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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사랑하라는 계명
조회수 | 2,565
작성일 | 08.11.22
오늘은 전례력으로는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이 날은 교황 비오 11세가 제정한 축일로, 그리스도께서 만백성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민족들 사이에는 평화를 이룩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십자가의 제사로 인류를 구원하신 영원한 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통치하고 계시고, 특히 세상 마지막 날에 인류를 심판하실 권한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세상 마지막 날, 다시 오신 예수님 앞에서 이루어질 공심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왕이 가난한 이의 복장을 하고 암행을 다녀와서, 그 때의 체험들을 가지고 그들을 심판하는 모습처럼 보여집니다. 그래서 왕인지 알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평소처럼 그분을 대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왕의 판결을 보면, 의인들로 분류된 사람들의 판결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헐벗은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보살펴 준 착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상을 받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악인으로 분류되어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는 벌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판결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의 이유는 나쁜 죄를 지었거나 약한 이들을 괴롭혔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께서 언제 굶주리고 헐벗으셨냐’며 항변합니다.

사실 의인들도 가장 작은이들을 주님으로 알아보고 보살펴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의인에게도, 악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에게도 “가장 작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당신을 대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가장 작은 이들을 그냥 지나쳐갔던 이들은 영원히 벌 받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죄를 짓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라고 가르치셨고,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 우리에게 새로 주신 계명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 받고 있는 형제들을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계명의 핵심은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계명에 따라 사랑을 실천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생명력을 얻어 활기와 행복이 가득해 질 것입니다.

문화미디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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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새해를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전례력으로는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왕’이란 단어는 민주화를 부르짖는 요즘 같은 시대에 거부감을 갖게 하는 용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왕’이란요즘의 ‘대통령’처럼 우리가 뽑아서 일꾼으로 삼았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체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예수의 십자가 위에 써 붙인 죄명(罪名)은 ‘유대인의 왕 나자렛 사람 예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권력에 뜻을 둔 적이 결코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정치범으로 몰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을 가장 비인간화시키는 죄(罪)와, 인간을 짓누르는 제일 두려운 공포의 대상인 죽음을 극복하셨습니다. 죄와 죽음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인간을 해방시킨 진정한 왕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부께서 당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많은 인간적인 갈등을 겪으셔야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내가 이렇게 마음을 겉잡을 수 없으니 무슨 말을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게 하여 주소서’하고 기도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고난의 시간을 겪으러 온 것이다.”(요한 12,27)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셔야 할 그 소명의 길은 ‘자신을 속죄양으로 바쳐, 많은 이들을 살리는, 고통 받는 야훼 종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인간적으로 멀리 도망치고 싶은 고통과 수난의 길이었지만, 예수님은 항상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며 그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아담의 불순종이 엮어 낸 모든 죄업(罪業)을 말끔히 씻으셨습니다. 이로써 인류는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만물의 으뜸이 되시고’ 죽음까지도 뛰어넘는 ‘우주의 왕’이 되셨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 봅시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이길 수 있습니까?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자신을 얼마나 이겼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이기적이며 단독자적인 성향은 우리 자신에 대한 사욕편정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넘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된 것은 자신을 온전히 내 놓는 사랑과,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전적인 순명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참된 해방, 구원에 이르는 길은 바로 예수님이 가신 그 길에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나의 삶이 보다 예수님 중심의 삶이 되어, 예수님이 나에게 진정한 왕으로 머무르실 때, 그 때 나에게 주님의 나라가 보다 가까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풍성한 주님 축복을 기도합니다.

배경민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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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왕’! ‘왕’이라고 들었을 때, 전 누구를 가장 먼저 떠올렸냐 하면,‘세종대왕’, ‘광해군’, ‘헤로데왕’ 등등을 떠올렸습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위’에 홀로 앉아 다른 사람들을 ‘위’에서부터 지배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명령하고, 나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자기 마음대로 처벌하던, 그런 위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 오늘 다른 사람들을 ‘위’에서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섬기던 왕이 있습니다. 그 왕은 애초에 위에 앉아계셨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태어나고 사셨던 분이었죠. 그리고 그 시골 동네 주변에서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살았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훗날 사람들에게 잡혀 십자가라는 참혹하고 아주 잔인한 형벌로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죽으셨던 분이죠. 우리는 이분을 ‘왕’이라고 부르고, ‘구세주’ 혹은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이 왕께서,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위’에서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명령’이 아니라 ‘부탁’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너희 중에 가장 작은 이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고, 너희 중에 가장 작은 이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 뿐인 왕께서 하신 이 말씀은 곧 우리 주변의 이웃들 중에 ‘가장 형편없는 이’, ‘쳐다도 보기 싫은 이’가 곧 우리가 섬겨야 할 왕이며, 곧 당신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람이 굶주리고 있으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면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가 되면 따뜻이 맞아들이고, 헐벗었으면 입을 것을 주며, 병들었을 때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다면 찾아가 위로해 주라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우리 왕의 명령이십니다.

▤ 의정부교구 박재석 안셀모 신부 : 2017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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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옆집’ 성인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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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를 생각하며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늘 그렇듯이 만족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구나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못한 코로나19의 세상 그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지금까지의 일상을 모두 정지시키거나 바꿔버렸습니다.

코로나19로
야기된 고통과 죽음, 낙심 그리고 혼돈에 빠져버린 세상 안에서 지난 2월 신자와 함께 하는 미사가 중지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사태의 발생을 미처 대비하고 있지 못한 세상에 공포감과 함께 엄청난 혼란과 무력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우리 삶의 진로를 뒤엎는 일이 일어나는 시간,
난세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다른 이의 생명을 위해 두려웠지만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다가간 이들의 헌신과 사랑이 지금의 일상이나마 지켜낸 것이라 믿습니다.

많은 이들이
내가 아니라 너와 우리를 살리는 몸짓을 선택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옆집’ 성인의 선함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나의 삶 중심에 ‘옆집’ 성인들의 선한 마음과 헌신, 생명 나눔의 부드러운 마음이 있었는가 반성하면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실 때 가장 비천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세상의 왕들과는 다른 섬김과 나눔, 사랑과 용서의 왕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세상에 사랑과 용서, 평화와 겸손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지막 날 심판의 기준도
이웃 사랑의 실천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굶주린 이, 헐벗
은 이, 감옥에 갇힌 이'가 누구로 보이는가 하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하느님께 벌을 받은 죄인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매달려 계시는 주님으로 보이는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겉모습만 본다면 무시하기 쉽습니다. 겉모습 너머로 그 사람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한다면 그 굶주린 이,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껍데기와 겉모습이 아니라 이웃의 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보잘것없는 ‘나’와 ‘너’가 하나가 될 때, 사랑과 용서, 평화와 겸손이 충만한 우리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곳이 예수 그리스도 왕국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살아가며 잘 견뎌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하며 한 이름 없는 신앙인의 기도를 나눕니다.

‘주님,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주십사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습니다.
많은 일을 해낼 수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습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기도했는데
지혜로워지라고 가난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습니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주셨습니다.

구한 것
하나도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부끄러운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 표현하지 못하는 기도는 모두 들어주셨습니다. 저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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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허영민 세례자 요한 신부
2020년 11월 22일 <의정부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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