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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두려워하지 마라
조회수 | 178
작성일 | 20.06.19
[전주]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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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으니 ‘두려워하지 마라.’”(마태오오 10,26-31 참조)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예레미야는 인간적으로는 불행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는 원하지도 않은 예언자의 길을 걸으면서 조국의 멸망과 동족들의 쓰라린 미래를 예고하며 회개를 촉구했지만, 욕만 실컷 얻어먹고 감옥에도 갇혔으며 죽을 고생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믿음의 갈등은 특별히 억울한 고통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많은 이들이 고통을 벗어나려고 믿음을 찾는데, 그 고통이 믿음 안에서도 없어지지 않기에 믿음의 벽에 부딪히고 냉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을 제대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체이시고
핵심이시며 목적이십니다. 또 예수님은 은총과 축복의 샘물이십니다. 예수님에게서 나오지 못하는 축복과 은혜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생애는
참으로 불행하였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는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하셨으며, “하실 수만 있다면 쓴잔을 거두어 달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에는 하느님의 사랑이 숨겨져 있으며 우리 믿음의 발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점지하신 사람은 십자가도 많고 눈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고 성모님도 그러셨으며 성인 성녀들도 비슷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깊은 이들은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지만, 못난이들은 도망갑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진리와 자유를 위하여 자신을 봉헌한 이들의 길은 험난합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서
수많은 이들이 투쟁했습니다. 목숨을 잃기도 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인생의 소중한 시기를 애처롭게 바쳤습니다. 그들이 권력과 타협했더라면 더 편한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핍박받는 길을 용감하게 걸어갔습니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바로 이 시대의 예언자들 덕분입니다.

여러분,
밀알이 열매를 얻으려면 몸부림치고 괴로워하고 썩어야 합니다. 신앙도 민주주의도 행복도 평화도 마찬가집니다. 고통을 감수하고 뚫고 지나가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만일 시련을 외면하고 배척한다면 그는 죽은 인생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세상에서 고생해서 천국에서 열매를 맺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와
죽음의 굴속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영생에 대한 희망이 확고하다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박해와 시련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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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병준 필립보 신부
2020년 6월 21일 전주교구 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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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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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오 10,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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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의 죽음을(멸망을) 두려워하여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는 “육신의 수명을 연장하는 일에 집착하지 말고, 영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든지 간에 누구에게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음은 일반적인 일이고 보편적인 일인데도, 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까? 그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겪는 것을 볼 때가 많기 때문이고,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일이기 때문이고,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고, 저쪽 세상의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재의식 속에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1요한 4,18).

어떻든 죽음이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이 무서움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려면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요한 14,1), 회개해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인데, 우리가 실천한 선행과 사랑을 아주 사소한 일까지 다 알고 계시고, 갚아 주신다는 뜻입니다(마태오 6,4).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지은 죄를 모두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우리 자신은 잊어버리고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라는 말씀은,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씀에 연결되어 있는 말씀으로, 우리가 한 일들을 심판 때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서 억울한 심판을 받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반대로 생각하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은 참새보다 못한 처지가 될 것이라는 경고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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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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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는 몰라도 때가 되면,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가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그날이 되면, 누가 구원받을 선인인지, 누가 심판받을 악인인지 확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날은 틀림없이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꾸준히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선교활동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에 협력했든지 안 했든지 간에 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그 나라를 맞이하게 될 텐데,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을 충실하게 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나라의 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지역보다 더 먼 곳으로 가서, 예수님께서 만나셨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뜻입니다(마르코 16,15).

이 말에 대해서, “복음 선포 활동을 하라는 지시는 사도들에게만 하신지시가 아닌가? 모든 신앙인이 다 선교활동을 해야 하는가?”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문적인 선교사들이 하는 것과 같은 선교활동을 모든 신앙인이 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 선포는 말로만 하는 일이 아니라, 평소의 삶으로도 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이 곧 복음 선포가 되어야 하고, 신앙의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산상 설교에 있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라.”라는 말씀은(마태오 5,13-16) 사도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복음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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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오 10,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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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일치되어 있는 관계’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이라는 말씀은, “나를 믿는 신앙인이라고 고백하면”이라는 뜻입니다. 이 증언과 고백은 말로 하는 것을 포함해서 ‘온 삶’으로 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입니다.

박해 때에는 붙잡혀 가서 재판관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없는 상황에서는 언제, 누가 보아도 신앙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도록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앙고백이고 증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종교와 신앙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의 신앙생활을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심판 때에,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신원보증을 서 주겠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보증을 서 주시니 심판의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 즉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고, 종교와 신앙을 버리는 것입니다.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앙갚음하시겠다는 말씀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아니고,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우리 자신이 멸망을 선택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는”(마태오 12,20)

예수님께서는 어떻게든 우리를 구원하려고 애를 쓰시는데, 우리 쪽에서 먼저 예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면, 예수님께서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버리셔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버렸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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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신부
2020년 6월 21일
  |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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