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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
조회수 | 2,112
작성일 | 08.09.26
“나는 분명히 말하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어느 음식점 현관에 너무도 싱싱하고 아름다운 꽃이 있었습니다.
감탄하며 다가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크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생화(生花)보다 더 싱싱하고 아름다운 조화(造花)였습니다.
잎사귀에 달린 물방울도 물방울이 아니라 물방울처럼 생긴 합성수지 방울이었습니다.
감탄은 한번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생명도 없고 향기도 없는 그 조화(造花)에 두 번 다시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온갖 지식과 명예,
지위와 재산으로 자신을 화려하게 겉꾸미고 거기에 말까지 번지러하게 하지만,
그의 삶에서 향기가 나지 않고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와 지위와 재산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런 사람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산골짜기에 이름 없는 꽃들이 초라한 모습으로 피어있습니다.
계절의 변화와 비바람 속에서도 끊질 긴 생명으로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찾지 않지만 벌과 나비와 갖가지 곤충들이 향기에 이끌려 찾아옵니다.
꽃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명망으로 자신을 겉꾸미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습니다.
당신도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향기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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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강영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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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순종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공격적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이 말씀을 듣고 곤혹스런 얼굴을 하고 있을 사제들과 원로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이 있지... 그들에게는 세리나 창녀와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굴욕적입니다. 그런데 세리나 창녀가 그들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니 그만한 모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반박도 하기가 힘듭니다. 주님께서는 용의주도하게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미리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버리셨습니다.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며 다그치시고, 늦게라도 일하러 나간 맏아들이 말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둘째보다는 낫다는 동의를 그들에게서 미리 받아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 제대로 걸려 든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구경꾼의 입장에서 그들의 당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석사제와 원로들처럼 폼만 잡으면서 회개할 줄은 모르는 사람, 둘째 아들처럼 대답은 잘하면서 행동은 굼뜬 신앙인이 누구겠습니까?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 이야기였습니다. 결국은 그들과 공범의식을 느끼게 되면서 차츰 제 마음이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을 옹호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 그래도 세리나 창녀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말씀 너무 심하신 것은 아닌지요... 그들도 처음부터 아버지 말씀을 어기려고 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살다보니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약속을 못 지킨 것뿐이겠지요. 처음부터 싫다고 거절하면서 복장 터지게 하는 것 보다야 그래도 대답이라도 잘하는 것이 백번 낫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처럼 되지도 않은 말로 옹호하고 스스로의 위안으로 삼아보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동안 습관적으로 주님께 드렸던 뻔뻔스러운 대답들이 너무나 많이 떠오르는 것이 더 이상 우기기가 힘들어집니다.

오늘 주님의 가르침은 간단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마음을 바꾸어 아버지의 가르침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은 너무나 쉽게 ‘예’라고 말하고는 아무런 갈등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제대로 ‘예’라고 응답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넓게 열려져 있을 것입니다. 수석사제나 원로들처럼 오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전혀 변화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보다는, 세리와 창녀들처럼 늦게나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을 것입니다.

진실로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강한 질책을 떠올리며, 또 다시 공수표가 될지라도 한 번 더 큰 소리로 대답을 해 봅니다. ‘예, 주님. 이번에는 굳은 마음을 지니고 제대로 한번 순종해 보겠습니다.’

백남국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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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믿지 않으시려구요?

오는 비에 옷이 젖을까 사람들은 한 두 방울의 비조차 두려워 우산을 꼭꼭 내려 쓰지만, 이미 비에 온 몸이 젖은 사람은 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산을 던져두고 비를 즐기는 듯 보입니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려운가 봅니다.

쉬는 교우들의 대다수는 "어쩌다 보니 냉담한지가 몇 년이 되었네요. 언젠가 부터는 다시 성당에 나가려구요."라고 말합니다. "지금 냉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계속 하고 있는걸요."라며 스스로 위안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현재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오랫동안 쉬는 교우들 대부분이 처음에는 주일 미사에 불참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한 주 두 주 불참하다보면서 다시 성당에로의 발걸음이 그보다 더 어려움을 알게 됩니다. 처음이 어렵지 신앙에서 멀어지기는 한 순간만큼 쉽습니다.

열심한 교우 분들께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라는 말에 그들의 대다수는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힘들어도 주일이 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일 미사에 참석한 것이 전부인걸요."라고 대답합니다. 한 번 두 번이 그들에게는 평생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힘든 한 번이 모여 이룬 그들의 아름다운 평생을 보게 됩니다.

악을 행함도 선을 행함도, 지옥으로의 발걸음도 하느님 나라로의 발걸음도 이와 같습니다. 지옥으로 가기가 두렵습니까? 지금 당장 작은 악부터 행해보십시오. 죄책감 없는 지옥은 생각보다 만만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십니까? 지금 당장 작은 선부터 행해보십시오. 하느님 나라는 생각보다 만만할 것입니다.

말하기 쉽고 마음먹기 쉽지만, 살아가면서 내가 말하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이 따르지 않을 때가 많음을 느낍니다. 몸에 익지 않아 어색하겠지만 한 번만 행해봅시다. '일상으로 들어오다'가 '일상이 되다'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세리와 창녀들도 그들의 삶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리나 창녀, 혹은 예수님께서 바라보는 세리나 창녀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 또한 한 번 두 번이라는 적은 횟수가 그들을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리나 창녀가 되게 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한 번 두 번이라는 적은 횟수가 그들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세리나 창녀들이 되게 했을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고, 믿고, 바라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도 그러합니다. 처음이 어려워 두려워할 뿐이지, 한 번 우리네 일상으로 들어오면 어느새 우리네 일상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처음 한 번만 하느님의 나라를 우리의 일상으로 초대해 보도록 합시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수호 신부
  |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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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두 아들의 모습을 가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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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작은아들과,
처음에는 거부하였지만 결국 회개하여 행동으로 실천하는 맏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만 앞서는 사람,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사회생활이나 가정 안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하는 약속 가운데에서도 종종 이런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든다면,
‘오늘부턴 남을 미워하지 않겠다.’ ‘오늘부턴 열심히 기도하겠다.’ ‘오늘부턴 죄를 짓지 않겠다.’ ‘오늘부턴 작은 봉사라도 실천해보겠다.’ 등등. 하지만 그 약속을 지켜내기란 참으로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각자의 체험을 통해서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이러한 나약하고 부족한 모습 때문에 너무 쉽게 자신에 대해서 자책, 자학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래서 안 돼. 하느님은 이러한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죠. 사실 주님께서 더 원하는 모습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자신을 너무 자책, 자학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때때로 말만 앞서고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모습이
우리 자신의 부족하지만 솔직한 모습이라면,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회개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맏아들의 모습 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바로 우리 ‘인간의 이중성’을 그대로 묘사해 놓은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모습이 ‘이렇다’ ‘저렇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그 모습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얼마나 변화하고자 하는가 하는 ‘결단’이 더 중요함을 오늘 복음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내 모습이 어떻다 해서 판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내 모습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비록 지금 내 모습이 하느님께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신앙생활일지라도 주님께서는 지금 내 모습만 가지고 단죄하시지는 않는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변화하며 주님의 뜻을 실천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바로 변화된 삶을 살고자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청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또 다른 ‘맏아들’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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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정철현 바오로 신부
2020년 9월 27일 <마산교구 주보>에서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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