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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조회수 | 482
작성일 | 17.05.08
[의정부]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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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거룩한 관계입니다. 즉 종교는 거룩함을 추구하고,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 내지 존재 이유로 삼습니다. 거룩이라는 히브리 단어 ‘qdsh’는 거룩함과 구별됨이라는 두 개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거룩은 구별됨’이란 뜻입니다. 즉 세상이나 인간이 가지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하는, 인간세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 존재나 대상을 체험할 때 우리는 경외의 감정을 드러내게 되며, 그러한 것을 거룩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세상에서 억압·탐욕·불의·폭력·독점·불화 등과 같은 죽임의 힘을 체험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세력과 구별·대조되는 자유·해방·정의·화해·나눔·평화 등과 같은 생명의 힘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죽임의 힘과 구별되는 이 생명의 힘은 거룩한 것이며 이러한 가치를 사는 것은 거룩한 삶의 관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은 많은 경우 우리 자아의 고유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란 말씀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자아와는 구별되는 하느님을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본 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었다는 것이 예수 제자 공동체의 고백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서 발견한 하느님의 일이란 어떤 일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십자가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은 자신에게 가해진 세상의 폭력과 배반에 대하여 폭력과 복수로 맞서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께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청원하셨습니다. 주님은 극단적인 고통의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느님께 찬미의 기도를 드리며, 어머니와 제자들을 위로하고 배려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실로 전율할만한 충격이자 감동이었습니다. ‘이 분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아! 저것은 인간의 죽음이 아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죽음은 하느님만이 가능하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인간 세상의 방식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자세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이 거룩함은 모든 종교적 감동의 원천이며 개인적·공동체적인 회개를 이끌어내는 근원입니다. 십자가 체험을 통해 제자들은 주님의 존재(말씀과 행적)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게 됩니다. 즉 살아 생전의 주님의 본래 면목이 제자들의 의식 안에 온전하고도 생생하게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의식 속에서 살아난 주님이 제자들의 말과 행동, 나아가 삶 자체를 통해 살아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자들의 부활 체험이자 회개체험입니다.

제자들은 철저하게 예수살이를 구현했고 초대교회 사람들은 제자들에게서 주님을 뵌 것입니다. 지난 3월10일, 교황청은 현대의 새로운 ‘칠죄종’을 발표하면서 세계화 시대의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세계화 시대의 회개를 위해, 우리 믿는 이들이 먼저 거룩함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주님과 그 분의 일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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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맹제영 로마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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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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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기준과 ‘기도’에 중심을 둔 신앙생활(사도 6,2-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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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성가 244번의 가사처럼, ‘가장 좋은 시절’인 성모성월이 시작된 지 열흘이 되었고, 과연 우리의 자연은 생명으로 넘실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우리 마음과 사회는 잔뜩 움츠렸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려는 것 같습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좁고 어두운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와 자연에 다가가고, 이웃에 다가가라고 초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주일미사에서는 당신의 말씀과 성체를 통해 우리를 당신의 “넘치는 생명”에 참여하도록 초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 서울 혜화동 성당의 전면에 큰 글씨로 새겨져 있어 그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는 이 말씀은 오늘 복음의 핵심일 뿐 아니라, 요한 복음사가가 증언하고자 하는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 복음 말씀에서 ‘길’은 아버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사람들을 진정으로 하느님께 인도해주시는 분이시고,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를 계시해 주시는 ‘말씀’(요한 1장 참조)이시기에 그분이 곧 ‘진리’이시며, 그분의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기에 ‘생명’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라고 믿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난 성소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머리로만 ‘그렇다’라고 동의하는 것은 아직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 믿는다면, 착한 양이 되어 그분을 따라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길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예수님이 가신 길을 뒤따라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가신 길은 어떤 길이었나요? 그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에 잘 나타나 있듯이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길이 바로, 인류를 살리는 생명의 길임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힘차게 선포합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런 예수님의 길을 그대로 따라간 신앙의 증인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쪽방촌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며 널리 존경받던 ‘요셉의원’의
설립자 故 선우경식 원장이 그런 분이십니다.

다른 한편 오늘의 제1 독서(사도 6,1-7)의 말씀은 신앙공동체가 ‘하느님 말씀’에 기준을 두고 ‘기도’라는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기준’과 ‘중심’이 약해질 때, 신앙공동체에 분란이 일어나며 ‘일치’가 위태로워짐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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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김영남 다미아노 신부
2020년 5월 10일 의정부교구 주보에서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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