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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8주일 독서와 복음
조회수 | 1,712
작성일 | 08.10.08
주님께서 잔치를 베푸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리라.
이사야서 25,6-10ㄱ

6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
7 그분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8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9 그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10 주님의 손이 이 산 위에 머무르신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4,12-14.19-20

형제 여러분,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내가 겪는 환난에 여러분이 동참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19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20 우리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마태오 22,1-14<또는 22,1-10>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묵상

임금은 혼인 잔치에 손님을 초대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절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화가 난 임금은 그들을 벌주고 아무나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몇몇은 평상복 차림으로 갔다가 벌을 받습니다. 임금의 초대를 받았다면 단정하고 깨끗한 옷차림은 필수적입니다.

임금의 초대를 거절한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이며, 뒤에 초대받은 이들은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웬만큼 성경을 읽은 사람이면 금방 눈치 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유다인들도 율법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 역시 편하고 욕망에 부합되는 사상을 원했습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진 이야기는 성경에 자주 등장합니다. 임금의 초대를 거절했다는 내용입니다.

누구에게나 신앙의 길은 열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잔치에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받은 자체가 그분의 초대입니다. 그러니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 뜻에서 잔치의 예복은 ‘기쁨을 갖고 사는 생활’입니다.

신앙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쁨으로 가고 있는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아무런 기쁨 없이 억지로 가고 있다면 그가 바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삶이 멍에로 느껴진다면 ‘기쁨의 예복’을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무겁기만 하다면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기쁨을 갖고 사는 인생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보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매일미사


혼인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마태오 22,1-14)

'The feast is ready, but those who were invited were not worthy to come. Go out, therefore, into the main roads and invite to the feast whomever you f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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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비유 말씀이 앞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21,28-­32; 22,36-­46). 이렇게 비유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진지하고 강력한 경고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2절). 루카복음에서는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풀지만, 마태오복음에서는 한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구약성경은 하느님과 백성을 혼인으로 맺어진 사이로 비유하기도 하며, 마태 9,15에서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 등장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준비된 시간입니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어라.”(잠언 9,5-­6) 하느님이 지혜의 은사를 주시고 혼인 잔치를 벌이는 시간입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3절) 초대받은 이는 수락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임금이 직접 나서지 않고 종들을 시켜 알립니다. 하느님은 부르시는 분이요 초대하시는 분이며,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강요하지도 않으시고 조종하지도 않으십니다. 자유롭게 결단을 내리도록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4절). 요청이나 초대로 모든 것을 끝내시지 않습니다. 시간을 두고 거듭 기회를 주십니다. 당신의 초대가 받아들여졌느냐에 따라 계속 종들을 파견하십니다. 인간의 자유와 하느님의 관용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22,5-­6) 밭에 가거나 장사하러 가는 등 일상적인 볼일을 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초청을 자신의 일상보다 무가치한 것으로 여깁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서처럼 두 번이나 종들을 파견하나 초대를 거절하고 종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만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보낸 종들을 인정하고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과 파견받은 이들과 더불어 자유로운 결단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구속력이 없는 거부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에게 선택의 결과까지 좌우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인내는 무력하지 않습니다. 이 초대를 거절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생활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7절) 포도밭에서 일할 것을 거부한 아들은 하늘나라에서 제외되었습니다(21,31). 포도밭 소출을 바치지 않고 주인의 아들조차 학대한 소작인들은 포도밭을 잃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21,41). 이처럼 혼인 잔치의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또한 하늘나라에서 제외됩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8ㄴ-9절) 먼저 초대받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초청을 거절하더라도 이 잔치는 취소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들은 초대받을 자격이 없었을 따름입니다. 하느님은 무상으로 폭넓게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에 부르고 초대하셨습니다.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은 임금의 관대함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 관대함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10절) 종들이 온 세상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방인들에게 다가가는 그리스도교의 선교를 상징합니다.

관습에 따라 임금은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눕니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12절) 그는 유흥을 즐기러 왔을 뿐 잔치의 주인공을 축하하지도 초대한 주인을 존중할 줄도 몰랐습니다. 무례합니다. 혼인 예복은 상징적 표현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공동체에 어울리는 한 인간의 준비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하느님의 잔치에 어울리는 예복을 갖추게 되고 그 공동체에 어울리는 온전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예복을 갖춰 입지 않으면 잔치에 낄 수 없듯 온전한 상태가 아니고서는 하늘나라에 속할 수 없습니다. 쫓겨나기도 전에 스스로 부끄러워서 물러날 것입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14절) 통계를 내본 것도 아니고, 용기를 꺾어 체념하게 만들려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만큼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진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관대하신 덕으로 불리기는 했으나 뽑힌 것으로 확신하기에는 이릅니다. 최종 결정은 오직 하느님께 달렸습니다. 얼마나 진정으로 회개했는지, 열매가 어떠한지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현재 보고 있는 것으로만 모든 행동이 결정된다면 우리는 그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히 잔치의 초대를 외면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자 합니다. 그분의 시야를 얻어야 미래도 얻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행동에 앞서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선사하셨습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주고자 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곧 그분과 그분의 아들과 함께하는 기쁨이 넘치는 잔치, 영원한 공동체의 초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얼마나 불충분한지, 우리의 허약한 본성을 가늠할 따름입니다.

