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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법대로가 아닌 사랑으로
조회수 | 2,358
작성일 | 08.10.25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계약의 내용은, 하느님을 믿고 당신의 계명에 따라 살면, 수많은 후손과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했던 시기에는, 약속했던 땅을 잃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 계약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주어진 것이 “십계명”이고, 그 십계명의 구체적인 실행규칙들이 “율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율법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그래서 자신과 후손들이 살아갈 땅을 약속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짐이 되고, 부와 권력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힘없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생겼을 때,
최후의 선택이면서도 가장 무서운 말이 “법대로 하자”입니다. 원래 법은 최소한의 수준으로 정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사랑 없이 대한다면 매우 무자비한 것이 됩니다. 본래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율법 역시도 당시에는 문자 그대로의 조항으로만 남아, 힘을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율법학자가 던진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전혀 없던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본래의 정신을 되찾아 죽은 율법에 생명을 불어넣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각각 신명기와 레위기에 나오는 말씀이고,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이 두 구절이 함께 사용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이 두 계명이 동급으로 언급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새롭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말씀인 셈입니다.

우리 역시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법을 지키고, 신자로서 교회법과 많은 규정들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그 많은 법과 규정들을 “사랑으로”가 아니라 “법대로”를 외치며 해석하고 지키려 한다면, 우리 역시 본래의 취지와는 멀어질 뿐만 아니라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유대인들과 같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과 계명에 사랑이 빠진다면
그 법은 우리에게 짐이 되지만, 사랑으로 해석되고 지켜진다면 그것은 생명을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생기있게 변화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법대로 대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 역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으로 대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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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문화미디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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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오 복음 22장 3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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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티가 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듭니다. 장점도 단점도 사랑스럽게만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다른 모든 것들도 사랑스럽게 보이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표현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티가 날까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사랑할 때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기에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하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 좋았다고 말씀하셨지요. 사람을 창조하시고 정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좋아하셨던 이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과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이십니까?

유대교의 율법은 600여 가지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단 두 가지로 모든 율법을 설명하시지요.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은 하나입니다. 바로 사랑하라는 것이지요.

공지영 작가는
“수도원기행”이라는 책에서 대영광송의 첫 구절에 대한 깨달음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땅 위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 그들은 누구입니까?

하느님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
하느님의 사랑 밖에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사랑받고 있음을 믿을 수 있게 되지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람들을 나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웃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웃 사랑은 지켜야 할 계명이라기보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 하나의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입니다.

율법, 계명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보다나은 삶을 위해서 법이나 규칙이 생겨났고, 율법이나 계명역시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명이 가진 의도를 잊고 살아가지요.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발목을 잡혀 살아가곤 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그런 우리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곧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단한 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우리에게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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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최인혁 비오 신부
2017년 10월 29일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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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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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계명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라고 거침없이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요
그분의 백성들인 우리들이 언제나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가야 하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뜻이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큰 계명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들은 우리는 어떻게 이 계명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사람이 사랑하게 되면 모든 생각과 생활이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춰지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 자주 하는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얼마만큼 사랑하느냐? 얼마만큼 보고 싶어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한가지입니다. “하늘 만큼 땅 만큼 사랑하고 하루 종일 당신 생각 뿐이었다.”는 대답입니다.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토라지고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의 내용에서도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말해 주어라.”(신명기 6장 4절-7절)라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마치 현철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에서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라는 가사처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가르치십니다. 이는 두 계명이 별개의 계명이나 서로 다른 사랑이 아니라 하나인 계명이요 같은 사랑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구속행위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또한 그렇게 예정하신 하느님께 대한 헌신적인 사랑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진리가 요한 1서의 내용에 그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요한 1서 4장 20절-21절)

또한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요한 복음 15장 1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무를 때, 주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안에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께 바라는 행복과 기쁨, 평화와 즐거움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이웃에게 사랑으로 다가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곧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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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원재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신부
2020년 10월 25일 <의정부교구 주보>에서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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