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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사랑해요
조회수 | 409
작성일 | 17.05.18
[군종]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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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남자가 친구들과 술집에서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남자의 핸드폰이 울립니다.
바로 그 남자의 여자 친구였지요.
그래서 그 남자는 자신의 여자 친구에게 “친구들이 끊으라고 난리다.
내가 다시 전화할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 친구가 “자기야, 나한테 할 말 없어?” 라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는 “무슨 말?” 하고 여자에게 되물었지요.
여자 친구는 “시옷자로 시작하는 말 있잖아!”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게 뭔데? 도저히 모르겠다!” 라고 했고,
여자 친구는 답답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옷자로 시작하고 ‘해’ 자로 끝나는 말 있잖아.”
하지만 이 남자는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모르겠다!” 라고만 했습니다.
그 남자의 친구들은 전화가 길어지자 “야, 빨리 대답하고 빨리 끊어!” 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그 여자친구에게 “야,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끊자.” 라고 말했습니다.
여자 친구는 화 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시옷자로 시작해서 ‘해’ 자로 끝나고, 모두 3글자야. 이제 알겠어?”
이 남자는 힌트를 듣고서야 드디어 “아, 이제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수고해!”

이 남자의 여자친구는 ‘사랑해’ 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여자 친구가 원하는대답 대신에 ‘수고해’라고 말한 것이지요.
하긴 ‘수고해’도 시옷자로 시작해서 ‘해’자로 끝나고, 모두 세 글자인 것, 맞지요.
하지만 여자친구가 원하던 답은 아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말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말을 매 순간 외치고 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듣고 싶어 하시는 그 말씀은 바로 ‘사랑해요’ 라는 말입니다. 또한 나의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혹시 앞선 예화에 나오는 그 눈치 없는 남자처럼 그저 ‘수고해’라는 엉뚱한 말만을 주님께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말을 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간절히 듣고 싶어 하시는 그 말씀을 말입니다.

사랑을 통해 너무나도 분명하게 드러나시는 주님께 우리네 사랑의 말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고백하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듣고 싶어 하시는 그 말을, 그 사랑을 말입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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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정우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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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우리는 고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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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듣기만 해도 가슴 한편이 아려옵니다. 단어에서 연상되는 외로움, 슬픔, 그리고 충족되지 못한 사랑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참 사랑을 받고, 배우고, 익혀야 하는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지낸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채워지지 않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것들로 인해 성인이 된 후에도 여러 측면에서 갈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고아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바로 부모의 사랑을 대신 해준 ‘대리부’, ‘대리모’가 있었기 때문이죠. 때로는 조부모가, 때로는 친인척이, 때로는 주변의 의인들이 부모의 역할을 해 주었기에 내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던 것입니다. 나의 부모가 지금 내 옆에 있지는 않지만, 부모의 사랑은 언제나 내 곁에 있음을 알기에 힘을 내어 앞으로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신앙 역시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우린 아직 어리고 배울 것도, 받을 것도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열두 사도들 역시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았을 때는 아무것도 못 했습니다. 호수에서 풍랑에 시달리기도 했고(마르 9,14), 마귀 들린 이를 치유 하지 못했습니다.(마태 14,22)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시자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기를 잡으러 갔으며(요한 21,3), 엠마오로 지친 걸음을 옮기게 됩니다.(루카 24,13)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약속하셨고 성령께서 내려오시자 제자들은 힘을 얻고 더욱 담대히 예수님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이 더는 보이지 않음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을 전혀 만날 수도, 볼 수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같다면 우리는 태생 고아와 같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아가 압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안에 그분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그분이 세우신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사를 통해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 안에서 굳건히 살아갑시다. 예수님께선 약속 하신 대로 반드시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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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이겨레 다니엘 신부
2017년 5월 21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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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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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라는 단어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2001년에 개봉했던 ‘친구’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친구가 가진 의미가 더욱 잘 드러납니다. 유오성, 장동건, 서태화, 정운택이라는 유명한 영화배우들이 부산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는데, 중요한 점은 이 네 명의 친구들이 나란히 어깨를 마주하고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습니다. 친구는 내 뒤나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서 나와 나란히 함께 있습니다. 친구는 나와 가까이 있으면서 오랫동안 나의 옆에서 나와 함께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자의 ‘사람 인’자를 생각해 보시면 더 도움이 되실 듯 합니다. 한 획을 한 사람으로 본다면, 두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받치고 있는 모양이지요. 이렇듯이 친구는 나의 옆에서 나와 나란히 있기에 나를 받쳐주고, 또 나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곧 성령을 보내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보호자라는 말의 원어인 파라클레토스는 ‘내 옆에 보내진(파견된) 분’이라는 뜻입니다. 내 옆에 보내지신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나를 도우시며 나와 함께 계셔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예수님을 만나 뵙는 그 날까지 말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종이라면 성령께서 우리의 옆에 계실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앞에 서서 우리를 이끌어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의 옆에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가 스스로 나아가면서 협조자, 보호자이신 성령의 도움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성령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시어 우리가 그저 종처럼 시킨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동반자로 참여하게 하셨
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우리 스스로 당신과 함께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옆에 항상 머무르시어 우리가 우리의 주변에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돕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 곁에 서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아봅시다. 서로 손을 잡고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함께하기를 바라시면서 서로 다르기만 한 나와 너 사이에서 손을 맞잡을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설사 불화와 아픔과 상처가 우리 사이를 갈라놓더라도 나와 너 사이에 계시는 이 성령께서 우리의 친구로서 우리 사이를 평화와 화해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 사이에 계시는 성령께 감사드리며, 우리의 삶 안에서 성령과 함께 나아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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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윤성완 시몬 신부
2020년 5월 17일 군종교구 주보에서
  |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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