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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73
작성일 | 20.05.07
[광주] 본래의 제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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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며, “장애”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도록 초대하고 있는 ‘장애인의 날’ 이기도 합니다. 부활 시기를 지내며, 신자로써 하느님과 이웃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묵상하는 우리에게 “장애”라는 말은, 오늘 복음과 더불어,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던져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장애”라는 말과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려 합니다.

“장애”란 보통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결함이 있는 상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얼핏 보기엔 아무런 장애도 없어 보이지만, 예수님과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했던 사람들 같고, 예수님의 여러 모습을 통해 당신을 보여주신 하느님을 보고서도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이야기 합니다. 성서의 ‘눈이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눈이 멀고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율법 교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특별한 기적을 보아야만 진정 하느님께서 그곳에 계시고, 예수님 안에서 그분이 활동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고, 오늘 복음의 제자들 또한 이러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기적 보다 오히려 일반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함으로써 더 많은 놀라운 일들을 하셨고, 그분이 하느님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하며 다가오십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마치 내 옆에 예수님을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애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은 지극히 평범함 모습들 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시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 할 때, 그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 지극히 놀라운 하느님의 모습임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일상 안에서 깨어 있을 수 있고 그분의 말을 듣고 보고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해야 하며, 더불어 열린 눈과 귀로 우리 주변에 함께 하는 장애우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이 다가올 때 열린 마음으로 함께 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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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민호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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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란한 마음이 아니라 든든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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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이렇게 인사를 건네십니다.
“평안하냐?”(마태 28,9)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 20,19)

그렇다면 부활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평안한지요?

김영하 작가는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산란한 마음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간 실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하루에도 생각이 수없이 갈라지는 삶을 살다보니 우리 마음에 '주님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곤 합니다. 그런데 대개 우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이유는 대상에 대한 '믿음' 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도 스승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의 혼란을 겪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듣거나 기적을 볼 때면 확신이 서다가도, 예수님께서 울법 전통과 다른 내용들을 가르치시고 당신 수난을 예고하실 때에는 정말 이분이 메시아가 맞을까 하는 의심도 생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임박한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인해 제자들의 마음도, 산란해질까 염려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6) 오로지 하느님과 당신께 믿음을 두고 그 믿음을 굳건히 하라는 예수님의 간절한 당부입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불신을 떨치지 못하고 난데 없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는지를 묻고,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그러니 길, 진리, 생명이신 주님께 믿음을 둔다면, 우리는 산란한 마음이 아니라 든든한 마음으로 선물로 주어진 신앙의 여정을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길이시니 저는 당신 발자국을 따라 걷고 당신 모범을 본받고 싶습니다. 주님은 진리이시니 저를 깨우쳐 주소서. 주님은 생명이시니 제게 은총을 내리소서.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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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민성 시몬 신부
2020년 5월 10일 광주대교구 주보에서
  |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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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삶의 길은 ‘사랑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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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 제5주일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그리스도께서 사랑의 친교를 이루는 참된 삶의 길임을 계시하십니다. 삶의 궁극 목적인 ‘행복으로 가는 길’이기에 마음에 간직합니다. 이 말씀에 머물다 보니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고별인사가 생각납니다.

젊은 시절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고 공감한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삶은 고해다”로 시작됩니다. 영적 성장의 길은 평생 걸리는 머나먼 배움의 길인가 봅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가면 행복할 텐데 우리의 마음은 산란합니다. 삶은 힘들고 어깨의 짐은 무겁습니다. 인생은 ‘고해(苦海)’이기 때문일까요?

오늘의 제1독서의 말씀은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 홀대를 받았기에 그리스어를 쓰는 유다인들이 히브리어를 쓰는 유다인들에게 불평합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분배에 인간적 약점이 드러난 모습입니다. 열두 사도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봉사자(부제)를 뽑아 안수하여 사랑의 봉사직무를 맡기고,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충실하니 교회는 더욱 성장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예루살렘 성전의 “살아 있는 돌”이심을 밝히십니다. 주님께서 “시온에 놓으신 돌, 품질이 입증된 돌, 튼튼한 기초로 쓰일 모퉁이의 값진 머릿돌(이사 28,16)”이십니다. 세례로 주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교회(‘영적 집’)에서 보편사제직을 수행하는 “살아 있는 돌”로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바칩니다(1베드 2,5).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이 돌은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1베드 2,7; 이사 8,14)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가 교회 건설에 쓰임새 있는 값진 돌이 되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바치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빛의 자녀’답게 사랑의 삶을 사는 ‘디딤돌’이 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이 전하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 고별담화(요한 14-17장)의 시작입니다. 성경에는 야곱, 모세, 바오로 사도 같은 주요 인물들이 마지막 떠날 때 후손에게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창세 49장, 신명 31-33장, 사도 20장)가 있습니다. 마지막 떠나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영원한 친교를 이루는 길임을 보여주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인간 존재의 ‘참된 삶의 길’, 진리 안에 있는 생명의 길을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마지막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과 으뜸 제자인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예고하십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산란함을 아시고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믿고 또 믿으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요한복음은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하느님의 외아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생명의 빵’, ‘영원한 생명의 말씀’, ‘세상의 빛’, ‘메시아’, ‘착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참포도나무’(요한 1,14.29; 6,35.68; 8,12; 9,22; 10,11; 11,25; 15,1)로 전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합니다. 바로 그 성경이 예수님을 위한 증언입니다(요한 5,39).

공생활 동안 함께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4)”라고 상기시키지만 형상을 중시하는 토마스는 그 길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 가는 유일한 길(요한 14,6)임을 단언하시나 체험을 중시하는 필립보는 알아듣지 못하고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함께한 제자가 모른다기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모른단 말이냐?” 하고 주의를 환기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하느님을 압니다(요한 8,19).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 하신 주님 말씀을 믿지 못하면 하신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으라 하십니다(요한 14,9-11). 말씀대로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입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조건 없는, 완전하고 보편적인 사랑이며, 삶의 의미를 되찾고 기쁨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하느님의 계시이고 사랑이십니다(가톨릭 교리 478, 609). 주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사랑의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길이십니다. 그 길은 인간 존재가 아버지를 직접 뵙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면 모습이 닮아간다고 합니다. 우리의 품위는 사랑이신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새 성전에 “선택된 값진 머릿돌”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가 주님의 도구가 되어 모든 이들이 딛고 오르내리는 ‘사랑의 디딤돌’이 되면 “그분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요한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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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 요한 세례자 –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2020년 5월 10일 가톨릭신문에서
  |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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