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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조회수 | 3,179
작성일 | 08.11.22
문득 첫 본당 나갈 때의
대학 노트 다섯 권의 기록 중 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는 인수인계 때의 내용들이 담겨 있었는데, 전임 선배 신부님께 두렵고 떨리는 마음에서 본당생활에 대한 조언을 청하자 선배 신부님께서는 “공평하게 사사로움 없이(公平無私) 살면 돼.”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돌아보면 꽤 멋있게 들렸는데, 지금도 저의 생활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무수한 왕과 통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함으로써 위대한 왕과 통치자로 기억에 남은 자가 있는가 하면, 권력으로 백성을 억누르고 착취와 비리와 부정을 통하여 치부를 일삼아 폭군이나 독재자로 남아 있는 이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들 모두가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한 민족과 한 나라에 국한된 시대적 인물이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그런 우리의 영원한 왕이며 통치자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왕으로 모시고 경배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그들과 다릅니다.
그분은 죽음까지도 이기시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들로서, 만왕의 왕이시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함하여 영원히 세상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실 왕이시며,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왕국의 통치는 권력과 억압을 통한 부정, 비리, 치부가 아닌 사랑과 진리를 통한 봉사입니다. 무엇보다 사랑과 봉사는 그리스도 왕국의 (헌)법으로 오늘날 믿는 이 모두에게 복을 통해 영향을 미칩니다.

최후의 심판은 만민에 대한 예외 없는 심판입니다.
오늘 복음은 심판의 기준과 여섯 가지 구체적인 행동이 나오고 있습니다. 곧 심판의 기준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 해 주지 않은 것”이며 여섯 가지의 구체적인 행동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는 것, 목이 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는 것,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이 맞아 들이는 것,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는 것,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는 것,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는 것인데, ‘분명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과 자비의 행동입니다.

우리 믿는 이조차 바쁘고
쫓기는 힘겹고 버거운 생활의 연속입니다. 이럴수록 나와 내 가정만 보지 말고 우리 모두 믿는 이가 그리스도 예수님 왕국의 백성임을 자칭하며, ‘가장 작은 이에게 베푼 선행이 주님께 베푼 것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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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정영우 세례자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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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도 갖지 않은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국적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국적이 어디라고 대답합니다.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 우리 인생의 왕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적은 당연히 그리스도 자신이며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로부터 왕이라 함은 지배와 통솔을, 그리고 절대적인 권위와 힘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적 권위는 이러한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을 말합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 달리 표현하면, 자신에 대해서는 몸과 마음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초하여 자유롭게 지배하는 것이며, 타인에 대해서는 정의와 평화가 지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고자 함께 노력한다는 의미로서의 왕적인 권위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의 왕직을 아름다움과 지복 안에서의 왕적인 자유라고 하였습니다. 즉 법적 규율에 속한 자가 아닌 왕적 자유의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세상에 살면서도 천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자유롭게 그 삶을 실천하는 모습이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베드 3,13).

오늘 복음은 물질만능주의와 개인주의적인 현세 생활 안에 있는 우리에게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하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왕직을 부여받은 우리가 그 왕직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때에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마태 25,41).

그렇다면 세상에 살면서도 그리스도의 왕직을 내적으로 자유롭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갖고도 갖지 않은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왕적 자유를 지니려면 기도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것이고 모든 것이 우리들의 것이라면, 개인의 것으로 간주해서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을 위해 밥을 하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먼저 쌀을 한 줌 떠 놓고 밥을 하는 분, 외식 자리에서도 천 원, 이천 원을 따로 떼어놓는 분도 계시고 보이지 않게 가난한 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는 신도들의 삶이고 그리스도의 왕직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이며, 먼 훗날 그 안에 주님의 축복이 함께 있음을 확신합니다.

민상영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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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가치관

왕 : 옛날에는 나라에 반드시 왕이 있었습니다. 백성은 왕의 나라에서 왕이 공포한 법을 지키며, 왕이 제시하는 가치관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이 제시한 가치관을 따라 삽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는 예수님을 왕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시하신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승리자이기 보다 는 철저한 패배자처럼 보입니다. 그분의 왕좌는 십자가이며 그분의 왕관은 가시관 입니다. 그분은 왕의 홀 대신 갈대를 들고 있으며 화려한 옷은 커녕 겉옷이 벗겨집니다. 그분의 손은 화려한 반지를 끼고 있지 않으시고 오히려 못에 박힙니다.

죄 많은 인간을 위해 철저히 부서지고 깨어지는 삶,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허리를 굽히고 기꺼이 무릎을 꿇는 삶, 약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그 아픔에 함께 하려 노력하는 삶, 이것이 바로 왕이신 예수님의 가치관입니다. 우리가 왕이라는 칭호를 축일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린 새로운 질서가 있고 그에 따르는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최후심판 이야기입니다. 오늘 의 이야기에 열거된 사람들은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들입니다. 한 마디로 어려움에 처한,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쉽게 외면당합니다. 오늘 예수님 은 그런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을 보살피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고쳐주고, 죄인들을 용서하면서 연민과 보살핌을 실천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의 최후심판 이야기는 우리도 인간 차별을 없애는 연민과 보살핌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이를 돌보아 주 고, 감옥에 갇힌 이를 찾아주는 것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 왕’의 나라로 만드는 적극적인 몸짓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한 사람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해 : 우리는 미사에서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줄 몸이다, 이는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해 흘릴 피다.’ 라는 말씀, 또 ‘너 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는 말씀도 듣습니다. 오늘 성찬에 참여하면서 예수님을 기억하고, 그분이 보여준 가치관을 따라 살겠다고 마음다짐을 합시다. 참 왕이신 그분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 춘천교구 오세민 루도비코 신부 : 2017년 11월 26일
  |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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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네가 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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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을‘그리스도왕 대축일로 기념합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 및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교황 비오 11세께서 제정하셨습니다(1925년).

여러분은 왕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시나요?
보통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를 떠올리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 중에‘왕 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게임을 통하여 왕으로 뽑힌 사람의 명령에 신하들은 절대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명령이 가령 길을 가는 사람에게 돈을 꾸어오라든가, 건너편에 있는 여성(혹은 남성)에게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를 하고 오라는 등의 황당한 것이라도 무조건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지요. 그 명령을 실행하지 못하면 더 가혹한 형벌을 가하게 됩니다. 지극히 세속적인‘왕의 모습이요 전형적인 힘의 논리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시다’라는 고백에도 이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 구원을 위하여 가장 비천하고 작은 자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이 서로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말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알다시피 세상에서는 통치자들이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들이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태오 복음 20장 25절-28절)

그리고 예수님은
일생 비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시며 그들과 어울리시고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러한 총체적 삶의 결론이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오 복음 25장 40절)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귀한 존재인 인간은 영혼과 육신을 지녔지요. 영혼이 있다는 사실은 죽음 다음의 삶을 생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고 열망하는 하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나라이며, 정의와 평화, 사랑과 나눔, 섬김과 봉사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의 진정한 백성이 되기 위하여 오늘 낮은 자의 모습으로‘작은 사랑을 실천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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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오세민 루도비꼬 신부
2020년 11월 22일 <춘천교구 주보>에서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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