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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아는게 병?
조회수 | 1,402
작성일 | 11.09.24
고사성어 식자우환(識字憂患)은 '아는 게 병'이라는 뜻으로,
올바로 알지 못해 걱정거리가 되거나 피해를 볼 때 쓰는 말입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속담 역시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입니다.
 
반대로 '아는 게 힘'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외국에 나가 그 나라 말을 할 줄 알아 큰 힘이 될 때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언젠가 한 중년 남성이 지하철 안에서
붉은 성경책을 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자기를 모교회 담임목사라고 소개한 남성은 "성경을 읽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니 주 예수를 믿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 "좀 조용히 해달라"고 항의하자 중년 남성은 더 큰소리로 "강릉과 동해안에 큰 수해가 난 것은 주님을 믿지 않아 받은 벌"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엄마 품에 안겨 새록새록 잠을 자던 아기가 고함소리에 깨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자 승객들은 중년 남성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보내며 웅성거렸습니다. 이에 중년 남성은 승객들을 향해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다"하는 저주의 말을 남기고 지하철 문이 열리자 사라졌습니다.
 
그날 밤 그 붉은 성경책의 주인인 중년 남성은 "예수님 말씀대로 복음을 선포하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잠자리에 들었겠지요? 그러나 그 행위는 복음 선포나 증거의 삶을 실천했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습니다. 그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과 아이에게 일종의 폭력을 휘두른 것입니다.
 
이 중년 남성이 바로
'식자우환'이라는 고사성어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는 신앙을 알지만 잘못 알아서 이웃과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입니다. 하느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그 뜻을 세상에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뜻에 어긋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했습니다. 큰아들은 처음에는 "안 간다"고 했다가 나중에 뉘우치고 일을 하러 갔습니다. 아버지의 똑같은 말씀에 작은아들은 순명하며 "일하러 가겠다"고 대답했지만 일을 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 중 아버지 뜻을 따른 것은 큰아들이었습니다.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처럼 엄마가 하라고 시킨 것을 실천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한 어린이는 엄마가 저녁기도를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숙제 끝내고 나중에 혼자 할게요"하고 말해놓고 기도를 안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한 어린이는 방 청소를 하라는 아빠 말에 싫다고 투정을 부린 후 마음을 바꾸어 방 청소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복음에 나오는 작은아들처럼 하느님 뜻을 따른다고 말해놓고 거역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큰아들처럼 처음에는 그 뜻을 따를 마음이 없었지만 곧 뉘우치고 따르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혹시 지하철에서 하느님 뜻을 거역한 중년 남성처럼 하느님 뜻을 실천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역해 버린 사람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받기 전에는 큰아들처럼 포도원에 가지 않으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 자녀가 된 후에 포도원에 가겠다고 마음을 바꾼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포도원에 가야 하고 당연히 하느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만을 믿겠다고,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겠다고, 기도하며 봉사하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병이 되지 않고 힘이 되려면 아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는 것을 잘 실천하는 진짜배기 신자들은 신앙에서 큰 힘과 활력소를 얻지만 실천하지 않는 무늬만 신자인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작은아들이 되지 말고 아는 것을 실천하는 큰아들이 됩시다. 아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참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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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박용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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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웬수 같은 두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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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와 '웬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이 질문을 이렇게 해석하더군요. '원수'는 못내 잊지 못할 만큼 마음에 사무치도록 원한이 쌓인 존재이지만, '웬수'는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있는 정 없는 정 다 들어서 미움을 넘어서는 '애증의 관계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수'는 복수를 하고 싶은 상대이지만, '웬수는 복수를 할 수 없는 상대라고 합니다.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요.

오늘 복음에서 '웬수 같은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하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청을 싫습니다.”라고 딱 잘라서 말하는 큰아들과, “가겠습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그 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작은아들을 만나게 됩니다.

큰아들의 마음을 생각해봅니다.
포도밭을 경작할 정도라면, 그 동네에서 그 누구보다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통할 법 합니다. 큰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마치도 이름난 왕의 아들로 태어난 어느 세자의 모습처럼 늘 아버지 앞에서는 숨이 막히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재산이 다 너의 것이다!'라며 읊조리는 아버지의 말씀은 더욱더 큰아들의 마음을 짓눌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니요!'라고 대답하는 편이, 힘든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회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작은 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기를 바랐습니다. 일단은 '예!'라고 대답하는 편이 이 관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 그 자체가 아니라, 아버지의 시선에 연연하였기 때문입니다. 진정 아버지의 마음과 뜻에 동조하기보다는, 그렇게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을 했기에 그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가 변하기보다는 '너'가 변하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작은아들의 삶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의 핵심은
아들들의 면모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고 일하러 간 큰아들의 모습을, 그렇게 스스로를 변화시킨 큰아들의 결단을 기억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큰아들을 변화시킨 것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그는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랑과 뜻에 합치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지금껏 아버지를 향한 자신의 편견과 생각을 깨어버렸기에, 아버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놀라운 것입니다.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아버지와 일치하려고 자신을 변화시킨 큰아들의 행동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알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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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성호영 다니엘 신부
2020년 9월 27일 <원주교구 주보>에서
  |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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