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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탐스러운 열매를 풍성히 맺으리라
조회수 | 2,024
작성일 | 08.10.04
참되고 고귀한 것

신학생 시절 작사하였던 노래 ‘그 소리 들었네’가 있습니다. 부모님께서 시골 포도밭 과수원을 하셨을 때, 여름방학 중 과수원 정자에 앉아 썼던 노래 시였습니다. 그 노래 후렴 가사는 “난 노래하리라”로 시작됩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도 임의 포도밭을 노래합니다.

주님께서는 온갖 정성을 다 들여 포도밭을 가꾸셨는데, 수확철의 결과는 기대와 희망을 저버린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한탄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이사 5, 4)

그래도 사제직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려는 제 자신을 바라보시며 제게 물과 거름과 땅을 일구시고 돌을 골라 정성으로 가꾸셨는데, 이제와 보시면 세상 영욕과 세속의 타락에 오염된 들포도가 되어 있으니, 제게 대한 주님의 실망도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제도 인간인지라 언제나 시기심과 질투, 세상사의 욕망과 집착이 따라 다닙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이야기하셨지만, 따지고 보면 소유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 소유를 점점 줄여 나가야 완덕을 향하는 길일진대, 갈수록 늘어나는 물건과 사람과 명예에 대한 집착은 처음의 순수를 계속 버리게 됩니다.

그에 따르는 마음의 내용은 어둠과 우울, 낙담, 체념 등입니다. 나아가 열매 맺지 못하는 들포도밭에서 무엇인가 이룬 양 안주하는 못난 자신의 모습뿐입니다. 그런 나약한 우리에게 ‘컨시다인’ 신부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하느님을 선하신 분으로 생각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좋으신 분으로 생각하는 우리, 자애로우신 분으로 생각하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쉽게 용서치 않으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말 때문에 쉽게 흥분하지 않습니다. 또 친한 친구란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사소한 언행 때문에 헤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와 같습니다.”

성경은 자주 하느님을 질투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신명 5, 9)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인 까닭에 그토록 질투까지 하시며 당신을 떠나지 말라 하시는 것이요, 지극 정성으로 가꾸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소명

인내와 기다림, 자비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거룩한 소명은 ‘사제직’ ‘예언직’ ‘봉사직(왕직)’입니다. 끝내 우리가 끌어안고 가야 할 직분은 이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진 이 직무를 소홀히 한다면, 주님께서는 다시금 당신 포도밭에서 탄식의 노래를 부르실 것입니다. 이 같은 거룩한 소명의 직분을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필리 4, 8)

주님께서 믿고 맡겨주신 거룩한 소명의 직분에 우리는 세상 영욕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소중한 가치를 끊임없이 간직하며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분명 우리를 불러 주셨고, 당신 포도밭에서 우리를 가꾸셨습니다. 때론 거름으로, 때론 가지치기로, 때론 땅을 일구시고 돌을 골라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론 잘되라고 역경과 박해와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시험의 채근질도 하시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도 당신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당신의 포도밭에서 탐스런 열매를 맺기 바라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맺어야 할 열매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고 정성으로 드려야 할 예배와 공경의 대상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사는 사제직, 무고한 피흘림을 막아보려는 정의의 실천, 울부짖는 이들의 통곡의 내용을 세상에 알리는 예언직, 그리고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오셨다하신 예수님의 삶, 스스로 종이 되신 그분의 모습을 따르는 봉사직의 열매입니다.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 길을 걸을 때, 우리는 주님 포도밭에서 탄식의 노래가 아닌 희망과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성 바오로는 또다시 이렇게 격려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 6)

배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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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며 낮술한잔 걸치고 뻘겋게 된 얼굴로 입대했던 날, 4월이었음에도 유달리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하게 느껴졌습니다. 예비군 훈련도 끝난 민방위가 다시 군복을 입어 재미있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던 훈련병 시절, 3개월이 지나 어리버리 이등병이 자대에 배치 받고 적응 못하는 것처럼 살았던 첫 본당, 거꾸로 있어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군대잠언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시간은 흘러 흘러 입대한 지 벌써 어언 만 2년이 넘었습니다. 초임지를 떠나(소출을 내지 못하는 소작인은 쫓겨나기 마련입니다) 이제 군대 안에서 두 번째 본당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다시 입대하여 군대라는 곳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얻어가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열악한 본당 재정과 비가 오면 물이 벽을 타고 흐르는 본당건물, 구태의연하고 잘 움직이지 않는 신자들, 미사시간 엎드려 잠을 청하는 병사들, 반주와 꽃꽂이 없는 주일미사, 공소는 많고 시간은 없고 간식도 없는 부족한 현실 등 불평할 거리를 찾자면 손으로 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주하는 ‘많이 힘드시겠어요?’라는 위로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불평할 거리들이 많지만 부족함 가운데 하느님의 은총이 더 드러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강할수록 빛은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부족한 환경도 있고 넘치는 환경도 있겠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부족한 환경에서 특히나 눈에 더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어디든, 그 여건이 어떠하든, 누구와 살든 간에 하느님의 은총은 늘 존재합니다.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 머물러 있음을 느낍니다.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도우심에 감사했었고, 미소한 공동체와 함께했기에 작은 것의 소중함과 소박함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괜한 돈 걱정, 신자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세상에 찌들었고 은총에 신뢰하지 못하는가를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포도원을 위해 주인은 종을 바치고 또 바치고, 결국엔 자신의 가장 큰 재산이랄 수 있는 외아들까지 바치고도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노력하고 고생하는 만큼 얻어지지 않는 포도원에 주인은 실망스럽고 화가 날 만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돌려드려야 할 소출을 생각해보자면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포도원은 대게 응답 없는 포도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께 맡긴 포도원의 수준은 그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결실이 풍성합니다. 애쓰고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수확의 답이 없는 포도원이 아니라 작은 관심과 노력만 주어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소출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소출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2독서).”

