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63 42.4%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조회수 | 1,472
작성일 | 11.11.04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는 오디션이나 경연에 대한 프로그램이 많아졌고 인기도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현재 유행 중인 말 줄이기를 통해 위탄, 슈스케, 나가수 등의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각각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끼와 재능을 짧은 시간에 보여줘야 하고 그 후에는 조언자나 평가단의 칭찬이나 질책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다음 단계도 더 잘 통과하게 됩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노력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시해야 하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 계속해서 그때그때의 자신의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잘 하는 부분을 부각하고 미숙한 부분에는 더 많은 공을 들여야 인정을 받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프로답지 못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또한, 조언자나 평가단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잘 파악하고 조언자들의 조언을 잘 이해해야 발전하게 되고 인정을 받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슬기로운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합니다.
이는 곧 신랑이 빨리 올 것이라고 속단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신랑을 자신만의 생각과 틀 속에 넣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본인의 힘과 능력만으로 등을 계속해서 밝힐 수 없음을 알고 있고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름을 더 챙긴 것입니다.

이에 비해 어리석은 처녀들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이는 일단 신랑이 그들의 바람대로 일찍 올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좀 더 깊게 생각해본다면,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 곧 ‘주님’을 본인만의 욕심과 상상 속에 가둬 넣은 것입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등이 꺼질 것이며 그러면 여분의 기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부분까지 아직 생각하지 못한 것인데, 이는 곧 평소에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자기 주변의 일들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기도 안에서 바라보지 않을 때의 우리네 모습과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결국, 어리석은 처녀들은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과 주님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때의 우리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 모두를 자신 안에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 안에서, 오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

인천교구 최화인 라우렌시오 신부
463 42.4%
[인천]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이 있습니다

--------------------------------------------


참으로 힘든 한 해를 살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로 지내면서 한 주 앞으로 옮겨졌지만, ‘평신도 주일’은 사실상 집에 걸린 ‘성당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숫자가 붙은 마지막 연중 시기의 주일이었습니다.

미사 중에
‘신앙의 신비’와 ‘주님의 기도’에 이어진 간구에서도 거듭 확인하지만, ‘주님께서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기에, 태생부터 종말론적인 신앙을 지닌 교회 공동체가 ‘평신도 주일’을 전례력의 끝에 지내기로 한 것은 우리 모두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항상 기억하라는 배려일 것입니다.

특별히 세기말보다
더 요란한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문득 보편 교회에서 갈라진 형제들 안에서 지난 1992년에 있었던 ‘휴거 소동’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마태 22,29ㄴ)라는 소리를 들어도 싼 이 황당무계한 주장보다놀라운 건, 참으로 많은 이들이 미혹되어 울고 불며 하늘만 바라보다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우습지만 안타까운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비워진 성당을 보며 너무나 극단적으로 치달았던 그네들의 어리석고 맹목적인 믿음, 그 정반대에 우리의 식어버린 믿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섯은 어리석었고, 다섯은 슬기로웠던 열 처녀 중에 과연 우리의 모습은 어디쯤 있을까요?

혹자는
요란을 떨다가 세상의 비웃음을 산 1992년의 누구들이 아닌, 요즘들어 “역시 천주교는 다르다”라는 인정과 찬사를 받는 우리야말로 슬기로운 처녀들일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코로나-19에 대한 맹목적 공포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주일에 성당을 찾지 않고, ‘위험한 성당 빼고는 다 괜찮은’ 현실만을 살아가는 수 많은 교우들의 모습 속에서, 지금 당장만을 보았기에 여분의 기름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어리석은 처녀들의 모습을 더 겹쳐보게 됩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을 맞아 이번 희년 주제인 “당신이 천주교인이요?”라는 신부님을 문초한 관장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종교는 하느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해 주오.”

우리 믿음이 인도하는 “영원한 행복”은 대체 어디에 있는지요.
등불을 켜들고 걸어야 될 어둔 밤과도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마침내 찾아오고야 말 ‘새신랑’과 같은 영원한 행복, 곧 구원은 과연 ‘이 세상’과 ‘저 세상’, 그 어디에 있는지요.

바오로 사도께서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1테살 4,13ㄴ)고 하였는데, 우리가 온통 현실에 대한 근심과 걱정에만 휩싸일 때, 믿음 없는 자들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희망의 등불을 바라볼 수 있을는지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 셨음을” 믿는 사람들이며, 그 부활이 곧 우리 부활에 대한 약속의 보증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즉 여기서부터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죽음도 우리를 주님에게서 갈라 놓을 수 없기에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ㄴ). 곧 믿음의 눈으로 보면 “밤 또한 낮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들인 것이며, 이제로부터 영원히 주님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200년을 넘어서도
여전히 유효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마지막 당부를 ‘평신도 주일’을 맞아 되새겨 봅니다.

“...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뤄 한 몸 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성 김대건 사제의 스물한 번째 편지에서)

------------------------------------------

인천교구 이병찬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0년 11월 8일 <인천교구 주보>에서
  | 11.06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04   [수도회] 예수님을 따르는 길  [1] 2782
803   [제주] 우리 주교님, 나의 주교님  84
802   [원주] 가깝고도 먼 길  [4] 3075
801   [광주] 누가 우리의 왕인가  [1] 2757
800   [서울] 하늘나라 백성이 지녀야 할 모습  [7] 3319
799   [군종] 자신을 내어 놓는 삶  [1] 1737
798   [인천] 그리스도 우리의 왕  [4] 3014
797   [의정부] 사랑하라는 계명  [3] 2565
796   [대구] 심판의 기준  [2] 2717
795   [마산] 예수님은 나의 왕인가?  [4] 3596
794   [전주] 최후의 심판  [3] 3007
793   [부산] 연민과 봉사의 실천  [6] 3085
792   [안동] 구원의 길  [4] 3019
791   [대전] 희망을 품고 살아 갑시다.  [1] 1566
790   [수원]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뢰와 사랑을  [5] 3197
789   [춘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3] 3179
788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1] 2753
787   [수도회] 모든 것이 다 선물입니다  [2] 2161
786   [청주] 주인을 바라보는 눈  176
785   [군종] 내가 가진 작은 것에서 부터  [1] 2231
784   [인천]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2] 2352
783   [마산] 나의 달란트 어떻게 쓸까?  2326
782   [춘천] 착하고 성실한 종  [1] 2277
781   [수원] 결실을 맺는 활동적인 신앙생활  [3] 2407
780   [광주] 착하고 성실한 종, 악하고 게으른 종  140
779   [원주] 시든 꽃과 같이  2353
778   [서울] 하느님의 구원 계획  [5] 2644
777   [전주] "묻어둔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자”  [1] 2511
776   [의정부] 받은 탈란트를 이웃을 위해  [1] 1772
775   [대구] 자비·겸손·찬미·평화·사랑  [1] 2262
774   [대전]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59
773   [제주] 탈란트의 가치  166
772   [부산] 받은 것을 베풀고 나누고 살자  [1] 2437
771   [안동] 모든 이에게 주신 선물  2063
770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탈렌트talent의 비유)  [4] 1877
769   [수도회] 일상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2590
768   [전주] ‘즉시 그리고 기쁘게’ 나누는 삶  2667
767   [서울]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3] 2913
  [인천]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  [1] 1472
765   [수원] 깨어 있음의 중요성  [4] 3088
1 [2][3][4][5][6][7][8][9][10]..[21]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1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