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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하느님 나라의 예복
조회수 | 2,124
작성일 | 08.10.10
오늘복음말씀은 하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말씀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천국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차리신 완벽한 잔치자리와도 같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느님의 초대를 받고도 이에 응하지 않은 백성은 하느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느님께서는 처음 하느님의 초대에 무관심과 무응답을 보인 백성 대신 다른 모든 백성들을 초대하셨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아무리 천국으로 초대를 받았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인정하실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본래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를 받았다고 해서 아무나 무조건 다 천국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천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은 과연 하느님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예복을 입었는가’하는 물음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이에 앞서 그 예복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본래 하느님나라의 백성으로서 자격이 없는 죄인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서는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는 들어갈 엄두도 낼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이 하느님 앞에 나아가 하늘나라의 잔치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유일한 길은 예수님이라는 옷을 입는 것뿐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치장하고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던 세상의 옷을 가지고는 하느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삶은 스스로의 힘과 지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세상의 삶과 결별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진정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선택된 이는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초청을 받은 데 그친 사람은 결국은 빛이 없는 어둠 속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 예수님이라는 옷을 덧입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한 제자들 중 모두가 다 주님의 참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께 제자로써 부르심을 받았고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던진 불쌍한 인생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합당한 예복을 입었는가? 나는 지금 예수님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가? 그리고 그 옷을 입은 사람처럼 지금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김지훈 펠릭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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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를 즐기기 위해서

잔치를 즐기기 위해서 오늘 복음말씀은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마련하여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반부이고, 후반부는 누구나 올 수 있도록 초대하여 불러들였는데, 예복을 입지 않아 쫓겨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에서 혼인은 하느님과 그분 백성의 기쁘고 결정적인 일치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혼인 잔치는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입니다. 특히 잔치의 흥겨움을 생각해 본다면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 합당하게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마음가짐, 몸가짐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예복입니다. 혼인 예복을 입는다는 것은 잔치에 초대된 자로서의 준비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하늘나라 잔치에 어울리는 예복은 무엇일까요? 먼저, 온갖 삶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의 것들 가운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 필요치 않은 것에 대한 분별, 식별입니다. 또한,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혼인 잔치에 가는데,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가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을 그저 나만 편해지고자 내 멋대로 다른 이들을 무시하며 살아간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또한 그 어려움이 부메랑이 되어 나를 힘들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대된 잔치에 예복 대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무시한 채 혼자만 즐거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잔치는 단순히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지만, 더욱 기쁘게, 형제적인 친교를 나누며 주님께서 마련하신 잔치를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무상(無償)의 초대에 마땅한 우리의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에 갇혀, 내 경험, 내 지식, 내 삶의 방식만을 고집함으로써, 새로워지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초대받기는 하였으나, 절대로 선택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예복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 항상 성찰하고 고쳐 나갈 때, 어느새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을 것입니다.

허 홍 신부
  |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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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우리의 자세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셨는지요? 이번 연휴는 그 어느 때보다 길었던 덕분에 연휴를 이용해서 여행을 다녀오셨거나 아니면 그동안만나지 못했던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난주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 이어 이번 주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히늘 나라를 혼인 잔칫집 임금에 비유하십니다.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랐다.’ 이미 초대받았던 이들의 거부로 잔치의 초대는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이에게 확대 되었습니다.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라는 표현에 자꾸 미음이 갑니다. 초대받기 전까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임금의 잔칫상에 초대받는 조건은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의 문제보다 먼저 임금의 초대의 말을 듣고 그 초대를 받아들여 합당한 예복으로 갈아입었는가 아니면 그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만으로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여기에 계시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잔치에 합당하고, 어울리는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확실히 ‘변화’를 촉구하시는 것입니다. 과거 삶의 자세에서 벗어나 혼인잔치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화하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말씀입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변화를 다른 말로 ‘회개’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혼인 잔치의 예복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예복에 대한 준비를 물으시는 임금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가 회개했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안에서 펼쳐지는 이 구원의 혼인 잔치에 합당한 예복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매일의 회개, 매일의 성찰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더욱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는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고백처럼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미사를 시작하면서 “형제 여러분 구원의 신비를 합당하게 거행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반성합니다"라는 사제의 권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봅니다. 내가 이 구원의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고 있는지, 내 예복을 돌아보고 바로잡는 것입니다. 성체를 통해 우리에게 오시는 그분의 초대에 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잔치에 합당한 예복을 입고 기쁘게 이 구원의 잔치를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잔칫방을 가득 메운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잔치에서 돋보이는 매력이나, 잔칫집 임금인 당신께 드릴 축의금 따위는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회개하는 마음, 합당한 예복입니다. 내 마음에 오시는 예수님의 초대에 합당하게 응답할 수 있는 한 주를 맞이하시길 기도드립니다.

▬ 인천교구 채희성 도미니코 신부 - 2017년 10월 15일
  |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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