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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우린,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조회수 | 2,081
작성일 | 08.10.10
만일 우리 얼굴을 가렸던 너울이 찢겨나가서 우리가 그렇게 보고 싶던 '아버지 하느님'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 모두가 아버지 하느님의 집에 오순도순 모여 앉아 웃고, 놀고, 장난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우리 신앙인들은 서로 사랑의 친교를 나누도록 아버지 집에 초대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같은 성전에 모여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바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가면 마치 이방인이 된 느낌을 받습니다. 서로 '소가 닭 쳐다보듯 한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기도 합니다.  

"그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이 말은 어느 수도원장이 자기 공동체의 규칙서를 해설하면서 써넣은 글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버지 하느님의 집에 초대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대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참 말씀으로 체험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먼저 내 자신이 하느님의 품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혼자가 아니겠지요. 하느님의 품속에서 모두가 같이 살고 있으니 혼자가 아니겠지요.

같이 산다는 말 속에는 '어짐(仁)'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짐'이란 서로 더불어 살아가되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어짐'을 넘어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공동체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매우 구체적인 이웃에게 순종하는 가운데 자기를 내어 놓는 길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나날의 봉사에서, 공동보조로 걷는 걸음에서, 더 이상 자기를 기준으로 하지 않는, 그래서 자기를 내어 놓는 일이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본당에서 내가 만나는 신자들은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나를 지켜주라고 주님이 세워주신 나의 형제, 자매들입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기에 내가 행하는 사랑의 행위는 모든 형제들에게 연루되어 그 행위가 하느님 앞에서 공동선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범하는 죄의 행위도 모든 형제들에게 연루되어 그 행위가 하느님을 슬프게 해드리는 공동의 악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동체 속에는 범죄든 은총이든 모두가 연대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공동체이기 때문에 성도들과 죄인들이 함께 친교를 맺습니다. 죄 그리고 은총의 연대가 없는 공동체는 이 세상에 껍데기만 존재하는 허수아비와 같습니다. 신자들 사이에 따듯한 형제애가 흐르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때에, 각각의 형제와 자매가 하느님의 뜻을 살아, 하느님의 말씀이 될 때 그곳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은 오늘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처럼 살진 고기를 굽고, 술을 잘 익히고, 연한 살코기를 볶고, 술을 맑게 걸러 잔치를 차려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교회에 불러주신 이유는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나의 모든 아픔과 추함의 상처들을 벗겨 아름다운 영혼으로 탄생시키고 싶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성전이 잔치자리임을 알고 아버지 하느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친교를 나누는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이들이 하느님께 초대 받은 한 공동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오로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비법을 알려주었습니다. 비천하게도 풍족하게 살줄도 알고,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줍니다. 그 비결은 바로 자신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체험하며 살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의 능력을 입어 서로를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는 우리들에게 연대의 책임을 보고 기뻐하며 부활의 기쁨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행복하다."고,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고백하겠지요.

심한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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