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0 45.2%
[대전] 맏아들은 누굽니까? 둘째아들은 누굽니까?
조회수 | 2,300
작성일 | 08.09.26
오늘 예수님은 두 아들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대사제와 백성의 원로 즉 그 시대에 힘있는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뉘우치고 일 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는 아들은 누구이겠는가?" 하고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맏아들은 누굽니까?
둘째아들은 누굽니까?

둘째 아들 가겠다고 말은 하고 실행하지 않은 자,
율법학자,대사제, 백성의 원로 소위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자처하는 그 시대의 힘있는 자입니다. 오늘의 힘있는 자들도 말을 많이 하지만 그 많은 말을 실행하고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수시로 말을 바꿉니다. 정치인들 그들이 오늘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러면 맏아들은 누굽니까?
의인으로 자처하기 보다 사람들이 죄인으로 여기고, 넘어져 있는 약자, 병자, 죄인 세리, 창녀이지요. 그들은 처음에는 실수합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마구 넘어집니디. 그러나 그들은 처음에 실행하지 않았지만 회심합니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넘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뉘우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도와주시는 분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 줄 때에 너희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우리도 맏아들로 있는 것을 걱정하지마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지금 천국을 살아갑시다.

------------------------------------------------------------

대전교구 곽승룡 신부
460 45.2%
‘오늘의 양식(Our Daily Bread)’이라는 개신교 잡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한 여성이 급한 약속이 있어서 운전을 하고 가는데, 그날 따라 교통체증이 심했습니다. 게다가 자기 앞에 가고 있는 차는 영 꾸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차를 바짝 뒤따라가던 이 여성은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짜증이 나는 중에 앞 차가 노란 신호등을 보고 속도를 줄이며 서자, 이 여자은 마침내 화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경적을 울리고, 욕하고 소리 지르며 화난 몸짓을 해댔습니다. 그 여인이 계속해서 고함치고 있을 때 차창의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보니, 한 경찰관이 그 여인더러 손들고 차 밖으로 나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바로 뒤따라오던 경찰 차였습니다. 짜증이 나서 앞차를 향해 욕 좀 했기로서니! 또 창문이 닫혀 있었으니 소리가 들렸을 리 없고, 그렇다고 남에게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닌 터였습니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이 여인은 꼼짝없이 경찰관에게 끌려갔고, 유치장에 감금당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시간 후 그 경찰관이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네요." "뭐예요! 사람 똑바로 보란 말이예요!" 여인이 그러자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제가 당신이 탄 차를 뒤 따라가고 있을 때, 당신이 앞 차 운전사를 향해 경적을 울리고, 욕하며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차 뒤에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쓰인 번호판 틀과 '나와 함께 주일학교에 가자.'는 범퍼 스티커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도난당한 차라고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오늘 복음(마태 21,28-32)에 두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합니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갑니다. 다른 아들은 가겠다고 했지만 일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옛날 이태리 산레모가요제에서 입상한 동요 ‘검은 고양이 네로’란 노래가 생각나네요.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네로, 이랬다저랬다 말썽꾸러기’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하기 싫어했지만, 궁극적으로 포도원으로 일하러 나간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뉘우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완전히 바꾼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복음에 나오는 세리와 창녀들입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자신의 뜻대로 살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삶의 길을 바꾸어 포도밭의 일꾼,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 반면 말로만 ‘예’하고 행동은 ‘아니오.’ 했던 ‘다른 아들’과 같은 사람들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라.”(에제 18,26-28)고 예언자 에제키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고 말씀하십니다. 암브로시오(340-397) 성인은 이렇게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제 몫의 유산을 남에게 빼앗긴다면 억울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반드시 차지해야 할 유산이란 재물의 유산이 아니라 불멸하는 영혼의 유산이다." 신앙인은 세례성사 때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때의 다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첫 길이 변덕 부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검은 고양이 네로 이랬다저랬다 말썽꾸러기’가 되지 않기로 합시다. 아멘. 감사합니다. *

