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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위하여’가 아닌 ‘함께’
조회수 | 438
작성일 | 17.05.08
[전주] ‘위하여’가 아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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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은 부활 제5주일임에도 불구하고, 특집처럼 장애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서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인간 존엄성이나, 각자의 권리와 의무 측면에서 똑같습니다. 다만, 장애인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나 움직임에서 ‘다른 일면’이 존재할 뿐입니다. 따라서 정상인이 장애인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정상인 모두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 복지의 기본이념을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통하여 사회통합을 이루는데 있다.”(장애인복지법 3조)고 정했습니다. 아울러 동법 8조에서는 “누구든지 장애를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차별하여서는 안 된다. 그들을 비하, 모욕하거나 장애인을 이용하여 부당한 영리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공공기관의 편의시설(경사로, 엘리베이터, 장애인주차시설, 화장실 등) 설치와 운영에 대한 조항(동법 23조)도 의무화 됩니다.

이와 관련한 교회 안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장애인들이 교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을 가지고 기쁘게 찾아올 수 있는가요? 그들이 거침없이 들어올 수 있는 편의시설은 잘 되어 있습니까? 그들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뭔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교회 안에 면면히 살아있는지요? 그들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한, 우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 공동체라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운 일입니다.

장애인은 정상인의 사랑과 관심과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정상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장애인을 통하여 감사와 힘찬 노력과 넉넉한 마음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래서 이 둘의 관계는 동시에 도움을 주는 사회복지사이자, 도움을 받는 대상자로 함께 살아가는,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대성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희망사항이 있다면, 교회가 장애인들의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고, ‘함께’ 살고 있음을 가장 진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정상인이 손을 맞잡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요한 14,6)을 따라 걸어가는 같은 형제요 자매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하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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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장상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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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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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우리를 위해 하늘에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작별 인사를 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금방 알아차리고 여러 질문들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에 맞게 독서의 내용도 잠시 이별을 보여주는 말씀, 이를테면 각 교회 공동체에 작별 인사를 나누는 바오로 사도의 인사말이 나올 법도 하지만, 오늘 독서들은 모두 교회의 봉사와 사명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하는 하늘의 자리와 독서가말하는 교회,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사실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아주 긴밀한 관계로 일치해 있습니다.

이 뗄 수 없는 관계는 교회가 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조금 더 명확해집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하는 일들은 교회 안에 머무시는 주님의 힘으로 행하여지기 때문입니다.

성부께서 성자 안에 머무르시며 당신의 일을 하시듯(요한 14,10 참조),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 머무르시며 몸소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와 완전한 이별을 준비하시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의 관계를 바오로 사도는 줄곧 한 몸으로 표현합니다(에페 4,1-11 참조).

그러나 교회 안에서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고 주님께서 마련해주시는 하늘의 자리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이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건설을 위해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 사명은 곧 하느님 말씀이 더욱 자라나 많은 이들이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도록 서로 봉사하는 사명입니다(사도 6,7 참조).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당신의 몸인 교회로 부르시고, 봉사 직무의 은총을 끊임없이 마련하여 주십니다. 교회는 이 은총을 받아 그 구성원 모두가 주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더욱잘 얻을 수 있도록 봉사합니다. 이는 단지 믿는이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봉사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까지도(1베드 2,8 참조)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화되어 함께 구원을 받게 도와주는 사랑의 봉사입니다.

따라서 오늘 독서의 내용들은 복음과 아주 깊이 일치합니다. 모든 이들이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하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교회와 한 몸을 이루시어 교회 안에 현존하십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 머물면서 주님께서 어디에 계시냐고 물으며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지요. “너희의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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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강구종 안드레아 신부
2020년 5월 10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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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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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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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제자들이 하게 될 일에 대해 예언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지시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라는 말씀은, 예수님 승천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들’을 이어받아서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당신이 하시던 일들을 이어받아서 계속하라고 지시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더 큰 일’이라는 말은 ‘더 위대한 일’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즉 더 먼 곳으로 가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하게 되는 일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가셨던 곳보다 더 먼 곳까지(세상 끝까지) 가서, 예수님께서 만나셨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온 세상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선포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라는 지시이기도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은 당신의 승천을 예고하신 말씀이고, 또 제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는 이유, 또는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승천 전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직접 다 하셨고 제자들은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당신이 하시던 일들을 모두 제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제자들이 모든 일을 직접 해도 될 정도로 충분히 발전했고 성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자들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 말씀에서 “나를 믿는 사람은”이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제자들이 일할 때 필요한 믿음은 예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제자들이 일하고 예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일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도와드립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서 떠나신 일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제자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존재 방식을 바꾸신 일입니다.)

지금까지 한 말을 정리해서, 예수님 말씀을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나는 곧 아버지께 간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희는 내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서 계속하여라. 그리고 세상 끝까지 가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어라.”

이 말씀은 마태오복음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인들이 할 일 가운데 첫 번째 일은 ‘복음 선포’입니다. 우선 먼저 ‘내가’ 믿고, ‘내가’ 구원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나만’ 구원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사랑 없는’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립니다. 복음 선포는 이웃도 함께 구원받기를 바라고 노력하는 ‘사랑 실천’입니다. 믿음은 사랑과 하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 선포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지금 강조하고 있는 ‘복음 선포’는 전문적인 선교사들의 선교활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하지만, ‘복음 선포’는 신앙인들이 삶 전체를 통해서 믿음을 증언하고 희망을 고백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 자체가 복음 선포입니다. (삶 자체가 복음 선포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있겠다는 약속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13-14).”

이 말씀은 마르코복음에 있는 다음 말에 연결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마르코 16,19-20).

제자들은 표징들 덕분에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신다는 것과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주님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무엇을 청하든지 간에 아무거나 다 이루어 주겠다는 약속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음을 놓치면 안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청하려면, 주님의 뜻에 합당하는 것만 청해야 합니다. 만일에 주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청하면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청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대죄가 됩니다.)

(여기서 ‘표징’이라는 말은 ‘놀라운 기적’들 외에도, 주님의 현존과 주님 말씀의 힘을 확신하게 해 주는 어떤 체험들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단 한 마디도 ‘빈말’이 없습니다. 언제나 항상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주님의 약속은 늘 현실이 됩니다. 그것을 한 번이라도 체험하게 된다면, 신앙생활이 얼마나 위대한 생활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믿음’을 가장 크게 방해하는 걸림돌은 ‘의심’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의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야고 1,6-8).”

(혹시, 의심을 잘 물리치는 ‘비결’ 같은 것이 있을까? 믿으려고 더욱 노력하면서, 도와달라고 주님께 더욱더 열심히 기도하는 것 외에는 비결 같은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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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0년 5월 10일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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