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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자신을 내어 놓는 삶
조회수 | 1,737
작성일 | 11.11.19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 왕은 다른 세계적으로 유명한 왕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 황제, 진시황, 징키스칸 또 우리 역사 안에서는 광개토 대왕도 있습니다. 이들은 활동했던 시대와 지역이 다르지만 일치되는 특징이 있다면 재위 기간 중에 많은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였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왕으로 만들었습니다.

헌데 그리스도 왕은
이런 왕들과는 달리 정복한 땅도 없고, 사람들을 지배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머리 둘 곳조차 없이 방랑을 해야 했고,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처형당해야 했습니다. 일반적 기준에서 왕이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분을 진정한 왕이라 고백합니다. 그것은 참된 왕의 사명이 정복과 지배가 아닌 ‘다스림’에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풀과 나무와 곡식들을 만들고 물고기와 새들을 만들고 집짐승과 들짐승들을 모두 만든 다음, 즉 모든 동식물을 만든 다음에 그들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사람을 만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다스린다는 것은 왕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왕이 다스리기 위해 백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왕이 있는 것, 다시 말해 백성을 위해 왕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였습니다.
백성에게 내어놓기를 명령하는 왕이 아니라, 자기를 백성들을 위해 내어놓는 왕이었습니다. 진정한 왕은 자기를 위해 백성을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착한 목자입니다.

이런 우리의 왕께서는
자기 탓도 아닌 우리 탓에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시는 와중에도 자기의 생명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명을 다스리십니다. 당신의 나라에 들어갈 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죄수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구원으로 이끄셨습니다. 공생활 내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구원받기를 위해 활동해오신 분이, 오직 백성을 위한 그 활동 때문에 시기와 질투 속에 처형 받는 와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하고 계십니다.

이런 분이 바로 우리의 왕이십니다.
자신은 죽더라도 백성들을 살리시는 왕이십니다. 자기는 다 잃는 한이 있어도 백성들에게 주실 것은 다 주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왕의 백성입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왕, 참다운 왕이신 그분께 당신은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왕처럼, 자신을 내어 놓는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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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정호 미카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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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가장 작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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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력으로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돌아오는 대림 제1주일부터는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올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얼마나 도우며 살았는지를 말이죠. 가장 작은 이들을 향한 ‘나눔’은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막상 실천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굶주렸을 때, 내가 목말랐을 때’라고 말씀하시며 가장 작은 이가 바로 ‘나’라고 말씀해주시지만, 남을 돕는다는 건 그래도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남’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죽을 것 같은 고통보다 침대에 부딪힌 내 발가락이 더 신경 쓰이고 아픈 게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가 ‘남’을 도우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공감’입니다.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어떤 ‘공감’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한 교수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교수님은 억울한 일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재소자들과 친구처럼 지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다가가려 했지만 늘 변두리에 있을 수 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살인죄로 오랜 시간 감옥에 있었지만, 그동안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았던 재소자에게 면회 신청이 들어오는 일이 생깁니다. 모든 재소자들은 ‘도대체 누굴까?’ 하며 궁금해 했고 그가 돌아오자 ‘누가 면회 온 거냐?’라고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재소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재소자의 어머니는
그가 어렸을 때 폭력을 휘두르던 남편을 피해 도망갔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이미자식이 있는 사람과 재혼을 하였고, 그 아이를 정성껏 길렀는데, 바로 그 아이가 어른이 돼서 면회를 온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재소자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나에게 와서 나를 잘 길러주셨기 때문에 난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당신 어머니가 나에게 오지 않았다면 내가 당신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교수님은 ‘나도 마찬가지구나. 내가 좋은 부모님 밑에서, 좋은 환경에서 자라서 이렇게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거였지, 만일 저 사람과 같은 상황이었으면 내가 무기수였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야 재소자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할수 있었고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교수님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가장 작은 이들은 예수님이기도 하지만 바로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그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 동정이나 불쌍하게 봐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존중의 대상이라는 것, 그게 진실한 공감의 시작입니다. 이 공감을 통해 사랑의 나눔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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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서정훈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2020년 11월 22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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