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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자신을 아는 것이 천국이다
조회수 | 2,121
작성일 | 08.09.26
신앙의 열매를 세속의 눈으로만 본다면 참으로 '요지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을 형편없이 개판으로 살았던 자들이 하느님의 칭찬을 받아 천당에 일찍 들어가는가 하면 열심하고 경건하게 살았던 자들은 주님의 호된 꾸지람을 받아 천당문 밖에서 방황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주님 말씀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마태 21,31).
이게 얼마나 큰 모순이요 충격적인 발언입니까? 유대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대사제와 원로들이 도대체 창녀들만 못하며 도둑이나 세리만도 못합니다. 우리는 그래서 오늘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새겨 들어야 합니다.

어떤 부부가
서로 다툰 뒤에 저를 찾아와서 상담한 일이 있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아주 가관이었습니다. 남자의 얘기를 들으면 여자가 나쁩니다. 남자 자신에겐 흠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얘길 들어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가 나빠도 보통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자에겐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서로에겐 흠이나 잘못이 없는데 왜 늘 서로 싸워야 하는 모순 속에서 몸부림쳐야 하느냐?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남의 잘못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불행의 원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왜 유대교에서 존경받는 대사제와 원로들이
창녀나 도둑만도 못하다는 꾸지람을 하시느냐? 아주 뻔한 것입니다. 도둑이나 창녀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주님께 매달릴 줄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대사제와 원로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천당과 지옥의 차이입니다.

남은 잘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은 모르고 있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불행도 없습니다. 성서에 보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자기 죄를 알고 있다는 것은 이미 천당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요, 자기 죄를 모르고 있다면 그는 여전히 천당에서 멀리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또는 얼마나 큰 죄를 졌느냐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인정하고 고백하면 됩니다.

십자가 옆의 강도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매달려 자비를 빌었을 때 그는 이미 낙원을 약속 받았습니다 (루가 23,39~43참조). 도둑이었던 세리도 자신이 부정직하고 욕심 이 많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했을 때 그는 이미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은 자신의 공로는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믿음이 없고 사랑이 부족하며 용서가 없었고 그리고 이웃을 너무도 무시했던 자신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불행했습니다(루가 18,9 ~1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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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임금이 교도소를 순시하게 되었는데
그때 죄수들이 임금에게 자신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 억울하게 들어왔다고 하소연을 하더랍니다. 그때 임금은 그러냐고 하면서 그들을 동정해 주었는데 마지막 한 사람만은 아무 말도 못하고 훌쩍 훌쩍 울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사연을 들어 보니 자기는 죄가 많아서 임금님 앞에 머리를 들 수 없는 처지라고 한탄하더랍니다. 이때 왕이 신하들에게 그랬답니다. 이곳은 죄 없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곳인데 왜 죄인을 이곳에 들여보냈느냐고. 그래서 그 죄인은 그 날로 석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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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흔한 말로 '주제파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주제파악이 안되면 아주 피곤합니다. 구제불능입니다. 하느님은 무슨 잘못이나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주제파악이 안되는 죄만은 용서가 안됩니다. 용서를 하시고 싶어도 계속 감추고 숨기고 있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합니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창녀만도 못하고 도둑만도 못한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보면서 그리고 그들의 끝없는 거짓말과 변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숨기고 감추는 추태가 더 심했습니다.
못난 사람은 감출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코딱지 만한 잘못이 있으면 가슴을 치며 두려워합니다.

신앙은 어찌보면 어리석은 삶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씀은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는 거짓이 없습니다. 따라서 남의 허물을 보기에 앞서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 보도록 합시다. 이것이 잘 살고 잘 믿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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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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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향하는 방법

오늘 복음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대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는 장면입니다. 맏아들은 처음에 싫다고 이야기하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아버지 말씀을 들었고, 작은아들은 처음에는 대답을 잘하였지만 가지 않았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생각을 바꾸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첫째,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자주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깨닫고도 용서를 청하지 않고 자신을 합리화하고자 더 큰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특히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잘못을 저지르고 또 깨달았더라도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하고 정당화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자기 자신을 돌아봅시다. 자신은 그런 적이 없는지! 있다면 다시 고해성사를 통해서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합시다. 즉 오늘 제1독서에서처럼 의인이더라도 정의를 버리고 불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비록 죄를 짓더라도 주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다시 공정과 정의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우리는 구원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둘째,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요청에 대해서 맏아들이 거절한 것은 분명히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 것 때문입니다. 맏아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했더라면 즉, 아버지 혼자 포도밭에서 일할 모습을 생각했더라면 분명 가기 싫더라도 “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이제 겸손하신 주님의 빛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봅시다. 자기 자신만을(내 가족만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만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봅시다. 자기 자신만을(가족만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만을) 바라보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마음과 말과 행동이 잘못이 됩니다.

즉 오늘 제2독서에서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본다면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걷는 주님을 향한 빛의 길에서 한 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멘.

김영환 세례자 요한 신부
  |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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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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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못한 채 성큼 다가온 교회의 미래가 걱정스럽습니다.
코로나 19가 몰고 온 충격은 교회 안에도 폭풍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미사 재개와 중단이 반복되며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이 심장을 한숨 짓게 합니다. 교회가 전염병의 진원지가 되고 교회의 권위가 떨어지고 영향력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이
갈팡질팡하며 불확실한 코로나 이후의 교회 모습을 염려합니다. 교회의 원로들과 사제들이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나갈 묘책을 강구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비유에서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열심히 밭에 나가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지만 나중에 뉘우치며 일하러 갑니다. 둘째 아들은 일하러 간다고 대답하였지만 일하러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혀 살던 맏아들과 같은 세리와 창녀들이 하느님 나라를 먼저 간다고 합니다. 존경받고 권위를 인정받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하느님의 뜻을 잘 알고 따른다고 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작은 아들처럼 말로만 가겠다하고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맏아들입니까?
작은 아들입니까?

가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교회의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교회의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직도 교회 안에는 말만 앞세우며 걱정만 하는 교회의 원로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폭풍으로 흔들리는 교회에 현 상황을 타개하고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나 담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뒤덮여 가는 폭풍에 견딜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 곁에서 당분간은 머물러 우리를 단련시키기 위해 고통의 순간들을 더 깊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처럼 전개되고 있는 현실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현실 앞에서 교회의 구성원들은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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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윤용남 가리노 신부
2020년 9월 27일 <광주대교구 주보>에서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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