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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
조회수 | 294
작성일 | 17.10.28
[청주]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세상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 가장 흔하게 쓰는 단어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요 실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로는 어렵지만 가난한 이들의 무료병원인 요셉의원 설립자 선우경식 원장님, 소록도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 …, 이런 분들을 떠올리면 사랑이 뭔지 쉽게 설명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이처럼 사랑이 행동이요 실천이라는 말은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손발로 하는 삶이라는 뜻입니다. 누가 아픔을 겪고 있다면 왜 그렇게 됐는지를 밝히기보다 얼마나 아픈지 공감하며 낫게 도와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반대로 누가 나를 아프게 했다면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의 상처를 헤아리며 그를 이해하고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나의 인간적 덕행에 그치지 않고 하느님이 주신 계명으로서의 사랑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그러기 위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너희도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된다”(탈출 22,20)고 하시는 하느님의 그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억압받고 학대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시고 그들을 지켜주시는 그 하느님의 마음을 닮는 것,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덕행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를 여쭙는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말입니다. 이는 어찌 보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 계명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랑의 이중계명은 두 개의 계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의 계명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헤아리는 것이 하느님사랑이고 그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웃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말했습니다.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쟁이”라고,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는 것”(1요한 4,20)이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고, 용서하고, 아픔에 귀기울여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응답을 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해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 청주교구 장병철 바오로 신부 - 2017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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