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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반성문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조회수 | 2,716
작성일 | 08.10.25
몇 해 전 우연히 읽은 노희경 작가의 글이다.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아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

실연에 빠진 연인들이나 읽을 법한 이 글이 나에겐 종교적으로 다가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사제생활을 하면서 이런 지독한 보호 본능이 발동했으리라....
상처가 두려워서 사랑을 해야 할 때  뒷전이었고,
용기를 내야 할 때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돌아섰다.

본당 예산 절약한답시고
가난한 자에게 소극적이었고,
충돌이 싫어 입을 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목의 주변에서 소외되거나 가난한 자들에게 미치도록 달려가거나
죽도록 사랑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다 줘야 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주지 못했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했지만 최소만으로 체면을 유지했다.

‘지금 여기에’를 외쳤지만,
지금 여기서 우물쭈물 거렸고,
본받아야할 모범의 자리에 궁색한 변명으로 나를 포장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고 있을 때,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부끄럽다. 쑥스럽다. 얼굴이 빨개진다.

예수님께서 오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말씀하셨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서 예언서의 골자이다.”
성경에는 전해지지 않으나 아마도 뒤이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한다.
- 그리고 제자들과 군중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내가 왜 여기에 그리스도인으로 있는지,
왜 사제로 살아가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미치도록,
죽도록,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달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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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임현택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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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깊게 묵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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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 22장 34-40절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대화다

아버지와 아들이 화상통화를 합니다.
“우리 아들 커서 뭐가 될 거야?”
“대통령!”
“우리 아들 대통령 되면 이 아빠는 뭐 시켜줄 거야?”
“탕수육!”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이지만 정작 상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입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이해를 바라고, 용서를 바랍니다. 그 기준은 나에게 향해 있으며, 사랑과 용서를 행해야 하는 사람은 상대인 것입니다. 정작 나는 받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먼저 행하기보다는 더 많이 받으려고만 했던 저의 모습을 고백합니다. 먼저 내주기보다는 두 손을 움켜쥐고 있었던 제 자신을 반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한번 떠올려보았으면 합니다. 그를 떠올렸을 때 그에게 준 것이 많았는지, 받은 것이 많았는지 헤아려봅시다. 받은 것이 많았다면 그에게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는지도 생각해봅시다.

서두에서 아빠와 아들의 대화에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그 대화가 만약 하느님과 나와의 대화였다면?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아들딸인 우리에게 물으신다면 과연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랑. 이것을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부터 실천해야겠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실천할 때 그 사랑은 더욱 큰 사랑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서인덕 신부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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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그의 아버지는 백만 불의 재산을 상속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세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 술을 마셨습니다. 둘째, 도박을 했습니다. 셋째, 연애를 했습니다.

결국 노력 없이 얻은 불로소득은 죄짓는 데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30살이 되자 그 청년은 세 가지를 잃게 되었지요. 돈, 건강, 기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 아버지가 한 푼도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참된 인간이 되고 지금보다 몇 천배 나은 인간이 되었을 텐데…….”

요즘 사람들이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올라가는 등 나쁜 경제 사정 때문에 이 세상이 완전히 끝장나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완전히 끝장날까요? 사는 것이 조금 힘들어지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끝장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별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습니다.

옛날 분들은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되어도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셨지요. 왜냐하면 기본적인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때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기본적인 의식주가 분명히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함은 과거보다 떨어지고 우울증 환자도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살릴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살릴 수 있는 으뜸가는 계명으로 바로 ‘사랑’을 뽑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은 총 613개의 항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으로 구분했는데, 중요한 것이 248개 그리고 덜 중요한 것이 365개라고 하지요. 이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중요한 것이라고 248개를 뽑았는데, 그렇다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정확한 답을 제시해 주십니다. 이 사랑의 계명만이 나를 이 세상 안에서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셨지요.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해서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목숨을 바쳤으며, 부활하신 뒤에도 우리 인간들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진정으로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당신의 모습을 닮아서 열심히 사랑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 내 자신의 신앙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리고 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고 있나요? 이 두 가지의 사랑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갈 때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룩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조명연 신부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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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당신의 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우리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이웃을자신처럼 사랑하는 종교!”

오늘의 복음 말씀이 정답이 아닐까요!!!

마태오 복음은 후반부로 가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술책이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성전 정화 이후, 세금 문제, 부활에 대한 논쟁 등등……. 이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다시 시험하려고 율법의 근본 계명에 대하여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준비된 대답으로 멋지게 매듭을 지으십니다. 즉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강조하십니다.

