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가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9 84%
[군종]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조회수 | 1,094
작성일 | 17.05.08
[군종]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어릴적 중고등학생 때, 사제직을 지망하는 학생들은 신학교에 가기 위해 예비신학생 모임을 다녀야 하기에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지러 신학교로 가곤 했습니다.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대신학교(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혜화동 로터리에는 백동성당이라고 불리는 서울의 3번째(설립) 본당 혜화동 성당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제성소를 꿈꾸며 신학교를 향해 그 길을 걸으며, 항상 혜화동성당 앞에 멈춰서서 인사하고 다짐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혜화동성당 정면 벽에는 예수님 조각과 함께 이런 성경 말씀이 적혀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말은 변치 아니하리라.”

신학교에 3S라는 것이 있습니다. (라틴어 첫글자를 따서 만든) 훌륭한 신학생으로 양성되는 3가지 덕을 가리킵니다. Sacntitas(성덕), Sanitas(체덕), Scientia(지덕)입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모든 신앙인들이 따라야 주님의 3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3V라고 부르겠습니다. Via(길), Veritas(진리), Vita(생명)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오늘 복음 말씀이었습니다. 항상 되새기며 다짐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그 진리를 향해, 그분의 생명으로 살아가겠다고 말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으로 그분이 참된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가까이, 예수님은 나의 길이고, 나의 진리이고, 나의 생명임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립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이미 먼저 걸어가셨던 주님의 발자국이 우리를 인도하고, 그 길 끝에서 이 길에 절대 틀리지 않다는 참된 진리로 기다리시고, 그 길을 걸어갈 힘과 용기, 즉 생명으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고, 우리의 인생길이 향하는 진리이시고, 이 모든 것을 살아가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받았고, 은총 속에 산 것은,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셨도다. 주의 참된 평화여, 신성한 감격이여,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가톨릭성가 34번)

----------------------------------------------------------

군종교구 이정우 도미니코 신부
459 84%
[군종]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길’이라는 단어는 참 다양하게 쓰입니다. 인도, 찻길, 산길 등 실제 있는 ‘길’부터 인생길, 신앙의 여정, 천국으로 가는 길, 다음 시대로 가는 길 등 추상적인 ‘길’까지 매우 다양하지요. 이처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적용되는 것이면 ‘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 그것이 바로 예수님 당신이라고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길’도 지금 내가 있는 이 시간 이 장소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신 곳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길’에 대해 말씀하시며 다른 어떤 방법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기도를 많이 해라,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선행을 실천해라, 자선을 실천해라 등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길을 걷는 방법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께 여쭤볼 수밖에 없었지요.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은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이 답변은 우리에게 주시는 답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십니다. 그 길에 누가 함께합니까? 두려움에 도망치기도 하지만 결국 그분의 길로 돌아오는 그 제자들이 곁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미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있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당신 곁에 머무르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함께 그 길을 걸어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동길(무빙워크)과도 같은 ‘길’입니다. 그 길 위에 머무르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줍니다.

그러니 예수님 곁에 머무르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곁에 머무르는 방법은 바로 미사입니다. 미사를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몸을 모시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 중에 예수님의 곁에 머무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미사 때 들은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님이라면 지금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보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산다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로 직행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이 힘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그분을 믿고 힘을 냅시다. 코로나19의 여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금 용기를 내어 예수님의 길에 올라섭시다. 그분께서 힘을 주실 것입니다.


-------------------------------------

군종교구 윤성완 시몬 신부
2020년 5월 10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5.09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00   [수도회]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28
799   [전주] 두 아들의 비유 - 회개와 위선  [1] 86
798   [군종] “하느님 앞에 겸손한 사람!”  67
797   [마산]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사람  [3] 2109
796   [제주] 어떻게 생각하느냐?  [1] 1975
795   [의정부]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2] 2166
794   [대전] 맏아들은 누굽니까? 둘째아들은 누굽니까?  [2] 2295
793   [인천] 뒤집어야(?) 산다 - 예수님은 역전의 사나이  [4] 2344
792   [대구] 예, 아니오  [3] 2382
791   [서울] 자기 격려하기  [8] 2199
790   [수원] 신앙은 입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다  [5] 2409
789   [춘천] 끝까지 가봐야  [3] 2182
788   [부산] 두 아들의 비유  [1] 2128
787   [원주] 아는게 병?  [1] 1396
786   [안동] 두 아들의 비유  [2] 2254
785   [광주] 자신을 아는 것이 천국이다  [2] 2120
784   (녹) 연중 제26주일 독서와 복음 (맏아들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 1730
783   [수도회] 용서만이 우리가 살 길  [1] 1980
782   [원주] 용서의 체험을 통해서 서로 용서할 수 있다  [1] 2281
781   [안동] 용서하는 삶  [1] 2245
780   [청주] ‘용서’는 어렵습니다.  142
779   [의정부]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1] 1639
778   [대전] 주님의 자비 살기  83
777   [대구]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듯이  [1] 2001
776   [마산] 용서가 바로 축복임을 깨닫자.  [2] 2216
775   [전주] 용서만이 참된 치유의 길  [1] 1923
774   [수원] 시련과 용서  [3] 2306
773   [춘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어라  [2] 2586
772   [서울] 용서의 이유  [3] 2242
771   [부산] 용서와 자비의 하느님  [3] 2231
770   [군종] 내가 얼마나 용서를 받아야 만족할지  [1] 2061
769   [인천] 부족한 저를 용서 하실래요?  [3] 2343
768   (녹) 연중 제24주일 독서와 복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  [2] 1892
767   [수도회] 사랑을 배경으로 한 형제적 충고  [6] 2158
766   [청주] 듣기 좋은 소리보다 사랑이 먼저다.  [1] 62
765   [마산]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  [3] 2337
764   [수원] 잘못은 사랑의 실습시간  [11] 2341
763   [인천] 사랑의 말  [6] 2183
762   [서울] 잘못한 형제 구하기  [10] 2756
761   [대전] 형제적 충고  [2] 2383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0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