▥ 강지숙 (한님성서연구소 수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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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부르심’이라는 은총의 선물을 잘 가꿀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 세밀한 독서(Lectio)

우리는 마태오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가르치고 있는 여러 가지 실례를 봅니다. 이 비유는 ‘하늘나라는 이와 같다.…’로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하늘나라를 믿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고, 나중에 ‘불러 모은 사람들’은 바리사이와 율사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천민들입니다.

첫 단락(마태 22,1­10)은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시는 복음에 대한 대조적인 반응, 곧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거저 오라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인데, 무관심(3절)과 폭력, 귀찮게 여김, 적개심과 경멸을 보입니다.(6절) 이어 잔치를 준비한 임금은 전혀 예상치 못한 태도로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7절)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계획이 인간의 반응 때문에 중단될 수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선물은 이제 유다인들이 멸시하던 천민들, ‘세리와 창녀들’(21,32),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루카 14,21)한테로 갑니다.

본문은 실제로 마태오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면서 겪었던 깊은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먼저 유다인들을 상대로 선교했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 전파자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하느님은 진노하신 나머지 제1차 독립전쟁 때(66­70년) 로마군을 보내어 많은 유다인을 죽이고, 드디어 70년 8월 29일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69­79년 통치)의 아들 티투스에 의해 유다 신앙의 마지막 보루였던 예루살렘 성전이 불살라집니다.(마태 24,15­21 참조) 이 사건 후에 그리스도인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하게 되었지만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라는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에 희망을 걸고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22,1­10)

둘째 단락(11­14절)은 마태오 공동체의 상황을 전달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언제나 밀과 가라지, 곧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므로 그 현실에 놀라거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험담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마태오는 말합니다. 인간의 눈에는 상대방이 어떤 그리스도인인지 쉽게 보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보시는 예수님만은 누가 거짓 제자들인지 보시고, 그들의 가면을 벗겨버릴 수 있습니다. 혼인 잔치 비유에서 가짜 그리스도인들을 일컬어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혼인 예복은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행함(7,24­27), 아버지의 뜻을 행함(7,21), 의로움을 행함(3,15; 5,20),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22,34­40),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행함(23,23; 25,31­46)을 뜻합니다. 그러니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주님’을 외치지만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부르심 받은 사람이 선택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부르심이 완성되는 것은, 우리 생애가 부르심의 길을 잘 달려서 하느님이 우리 생애의 꽃을 기쁨으로 거두시는 순간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평생에 걸친 사도의 가난하고 고통스런 삶이 자신에게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내어 맡김을 가르쳤다는 것을 회고합니다. 진정한 사도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필리 4,12)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의 삶이 오직 그리스도,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13절) 안에 살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Meditatio)

주님, 당신은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12절)라고 물으십니다. 저를 부드럽게 바라보시며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당신이 저를 ‘친구’라고 부르시기에, 당신 말씀의 잔칫상에서 저의 부족함과 게으름으로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순간들을 떠올리면서도 마음의 위로를 받습니다. 주님, 이 지상의 순례자인 우리가 하늘나라의 결정적인 혼인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할 가장 아름답고 정결한 ‘혼인 예복’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경청하는 이의 모범이신 어머니 마리아님은 제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 기도(Oratio)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시편 23,6)

▥ 임숙희 (가톨릭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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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잔치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하늘 나라의 잔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온 교회와 온 세상이 함께 초대받아 어우러질 기쁨의 잔치이고, 구약에서부터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고대하시고 초대하시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나라에 먼저 초대받았으나, 그것이 그 자리에 대한 보증 수표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 내신 새로운 백성, 곧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오순절에 일어난 기적을 통해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성령의 음성을 알아들음으로써 세계의 모든 백성이 하나 되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도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점점 발전되어 가는 세상 안에서 교회는,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 세상의 어두운 곳에서 정의와 자유와 해방의 표징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아 큰 역할을 수행할 하느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복장 준비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모여들 많은 백성들을 안내할 책임까지 수행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모으시지만, 하느님의 이 의지는 인간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지, 마치 하늘에서 번쩍 비추는 번갯불처럼 내려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 매일미사 2017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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