저 옛날 예수님 시대에 율법교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떤 학자가 한 사제를 찾아와 장난을 치고 싶어 물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빵과 포도주가 어떻게 예수의 몸과 피로 변화될 수 있습니까?”
사제는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일도 아닙니다. 당신도 음식을 섭취하여 당신의 살과 피로 변화시키는 마당에 그리스도께서 이 같은 일을 못 하실 까닭이 어디 있겠소!”
그러자 학자는 더 목소리를 높이며,
“하지만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그토록 작은 면병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사제가 다시 대답합니다.
“당신 앞에 펼쳐지는 저 넓고 아름다운풍경이 어떻게 당신의 그 조그마한 눈 속에 담겨지는지 참 신비스러운 일 아니오!”
학자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가 온 세상에 널린 교회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까?”
사제는 큰 거울을 가져와 그에게 비쳐 보이고 이내 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뿐이지만 이 깨진 거울 조각 하나하나 마다 당신의 얼굴이 동시에 비치고 있지 않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 작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신비로움과 내 손에 잡히는 이웃들을 통해서 우리는 온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곤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산을 움직일 수 있는 큰 신앙과 온갖 언어를 다하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해도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고 다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꽹과리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내 작은 눈빛과 한 조각 작은 나의 손짓으로 내 종교의 참모습을 비추는 신앙인이길 다시금 결심해 봅니다.

<인천교구 정윤섭 요셉 신부>
  |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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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모든 것을 걸어서

찬미 예수님.
무언가에 정신을 쏟는 일은 참 많은 것을 만들어 내며, 소모하게 합니다. 특히 창작활동을 하시는 예술가분들은 하나의 작품에 모든 정성을 쏟아내며 만드십니다.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최소한 그 작가의 혼이 들어간 작품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 한 사람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순수한 의미로 예수님께 질문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질문을 했던 사람은 정말 궁금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했습니다.

주로 예수님의 적대자로 표현되는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적대하고 있는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는 이유로 예수님께 모여 둡니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자신의 적대자들을 이기신 예수님께 호기심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좋은 의미에서 나온 것이 아닌 빈정대는 마음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복음에서 바라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이야기하면 그 말을 올가미로 사용하여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던 모습이 많이 비춰졌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 나쁜 의미로 신경을 쏟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마음을 아셨을 것이며 그들의 질문에 가장 바른 답변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량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에 대해 단순히 사랑하는 일로 끝나지 않고 “네 마 음 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모든 정신과 미음을 비롯하여 목숨까지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을 사랑해야 되는 시간에 예수님을 모함하거나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그들이 바른 길로 나아가길 바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두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이웃은 당시 유다인들 사이에서 천대받는 이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사이들이 외면했던 세리, 창녀, 병든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관심 안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천대받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점을 통해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 평소에 외면했던 이들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묵상해 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대적하고 있는 사두가이들을 비롯하여, 그들 개개인이 원수로 여기는 이들까지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좋은 일에 정신을 쏟게 되면 그 결과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곧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일에 전념 하게 되면 그에 따른 은총 또한 뒤따라 올 것입니다. 한 주간 하느님과 내 주변의 이웃에 대해 지금보다 좀 더 관 섬을 두시는 시간을 보내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인천교구 신현규 그레고리오 신부 - 2017년 10월 29일
  |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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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어른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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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신자들과 대화를 하는데, 미국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형제님께서 저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자신은 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이 미국으로 향했기에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가난한 나라에서 이민 온 동양사람. 게다가 자신이 조국에서 가지고 있던 사회적 지위가 몸에 익어 있었기에, 일자리를 구함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한인 성당의 회장님께서 오셔서, 이 곳의 현실을 알려주고 자신이 취직할 수 있는 기회와 동기를 부여하셨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자신의 삶에 여유가 생기고,
미국에서의 삶도 적응이 되었을 때, 새로이 이민 오는 동포들에게 마음을 써 줘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그 때, 한인 성당의 회장님께서 자신을 불러서 조용히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바오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을 받기만 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는 아닐걸세~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고, 적응하기 힘든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게,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지.”

그 형제님은 회장님의 말씀을 통해서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기만 했던 시간들, 하지만 삶의 풍요가 주님의 계명을 잊고, 잃게 만들었음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성당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봉헌하고 봉사하면서, ‘하느님 도와주세요.’하고 기도했었지만, 삶의 풍요가 찾아오자 신앙도, 사랑도, 배려도 놓치며 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형제님께서는 저에게 이러한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모두가 어렵고, 모두가 힘들 때에는 서로 나누고 돌보는 것들이 당연했지만, 재화가 쌓이고 각자의 삶이 조금이나마 풍요로워지니, 나누고 돌보는 것들이 더 어려워지고, ‘내가 언제 하느님께 청원을 드렸던가?’라고 할 정도로 신앙의 견고함이 물러졌네요. 신부님은 아직 젊어서 나이가 들어감이 어떤지 모르시겠지만, 젊어서는 열정과 자신감과 도전이 있지요. 다만 돈이 없고, 경험이 부족하며, 지혜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낀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주님 자비하심에 모든 것을 맡겨두며, 말씀대로 살 수 있기만을 바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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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백발의 형제님 말씀을 통해서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신학생으로 살아가면서 희망했던 사제의 모습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사제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세상의 풍요는 때때로
주님의 계명을 잊고 잃게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는 배려와 사랑과 관심 그리고 깊은 신앙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말씀은,
시대의 어려움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힘을 주시는 은총입니다. 2020년은 온 세상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지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더 깊은 묵상을 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것도 기억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오 복음 22장 37절. 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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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민경덕 베드로 신부
2020년 10월 25일 <인천교구 주보>에서
  |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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