방윤석 신부
  | 09.28
460 45.2%
[대전] 주님의 기준을 기억하고 행하자

--------------------------------------------

개인적으로 저는 무슨 날이라는 기념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념할 정도로 중요한 날이라면 매일매일의 삶이, 순간순간의 생각과 판단이, 기념일이 기억하고자 하는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기념일은
세상살이에 지쳐, 그저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그 가치를 떠오르게 하고, 타성에 젖어 잊혀진 그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시금 기념일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고, 그에 맞갖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주기에, 나약한 우리들에게 필요한 날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이자 이민의 날입니다.
공정과 정의가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시대. 무엇이 공정이고 무엇이 정의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공정과 정의는 과연 올바른 기준을 담고 있을까?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세상 사람들은 주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합니다. 곧 적어도 믿는 이들에게 공정과 정의는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기준으로 판단할 때 당연하다 여겨왔던 세 상의 기준들은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이주민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들 외국인들을 생각하지만, 사실 하느님 나라를 떠나온 우리 모두가 이주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 안에서 여러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를 겪으면서도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 주님이 보여 주신 삶의 모범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그때 비록 내가 부족하고 나약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천국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런 희망을 담고 살아간다 한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삶의 부정적 요소를 다시금 경험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이민의 날,
특별히 낯선 문화와 환경과 언어 안에서 삶의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 요소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부정적 요소보다는 긍정적 요소를 더 느낄 수 있도록 마음을 여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8년 세계 이민의 날 담화를 통해
“이민과 난민을 환대하고, 보호하고, 증진하고, 통합하기”라는 네 가지 동사를 제시하셨고, 2020년 담화문을 통해, 네 가지 동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여섯 쌍의 동사를 제시하셨습니다. “이해하기 위하여 알기” “봉사하기 위하여 가까이 다가가기” “화해하기 위하여 귀 기울이기” “성장하기 위하여 함께 나누기” “발전하기 위하여 참여하기” “건설하기 위하여 협력하기”.

부디 우리 모두가 이 동사를 기억하고 행함으로써 내가 만나는 이주민들뿐만 아니라 이웃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듯 삶의 긍정적 요소를 느끼길 희망합니다.

-----------------------------------------

대전교구 안성준 도미니코 신부
2020년 9월 27일 <대전교구 주보>에서
  | 09.26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   [수도회] 사랑하기 
800   [원주] 최고의 계명 ‘사랑’  [2] 701
799   [부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5] 2925
798   [청주]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  [1] 697
797   [전주] 주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2] 63
796   [의정부] 법대로가 아닌 사랑으로  [2] 2340
795   [인천] 반성문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6] 2696
794   [수원] 하느님과 함께, 이웃과 함께  [4] 2459
793   [서울] 가장 큰 계명  [6] 3475
792   [군종]서로 사랑하여라.  [1] 558
791   [대구] 사랑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  [2] 2223
790   [안동] 애주애인(愛主愛人)  [3] 2602
789   [광주] 사랑의 계명  [2] 731
788   [대전] 이웃 사랑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  [2] 2856
787   [마산] 가장 큰 계명 - 참사랑  [2] 2690
786   [춘천] 이웃 사랑  [4] 2696
785   (녹) 연중 제30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5] 2249
784   [수도회] 신앙의 핵심은 오직 예수님  2071
783   [전주]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2135
782   [청주] 내 생명, 내 재산, 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  1269
781   [대구] 하느님께 바쳐야 할 몫은 내 안에서부터!  [1] 2260
780   [춘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1] 2225
779   [원주] 거지신앙과 순교신앙  1026
778   [수원]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로”  [1] 2153
777   [군종] ‘너는 나를 알지 못하지만’  1110
776   [대전] 지금은 놀부시대  1181
775   [서울] 하느님께 바쳐야 할 ‘세금’  [1] 2151
774   [의정부] 하늘가는 길  1201
773   [안동] 하느님 것은 하느님께  [1] 2154
772   [부산]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2] 2392
771   [마산]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1095
770   (녹) 연중 제29주일 독서와 복음 (카이사르의 것은, 하느님의 것은---)  [2] 1936
769   [청주] 하느님 나라의 드레스 코드  [1] 102
768   [수원] 혼인잔치의 비유  [6] 3572
767   [수도회] '예수 그리스도'란 새 예복  [3] 2737
766   [서울]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  [8] 3087
765   [인천] 하느님 나라의 예복  [4] 2540
764   [대전] 초대 받은자의 예복은?  [3] 2911
763   [전주] 구원의 잔치에 초대합니다.  [3] 2534
762   [의정부] 예복은 미리 준비해야 필요할 때 입을 수 있습니다  [3] 2683
1 [2][3][4][5][6][7][8][9][10]..[21]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