하느님이 내게 주신 소출은 내가 이곳에서 바쳐야 할 소출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내가 바쳐야 할 가장 좋은 소출, 그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바치는 것입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루카 20,17)

류한빈 신부
  |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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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의 참 의미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 하루면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갈 수가 있고, 방에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전세계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 사람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가야 했지만, 이젠 주머니 속에 든 전화기를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편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과연 과거와 비교해서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빠빠라기’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남태평양 사모아의 섬에 사는 어떤 원시부족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빠빠라기’란 그들이 문명인들을 가리켜 부르는 말입니다. 우리는 원주민이라 하면 매우 미개하고 불행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해택을 전혀 받지 못한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책의 주인공인 추장은 오히려 거꾸로 문명인인 우리들이 불행하다고 말합니다.

“문명인들은 이상하게도 종이 조각(돈)을 모으기 위해서 인생을 허비하며, 또 몸에 거추장스럽게 잔뜩 뭔가를 걸치고 다니며 자신을 피곤하게 하고, 하루 24시간 중에 단 두세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산다. 문명인들은 행복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허튼 것에 온 생을 낭비하며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만족해 할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정말로 나에게 소중한 것에는 등한시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그것을 잃고나서야 얼마나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건강이 그렇고, 사랑하는 가족이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작인들도 정말 무엇이 가치있고, 소중한 것인지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에게 먹고 살 수 있도록 일거리를 제공해 준 주인에 대한 고마움과 충실함보다는 눈에 보이는 제물에 눈이 어두워 감히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지릅니다. 우리는 이 소작인들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등한시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 분을 잊고 그 자체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하다못해 우리는 주일미사가 의무로 주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시간 조차 주님을 위해서 봉헌하는 것을 아까워 합니다. ‘다음에 고해성사 하고 말지!’ 하며, 내 편의대로 살아갑니다. 이처럼, 우리는 너무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인색하며,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정말 나만을 위한 것인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기까지는 절대로 그것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군인 주일입니다. 이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봉헌한 이 땅의 젊은이들의 소중함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재우 신부
  |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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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주가 포도밭을 만들어 모든 것을 다 갖춘 후, 소작인들에게 도지를 내고 멀리 떠나갑니다. 그런데 수확기가 지나도 사용료를 내지 않았고, 돈을 받으러 종들을 보냈더니 오히려 그들을 매질하고 돌로 쳐서 죽이기까지 합니다. 주인은 더 많은 종들을 보내지만 마찬가지였고,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 해 주겠지.”하는 마음에 아들을 보내지만, 그 아들마저 죽이고 포도원을 가로채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배반을 일삼은 소작인들이 처형되고, 새로운 소작인들 이 다시 그 포도원을 경작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자기 것이 아닌데도 자기 것으로 취하려고 하는 사람을 두고, 그것을 몰래 훔쳤으면 도둑이라고 합니다. 어떤 술수를 써서 차지했다면 사기꾼이라고 하고, 강제로 빼앗았다면 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작인들은 누구이고, 어느 부류에 속하는 것일까?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어떤 좋은 물건을 보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어쩌면 포도원과 수확한 포도에만 관심을 보일 뿐, 포도원 주인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 오늘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감각적인 것에 온 넋을 빼앗기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 도 듭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은혜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소작인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얼마나 알차고 많은 열매를 하느님께 맺어드리고 있을까?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해서 나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감사할 줄도 모르고 항상 배은망덕하기만 한다면, 엄벌을 받은 소작인들과 우리가 하나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 감사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어떤 것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 일이 잘 되고 나면, 자기 스스로 잘 해서 그리 되었다고 더 교만해지고 점점 더 하느님을 몰라보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오늘 성서말씀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게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리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짜증과 불만, 나태와 안일한 삶에 빠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라도 지금 이대로의 내 모습이 하느님께서 주신 최선의 포도밭이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고, 주님께 바칠 내 삶의 열매들을 가꿔가야 할 것입니다.

▥ 춘천교구 엄기주 요한 금구 신부 - 2017년 10월 8일
  |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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