을 버리고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자신 안에 있는 죄와 어둠을 보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깨닫고, 겸손하게 있는 그대로 형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있는 죄와 어둠을 보지 못하면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고 감사할 수 없으며, 형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신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비우고 겸손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순수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 겸손한 삶을 살 때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느님의 나라로 불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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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이동주 시몬 신부
2020년 9월 27일 <춘천교구 주보>에서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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